담양 명옥헌 원림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영 |
전남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에는 살림집과 떨어진 자리에 따로 마련해 둔 정원이 하나 남아 있다. 명옥헌 원림으로, 조선 중기에 오희도가 머물던 터에 그의 아들 오이정이 정자와 연못을 앉혀 완성한 곳이다.
한여름은 이 정원이 한 해 가운데 가장 붐비는 때다. 연못을 둘러싼 배롱나무가 붉게 피기 시작해 초가을까지 이어지는데, 여름에 꽃으로 이름난 옛 정원은 흔하지 않다.
다만 꽃만 보고 돌아서면 절반만 본 셈이 된다. 이 정원은 이름부터 물에서 나왔고, 무엇을 어디에서 보도록 만들어 두었는지가 분명한 자리다.
물소리에서 이름을 얻은 별서 정원
담양 명옥헌 원림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영 |
명옥헌이라는 이름은 물 흐르는 소리에서 나왔다. 계류가 바위를 타고 내려오는 소리가 옥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처럼 들린다 하여 정자에 그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정원 이름에 소리가 들어간다는 것은 이곳을 무엇으로 여겼는지를 말해 준다. 눈으로 보는 경치만이 아니라 앉아서 듣는 것까지 정원의 일부로 삼았다는 뜻이다.
연못이 놓인 구조를 보면 그 뜻이 더 분명해진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고 위아래로 네모난 연못을 두 개 파서, 위 연못이 차면 아래 연못으로 넘어가도록 만들었다.
물이 한 단을 떨어질 때마다 그만큼의 소리가 생긴다. 정자 마루에 앉으면 그 소리가 계속 이어져, 바람이 없는 날에도 정원이 조용하기만 하지는 않다.
담양 명옥헌 원림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영 |
이런 방식으로 꾸민 정원을 별서 정원이라 부른다. 사는 집과 떨어진 곳에 따로 마련해 두고 글을 읽거나 손님을 맞던 자리로, 자연을 크게 손대지 않고 최소한만 다듬어 앉히는 것이 특징이다.
명옥헌 원림도 그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산자락의 물길과 바위, 오래된 적송을 그대로 두고 그 사이에 연못과 정자만 더해, 무엇이 원래 있던 것이고 무엇을 사람이 놓았는지 구분하기 어렵다.
이 정원은 2009년에 국가지정 명승이 됐다. 정자 한 채와 연못만 남은 규모지만, 조선 별서 정원의 구성을 온전히 지키고 있다는 점이 인정된 결과다.
백일 동안 붉게 피는 배롱나무 연못
담양 명옥헌 원림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영 |
연못 둘레를 빙 둘러 채우고 있는 것은 배롱나무다. 여름 한복판에 피기 시작해 초가을까지 꽃이 이어지는 나무로, 오래 핀다는 뜻에서 목백일홍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한 송이가 백일 내내 버티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작은 꽃들이 차례로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전체적으로 붉은 상태가 오래 유지되는 방식이라, 언제 가도 어느 정도는 꽃을 보게 된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라 줄기부터 눈에 들어온다. 껍질이 얇게 벗겨져 매끈하고 구불구불하게 자라는 성질이 있어, 꽃이 없는 계절에도 나무 모양만으로 볼 것이 남는다.
이 정원에서 꽃을 보는 자리는 사실 정해져 있다. 정자 마루에 앉아 연못 쪽으로 시선을 두면 나무와 꽃이 물에 그대로 비쳐, 위아래로 두 겹의 붉은 화면이 만들어진다.
꽃이 질 무렵에는 또 다른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떨어진 꽃잎이 수면을 덮어 연못 전체가 붉게 물드는데, 이 모습을 보러 개화 초입보다 오히려 늦게 찾는 사람도 있다.
담양 명옥헌 원림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영 |
담양은 이런 정원이 여러 곳에 모여 있는 곳이다. 가까이에 소쇄원과 식영정, 환벽당이 있어 하루에 이어서 도는 사람이 많고, 조선 중기 문인들이 이 일대에 자리를 잡으며 남긴 흔적이다.
같은 별서 정원이라 해도 성격은 저마다 다르다. 소쇄원이 계곡의 물길을 여러 단으로 끌어들인 구성이라면, 명옥헌은 연못 두 개와 정자 하나로 훨씬 단순하게 정리한 쪽이다.
규모가 작아 둘러보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점도 알아 두면 좋다. 정자에 앉아 물소리를 듣는 시간을 따로 잡아 두지 않으면, 사진 몇 장 남기고 나오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