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학교였는데 풍경이 대단하네요" 올여름 가기 좋은 조용한 산책 여행지


전주향교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전주향교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서 남쪽으로 몇 걸음만 내려가면 담장이 길게 둘러진 옛 건물군이 나오는데, 고려 말에 세워져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전주향교다. 관광객이 몰리는 거리 바로 옆인데도 담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소리가 뚝 끊긴다.

향교는 조선에서 고을마다 하나씩 두었던 관립 학교이자 공자와 성현의 위패를 모시던 제사 공간인데, 전국에 이백 곳 넘게 남아 있어 이름 자체는 낯설지 않다. 그런데 전주향교는 문을 들어서는 순간 다른 향교와 순서가 다르다는 것이 바로 드러난다.

강학 공간이 앞에 오고 제사 공간이 뒤에 서는 것이 보통인데 여기는 그 반대라, 이 배치 하나만 알고 가도 마당을 도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진다.

대성전이 앞에 선 전묘후학

전주향교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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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 노릇을 하는 만화루를 지나 일월문을 통과하면 바로 대성전 앞마당에 서게 된다. 공자와 여러 성현의 위패를 모신 제사 건물이 방문객을 가장 먼저 맞는 셈이다.

정작 유생들이 글을 배우던 강당인 명륜당은 그 뒤쪽으로 물러나 있어, 대성전을 다 지나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사당을 앞에 두고 학교를 뒤에 두는 배치를 전묘후학이라 부르며, 평지에 지은 향교에서 주로 나타나는 방식이다. 경사진 산자락에 지은 향교는 반대로 강당을 앞에 두고 위쪽 높은 자리에 사당을 올리는 편이다.

전주향교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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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 좌우로는 동무와 서무가 마주 서서 위패를 나누어 모셨다. 명륜당 앞으로는 유생들이 먹고 자던 동재와 서재가 붙어 있어, 공부와 생활이 한 마당 안에서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건물 이름만 훑어도 이곳이 학교인 동시에 사당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데, 조선의 향교는 두 기능을 한 담장 안에 넣어 두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면서 평소에는 글을 가르치던 곳이었다.

지금도 대성전에서는 공자에게 올리는 제사인 석전이 해마다 이어지고 있다.

400년 은행나무 두 그루의 내력

전주향교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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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 앞뜰에는 굵기가 어른 팔로 안기지 않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데, 수령이 400년을 넘긴 것으로 본다. 향교가 지금 자리로 옮겨 오던 무렵에 심긴 나무들이다.

향교와 서원 마당에 은행나무가 유난히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관행이다. 그 자리를 행단이라 불렀고, 조선의 학교들은 마당에 같은 나무를 심어 그 뜻을 옮겨 왔다.

벌레가 잘 꾀지 않는 나무라는 점도 이유로 꼽히는데, 책과 종이를 잔뜩 쌓아 두는 공간에 두기에는 그만한 나무가 없었던 셈이다.

이 나무가 노랗게 물드는 것은 11월 초중순이라, 여름에 찾으면 대신 짙은 초록 잎이 마당 전체를 덮은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사이에 명륜당 앞뜰의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올려 7월부터 9월까지 색을 낸다.

전주향교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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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향교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는 두 번의 이사가 있었다. 고려 공민왕 때 경기전 근처에 처음 세웠다가, 조선 세종 때 유생들이 글 읽는 소리가 제례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전주천 서쪽으로 옮겼다.

지금 자리로 다시 옮겨 온 것은 1603년 관찰사 장만 때의 일이고, 그 뒤로 사백 년 넘게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92년에는 사적으로 지정됐다.

담장 안의 옛 마루와 기와가 그대로 남아 있다 보니 사극 촬영이 잦아, 성균관이나 옛 학당이 배경으로 나오는 장면 가운데 상당수가 이곳에서 찍혔다.

입장료는 받지 않고 월요일은 문을 닫으며, 3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9시에 열어 오후 6시에, 11월부터 2월까지는 오전 10시에 열어 오후 5시에 닫는다. 한옥마을을 걷다가 사람이 몰리는 시간대를 피해 잠깐 들어와 앉기에 이만한 자리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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