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계곡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
전남 순천 조계산 자락의 선암사는 절 마당보다 그곳까지 가는 길로 더 알려져 있다. 입구에서 절까지 이어지는 삼십 분 남짓한 숲길에 계곡이 계속 따라붙고, 그 위로 오래된 돌다리와 누각이 차례로 나타난다.
한여름에는 골짜기를 흐르는 물이 넉넉해져 이 구간의 물소리가 한층 커진다. 우거진 나무가 길 위로 짙은 그늘을 드리워, 절에 닿기 전부터 걸음이 느려지는 계절이다.
이 절이 어디에 앉아 있는지도 함께 알고 가면 좋다. 조계산 한쪽 자락에 선암사가, 산을 넘은 반대편에 송광사가 자리해 한 산이 서로 다른 두 종단의 본산을 하나씩 품고 있다.
승선교 아래에서 완성되는 반원
선암사계곡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
진입로를 걷다 처음 눈에 띄는 것은 길 왼쪽의 작은 연못이다. 삼인당이라 불리는 알 모양의 못으로, 가운데에 섬을 하나 두고 있어 여느 절 연못과는 생김새가 다르고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조금 더 오르면 계곡을 건너지르는 승선교가 나온다. 다듬은 돌을 반원으로 쌓아 올린 조선시대 홍예교로 보물에 올라 있고, 지금도 사람이 그대로 밟고 지나간다.
선암사계곡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
이 다리는 위에서 건너서는 제 모습을 볼 수 없다. 계곡으로 내려가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돌로 쌓은 반원과 물에 비친 반원이 맞물려 온전한 원이 되고, 그 원 안으로 저 멀리 강선루가 들어온다.
아치 안쪽 가운데에는 용머리를 새긴 돌이 아래로 튀어나와 있다. 다리를 지키고 물길의 재앙을 막으려 끼워 넣었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아래에 서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리를 지나 조금만 더 오르면 강선루가 나타난다. 계곡 위에 걸터앉듯 서 있는 이층 누각으로, 이 절에서는 일주문보다 앞서 걸음을 맞이하는 문루 노릇을 한다.
송광사와 등을 맞댄 태고총림
선암사계곡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
선암사는 태고종의 총본산이자 이 종단이 태고총림으로 삼은 절이다. 조계산을 넘으면 나오는 송광사가 조계종의 승보사찰이니, 산 하나를 두고 두 종단의 큰 절이 등을 맞대고 있는 셈이다.
두 절 사이에는 굴목재를 넘는 옛길이 남아 있다. 지금은 트레킹 코스로 더 알려졌지만 본래 양쪽 스님과 마을 사람들이 오가던 길이고, 고개를 넘는 데 두어 시간이 걸린다.
선암사는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른 일곱 곳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목조 건물과 마당이 옛 배치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는 점이 등재 이유로 꼽혔다.
선암사계곡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
절 마당에서 가장 이름난 나무로는 선암매가 꼽힌다. 수백 년을 살아온 매화로 천연기념물에 지정돼 있는데, 꽃은 이른 봄에 피기 때문에 여름에 찾으면 굵은 줄기와 잎만 만나게 된다.
대신 여름에는 뒷간 쪽으로 걸음을 옮겨 보는 사람이 많다. 나무로 짠 옛 해우소가 지금도 그 자리에 남아 쓰이고 있어, 시의 소재가 되면서 절을 찾는 이들이 한 번씩 들러 보는 곳이 됐다.
하루를 넉넉히 잡는다면 굴목재를 넘어 송광사까지 이어 보는 방법도 있다. 계곡을 끼고 오르는 길과 산을 넘는 길은 성격이 아주 달라, 같은 조계산을 두 가지 표정으로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