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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나라 충신 악비의 후손들이 모함을 피해 태항산 협곡에 일군 악가채는 무려 8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은둔해 온 돌마을입니다.
  • 2010년 철로가 개설되며 문명이 유입되었음에도, 주민들은 전통적인 돌집과 공동체의 따뜻한 정을 고스란히 지켜가고 있습니다.
  • 가마우지와 신뢰를 쌓으며 살아가는 유일한 어부의 삶처럼,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자족하는 태도가 현대인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중국의 깊고 험한 태항산 협곡 속, 무려 8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숨어 살던 은둔의 마을 '악가채(위에쟈싸이)'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송나라의 충신 악비의 후손들이 모함을 피해 벼랑 끝에 일군 이 돌마을과, 수천 년 전통을 이어온 가마우지 어부의 삶은 현대인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와 따뜻한 정이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바깥세상에 알려진 지 겨우 10년, 베일을 벗은 은둔의 땅

하늘에 떠 있는 마을이라 하여 '태양공중천'이라 불리던 곳이 있습니다. 바로 중국 태항산의 가장 깊고 외진 협곡 끝에 자리한 악가채(위에쟈싸이)입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외길 바위 터널조차 없어 하늘의 구름이나 드나들던 이 은둔의 마을이 최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태항산 협곡 끝에 자리한 악가채가 바깥세상에 알려진 지 겨우 10여 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주민들은 오직 맨손과 정으로 바위를 쪼아 길을 내고, 돌로 집과 담장을 쌓으며 벼랑 끝에서의 삶을 묵묵히 이어왔습니다. 이 험난한 요새와도 같은 마을이 마침내 바깥세상과 연결된 것입니다.

벼랑 끝의 고단함 속에서 피어난 따뜻한 공동체

왜 이 척박하고 외딴 은둔의 마을이 오늘날 우리에게 이토록 깊은 울림을 줄까요? 그것은 빠르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들이 그곳에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고단한 삶 속에서도 지켜낸 것은 바로 가족과 이웃을 향한 따뜻한 정이었습니다.

악가채에 살고 있는 30여 가구는 놀랍게도 모두 '악'씨 성을 가진 한 형제들이랍니다. 척박한 돌산에서 물 한 모금조차 귀해 눈물겨운 정성으로 우물을 지켜야 했던 고단한 역사 속에서도, 이들은 서로를 보듬으며 끈끈한 공동체를 유지해 왔습니다.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며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이들의 삶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늘 조급하고 외로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의 조건이 무엇인지 되묻게 합니다.

1100년의 회한과 생존이 빚어낸 역사적 배경

이들이 이토록 깊은 산골에 숨어들게 된 역사적 배경은 무엇일까요? 그 뿌리는 송나라 시절의 명장, 충신 악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간신 진회의 모략으로 악비가 처형당하자, 그의 세 아들과 후손들은 화를 피해 이 깊은 협곡으로 숨어들었습니다. 모함을 피해 숨어든 후손들이 무려 1100여 년의 세월 동안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살아온 것이지요.


노란색 패딩을 입은 중년 남성이 돌로 쌓은 집 앞에서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이야기하고 있다.

악비의 후손들이 모여 살던 악가채에서 마을의 오랜 내력과 가문의 역사를 전해 듣습니다.


마을의 의사인 악강록 씨가 보여준 고목에는 밤마다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가문의 번창을 약속했다는 애틋한 전설이 서려 있습니다. 이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오직 바위로 집을 짓고 살며 가문을 지켜냈습니다. 심지어 이들의 음식 문화 속에도 역사가 고스란히 숨 쉬고 있답니다. 간신 진회의 가죽과 머리, 고기를 상징하는 재료를 썰어 만든 '혼채'라는 별미를 먹으며, 이들은 조상의 원한을 음식으로 승화시키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중년 남성이 실내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악비와 진회의 역사적 원한이 담긴 음식을 통해 1100년 전의 회한을 되새깁니다.


문명의 유입과 전통 어부의 아름다운 동행

오랜 은둔의 역사는 2010년 태양철로가 개설된 이후에도 이들은 전통을 지켰습니다. 비로소 바깥세상과 통하는 길이 열렸지만, 마을 사람들은 화려한 도시를 동경하며 떠나기보다 자신들이 일군 터전에서 조용히 자족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삶의 철학은 태항산 물줄기에서 만난 또 다른 주인공, 가마우지 어부 장하이텐 씨의 삶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가마우지를 데리고 있는 어부와 노란 점퍼를 입은 남성이 길가에서 대화하는 모습

태항산의 유일한 가마우지 낚시꾼을 만나 전통 어업의 명맥을 잇는 삶을 들여다봅니다.


그는 이 깊은 산골에서 가마우지를 가족처럼 아끼며 수천 년을 이어온 전통 어법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가마우지가 사냥한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도록 목을 묶어 사냥하는 방식이 언뜻 잔인해 보일 수 있지만, 장하이텐 씨는 사냥이 끝나면 가장 크고 싱싱한 물고기를 상으로 주며 깊은 신뢰를 쌓아갑니다.


어부가 가마우지가 머무는 나무 상자 위로 그물을 덮어주고 있다.

가족처럼 아끼는 가마우지를 위해 어부는 정성껏 잠자리를 마련해 줍니다.


가마우지들을 위해 집안 가장 깊은 곳에 안전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그의 모습은, 자연과 동물이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우리가 끝내 잃지 말아야 할 삶의 가치

문명의 바람이 태항산 협곡 구석구석까지 불어오는 지금, 우리는 이들의 삶에서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우리가 이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여유와 공존의 철학입니다.

악가채 사람들과 가마우지 어부 부부는 처음 만난 이방인에게도 자신들의 가장 귀한 별미와 물고기를 아낌없이 나누어 줍니다. 벼랑 끝의 고단한 환경에서도 이들이 간직해 온 순박한 미소와 따뜻한 정은 결코 물질적인 부로 살 수 없는 소중한 유산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하더라도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여유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이 험한 협곡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위로이자 지켜봐야 할 가치가 아닐까요?


FAQ

악가채 사람들은 왜 이 험한 산골에 모여 살게 되었나요?

송나라 시절 충신이었던 악비가 진회의 모함을 받아 처형당하자, 그의 세 아들과 후손들이 화를 피하기 위해 태항산의 가장 깊고 험한 협곡으로 숨어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악가채 주민들은 왜 모두 성씨가 같은가요?

마을 주민 30여 가구는 모두 악비의 후손들이기 때문에 전부 '악'씨 성을 쓰고 있으며, 험난한 환경 속에서 서로를 형제처럼 의지하며 살아왔습니다.

가마우지 낚시는 동물 학대가 아닌가요?

가마우지의 목을 묶어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게 하는 방식은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중국의 전통 어법입니다. 어부는 사냥이 끝나면 가장 크고 튼실한 물고기를 상으로 주며 가마우지와 깊은 신뢰와 사랑의 동반자 관계를 유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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