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
서울 종로 창덕궁에는 궁 안에 있으면서도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없는 구역이 있는데, 흔히 비원이라 불려 온 후원으로, 궁궐 관람권과 별도로 표를 끊고 정해진 회차에 맞춰 들어가야 하는 자리다.
한여름에는 담장을 타고 오른 능소화가 주황빛으로 피어난다. 궁궐에서 꽃을 보기 좋은 계절은 대개 봄인데, 이 꽃은 한여름에 피어 초록만 남은 담장에 색을 얹는다.
다만 후원은 꽃보다 물과 지형을 보는 정원에 가깝다. 못을 어떤 모양으로 팠고 물길을 어떻게 돌려 두었는지가 이 정원이 남긴 진짜 내용이다.
네모난 못 가운데 둥근 섬을 둔 뜻
창덕궁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
후원에 들어서서 처음 만나는 큰 못이 부용지다. 못은 반듯한 네모인데 그 가운데 섬만 둥글게 만들어 두어, 보고 나면 왜 이렇게 팠는지가 궁금해진다.
이 모양에는 조선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던 방식이 들어 있는데,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생각을 그대로 못의 형태로 옮겨, 네모난 물 안에 둥근 하늘을 앉힌 셈이다.
못 남쪽 물가에 걸터앉은 작은 정자가 부용정이다. 두 기둥을 물속에 담근 채 지어 올려, 정자가 물 위로 반쯤 나와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못 북쪽 언덕 위에는 주합루라는 누각이 서 있는데, 아래층에 왕실 서고를 두었던 건물로, 못에서 계단을 밟아 올라가도록 배치해 물과 책이 한 축에 놓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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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지를 지나 조금 더 들어가면 애련지가 나오는데, 부용지보다 작고 조용한 못으로, 연꽃을 아낀다는 뜻을 이름에 담아 숙종 대에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애련지 물가에는 관람정이라는 정자가 놓여 있는데, 후원의 다른 정자들과 달리 평면이 부채꼴이라, 못을 향해 넓게 펼쳐진 모양으로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런 부채꼴 정자는 국내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데, 못의 곡선을 따라가도록 건물의 평면 자체를 휘어 놓은 방식이라, 자연에 건물을 맞춘 예로 자주 꼽힌다.
바위에 홈을 판 옥류천과 예약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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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자리가 옥류천이다. 계곡물이 흐르던 곳에 인공을 조금 더해, 임금이 신하들과 앉아 술을 즐기던 공간으로 다듬어 놓았다.
이곳에서 사람이 손을 댄 방식이 특히 독특하다. 커다란 바위 위에 홈을 둥글게 파 물이 그 홈을 따라 한 바퀴 돌아 나가게 만들고, 그 끝에서 작은 폭포로 떨어지도록 높이를 잡았다.
이렇게 물길을 굽혀 놓은 것은 술잔을 띄우기 위해서였다. 흐르는 물에 잔을 얹어 보내고 그 잔이 자기 앞에 닿기 전에 시를 짓던 놀이가 있었고, 그 자리를 궁궐 안에 만들어 둔 것이다.
이 바위에는 새겨 놓은 글씨까지 함께 남아 있는데, 인조가 쓴 옥류천이라는 세 글자와 숙종이 지은 시가 함께 새겨져 있어, 손을 댄 임금이 누구였는지가 돌에 그대로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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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보려면 관람 방식을 미리 알아 두어야 한다. 후원은 자유롭게 드나드는 구역이 아니라 회차마다 인원을 정해 두고 해설과 함께 도는 방식이라, 예약을 하지 않으면 문 앞에서 돌아설 수 있다.
한 바퀴를 도는 데는 한 시간 남짓이 걸린다. 정해진 동선을 따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한자리에 오래 머무르기는 어렵고, 회차와 요금은 계절에 따라 달라지니 출발 전에 확인해 두는 편이 확실하다.
마지막으로 헷갈리기 쉬운 대목이 하나 남아 있다. 여름마다 사진으로 많이 도는 낙선재 담장의 능소화는 후원이 아니라 창덕궁 동쪽에 따로 있는 구역이라, 후원 예약과는 별개로 둘러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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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이 세계유산에 오른 이유도 이 배치에 있다. 산자락의 지형을 깎아 내지 않고 그 사이사이에 건물과 못을 앉힌 방식이 조선 궁궐 가운데서도 특히 잘 남아 있다는 점이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