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딱 절정입니다" 2019년부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배롱나무 명소


병산서원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병산서원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서 강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면 산자락에 앉은 서원 하나가 나온다. 병산서원으로, 낙동강과 그 건너 깎아지른 절벽을 정면으로 마주 보도록 자리를 잡은 곳이다.

한여름에는 마당에 선 배롱나무가 붉게 피어난다. 흰 담장과 검은 기와 사이에 붉은색이 얹히는 계절이라, 여름에 찾는 사람이 특히 많아진다.

그런데 이 서원에서 정작 눈여겨볼 것은 건물의 생김새가 아니다. 건물이 무엇을 어떻게 담아 두고 있는지가 이곳을 다른 서원과 갈라놓는 지점이다.

벽 없는 만대루가 담아내는 병산 절벽

병산서원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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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길게 누운 누각이 보인다. 만대루라 부르는 건물로, 앞면이 일곱 칸에 이르는 큰 규모인데 벽이 한 면도 없이 기둥과 지붕만으로 서 있다.

벽이 없으니 기둥과 기둥 사이가 그대로 빈 사각형이 된다. 그 사각형 안으로 강 건너 절벽과 낙동강이 걸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액자 속 그림이 바뀌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밖의 경치를 건물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을 차경이라 부른다. 정원에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 넣는 대신, 이미 있는 산과 강을 정원의 일부로 삼는 사고방식이다.

강 건너로 보이는 그 절벽의 이름이 바로 병산이다. 산이 병풍을 펼쳐 세운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서원의 이름도 이 산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병산서원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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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대루라는 이름에는 언제 보라는 뜻까지 들어 있다. 당나라 시인 두보가 푸른 병풍 같은 산수는 늦을녘에 마주할 만하다고 쓴 구절에서 따온 이름으로, 해가 기울 무렵을 가리킨다.

재료를 다루는 방식도 같은 태도를 보여 준다. 기단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그대로 썼고 기둥도 휘어진 나무를 억지로 곧게 펴지 않아, 건물과 주변 산이 서로 겉돌지 않는다.

이 서원은 서애 류성룡이 옛 서당을 이 자리로 옮겨 세운 데서 시작됐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제자들이 사당을 세워 위패를 모시면서 지금의 형태가 갖춰졌다.

이 서원은 201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다. 조선의 서원 아홉 곳을 묶어 등재한 목록에 병산서원이 포함됐고, 국가지정 사적으로도 관리되고 있다.

달팽이 뒷간과 올라갈 수 없는 마루

병산서원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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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출발 전에 알아 두면 좋은 것이 하나 있다. 만대루 마루는 현재 올라갈 수 없는데, 오래된 목조 건물을 지키기 위해 출입을 막아 둔 상태다.

그래서 이곳을 보는 자리를 바꿔 잡아야 한다. 마루에 앉는 대신 마당에서 기둥 사이를 통해 병산을 보거나, 강당 마루 쪽에 서서 누각을 한 겹 앞에 두고 절벽을 겹쳐 보는 방식이 남는다.

오히려 이 각도가 차경의 뜻을 더 분명하게 보여 주기도 한다. 건물의 기둥과 지붕이 화면의 테두리가 되고 그 안에 산과 강이 들어오는 구성을, 밖에서 보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병산서원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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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안쪽에는 광영지라는 작은 연못도 놓여 있다. 규모가 크지 않아 지나치기 쉬운데, 하늘과 주변 건물이 물에 비치도록 만들어 둔 자리다.

이곳에서 가장 이야기가 많은 시설은 뒷간이다. 흙과 돌로 쌓은 담이 달팽이 껍데기처럼 안으로 돌아 들어가는 구조여서, 문을 달지 않고도 안이 보이지 않게 만들어 두었다.

담을 한 바퀴 돌아 들어가는 동안 시선이 자연스럽게 막힌다. 재료도 주변 흙을 그대로 썼기에 서원 담장과 따로 떨어져 보이지 않고, 지금도 원래 자리에 남아 있다.

병산서원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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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정은 하회마을과 이어서 잡는 사람이 많다. 같은 강을 따라 이어지는 자리라 오전에 한쪽을 보고 오후에 다른 쪽으로 옮기는 순서가 자연스럽다.

굳이 순서를 고르라면 서원을 늦은 시간에 두는 편이 낫다. 만대루라는 이름이 가리키는 시간이 해 기울 무렵이고, 그때 병산의 그림자가 강 쪽으로 길게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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