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된 지 500년이 지났어도 그대로네요" 대나무 숲과 계곡이 자연 그대로 흐르는 여름 여행지


소쇄원 / 한국관광콘텐츠랩-이범수

소쇄원 / 한국관광콘텐츠랩-이범수

전남 담양 무등산 자락에는 조선 선비가 만든 정원이 하나 남아 있는데, 왕대나무 숲을 지나 들어서면 계곡을 낀 비탈에 정자 두 채와 담장, 못이 흩어져 있는 소쇄원이다. 조성된 지 오백 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배치가 크게 흐트러지지 않아 조선 별서정원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이름이 나오는 곳이다.

여름에 이곳을 찾는 사람은 대개 붉은 배롱나무를 먼저 떠올리지만, 정작 이 정원을 다른 곳과 갈라놓는 것은 꽃이 아니라 물과 담장을 다룬 방식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을 막지도 돌리지도 않고 정원 한가운데로 그대로 통과시킨 구조가 소쇄원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으니, 여기를 보고 나오면 정원이라는 말의 뜻이 조금 달라진다.

담장 밑을 그대로 통과하는 계곡물

소쇄원 / 한국관광콘텐츠랩-이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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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위쪽에는 오곡문이라 부르는 자리가 있는데, 흙과 돌로 쌓은 담장이 계곡에 닿는 지점에서 아래쪽에 구멍 두 개를 내고 그 밑으로 물을 흘려보낸다. 담장은 이어지고 물도 끊기지 않으니, 막는 대신 지나가게 한 셈이다.

담을 통과한 물은 바위를 다섯 굽이로 돌아 내려간다. 오곡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왔고, 굽이마다 물소리가 달라져 자리를 옮길 때마다 귀에 들리는 소리가 바뀐다.

물길 아래쪽에는 나무 홈통을 걸어 물을 끌어다 작은 못으로 떨어뜨리는 장치도 두었다. 예전에는 물레방아를 돌려 인공 폭포를 만들기도 했다고 전한다.

계곡 옆으로 튀어나온 작은 모정이 대봉대인데, 손님을 맞던 자리라 정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지점이기도 하다.

소쇄원 / 한국관광콘텐츠랩-이범수

소쇄원 / 한국관광콘텐츠랩-이범수

대봉대에서 계곡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광풍각이 나오는데, 사랑방 노릇을 하던 정자로 벽을 트고 마루만 남겨 두어 어느 쪽으로 앉아도 계곡이 보인다.

가장 높은 자리에는 주인이 머물던 제월당이 앉아 있어, 정원 전체와 그 너머 산자락까지 한눈에 내려다보게 된다.

두 건물의 이름은 중국 시인이 어떤 인물을 두고 쓴 '비 갠 뒤의 시원한 바람과 맑은 달 같다'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광풍과 제월을 하나씩 나눠 가진 이름이라 두 채는 처음부터 짝으로 지어진 셈이다.

입구 오솔길을 이루는 왕대나무 숲은 한여름에 가장 짙어져서, 볕이 강한 날에도 대숲 구간만은 서늘하다.

스승이 사약을 받고 내려온 자리

소쇄원 / 한국관광콘텐츠랩-이범수

소쇄원 / 한국관광콘텐츠랩-이범수

이 정원을 만든 사람은 양산보인데, 1503년에 태어나 열댓 살에 서울로 올라가 조광조 밑에서 공부했다. 그러다 기묘사화로 스승이 유배되었다가 사약을 받자, 벼슬길을 접고 고향인 담양으로 내려와 버렸다.

내려온 뒤 그는 죽을 때까지 이 계곡 자리를 다듬는 데 시간을 썼다. 1520년 무렵 시작한 일이 1557년 세상을 뜰 때까지 이어졌으니 삼십 년 넘게 손을 본 정원이다.

소쇄라는 말은 맑고 시원하다는 뜻이고, 양산보는 자기 호도 소쇄옹이라 지었다. 벼슬을 버린 사람이 자기 정원과 자기 자신에게 같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정원이 완성된 뒤에는 김인후가 이곳의 마흔여덟 곳을 하나씩 시로 읊은 48영을 남겼고, 그 시들이 지금은 어느 자리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알려 주는 안내문 노릇을 한다.

소쇄원 / 한국관광콘텐츠랩-이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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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5년에는 정원을 그린 목판화 소쇄원도가 제작되었는데, 바둑을 두는 사람과 가야금을 타는 사람까지 그려져 있어 이 공간을 실제로 어떻게 썼는지가 남았다.

지금 남은 정원이 옛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이 그림이다. 태워지고 다시 지어지기를 반복한 다른 정자들과 달리, 소쇄원은 비교해 볼 도면이 있는 셈이다.

지정된 구역만 보면 4,399㎡로 넓지 않으나 둘레의 보호구역까지 합치면 11만㎡가 넘어, 담장 안쪽만 정원으로 친 것이 아니라 골짜기 전체를 하나로 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담양에서 하루를 잡는다면 소쇄원에서 시작해 식영정과 환벽당 쪽으로 이어 보는 순서가 자연스럽다. 같은 무등산 자락에 조선 선비들의 정자가 몰려 있어, 한 사람이 아니라 한 무리가 만든 풍경이라는 것이 그제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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