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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 버려지던 천덕구러기 아귀는 오늘날 든든한 생계를 책임지는 바다의 귀한 진미로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 수심 깊은 곳에 사는 아귀를 살려오기 위한 냉각 어창 기술과 날카로운 이빨을 피하는 어부들의 노하우가 조업의 핵심입니다.
  • 기후 변화와 구인난 속에서도 하루 한 번 조업과 방생을 실천하며 지속 가능한 바다를 지키려는 어부들의 철학이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바다는 그야말로 새로운 생명력으로 꿈틀거립니다. 새벽 안개를 헤치고 부산 기장의 대변항을 나서는 배들, 그들이 찾아 나서는 주인공은 바로 아귀랍니다. 한때는 그물이 찢어진다며 버려지던 못난이 물고기 아귀가 이제는 겨울철 식탁을 책임지는 귀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못생긴 물고기가 우리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은 바다의 진미로 재탄생할 수 있었을까요?

1. '물턴벙이'의 화려한 귀환, 찬 바람과 함께 시작된 아귀 조업

봄철 멸치잡이로 분주하던 부산 기장 대변항은 찬 바람이 불어오면 아귀잡이 배들로 다시금 활기를 띱니다. 35년째 바다를 지켜온 김진호 선장 역시 새벽마다 아귀를 찾아 먼바다로 향합니다. 아귀 조업은 고기가 다니는 길목에 수직으로 그물을 내리는 자망 방식을 사용하는데요. 달리는 배 위에서 무거운 돌과 함께 무려 1km에 달하는 그물을 내리는 작업은 그야말로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입니다.


어두운 밤바다 위 배에서 선원이 그물을 내리는 위험한 작업 현장

새벽 바다에서 1km에 달하는 그물을 내리는 작업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위험한 과정입니다.


자칫 방심했다가는 그물줄에 발이 걸려 바다로 끌려 들어가는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어부들은 차가운 바닷바람 속에서도 땀방울을 흘리며 긴장감을 늦추지 못한답니다.

2. 천대받던 못난이가 가장 귀한 바다의 진미가 된 이유

과거에는 그물에 걸려 올라오면 얄밉게 물을 뿜는다고 해서 '물턴벙이'라 부르며 바다에 던져버리거나, 다른 생선을 사면 덤으로 끼워주던 아귀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아귀는 든든한 생계를 책임지는 고마운 존재이자, 찬 바람 불 때 찾게 되는 대표적인 별미가 되었죠.


넓고 푸른 바다 위를 가로지르며 항해하는 작은 어선 한 척의 항공 촬영 모습

새벽 안개를 뚫고 아귀를 찾아 먼바다로 나서는 어선의 분주한 일상입니다.


조업 시작 4시간 만에 바다 위에서 컵밥으로 거친 첫 끼를 때워야 하는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그물 가득 올라오는 아귀를 보면 어부들의 얼굴에는 넉살 좋은 미소와 행복이 피어납니다. 마산항 인근 수산시장에서 50여 년간 아귀를 손질해 자식들을 키워낸 김옥순 여사의 세월처럼, 아귀는 이제 수많은 바닷가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따뜻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3. 심해의 포식자를 낚는 어부들의 숨은 지혜와 노하우

수심 100~200m의 깊고 차가운 바다에 사는 아귀를 온전히 육지까지 살려 가기 위해서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물 온도가 올라가면 아귀가 금방 죽어버리기 때문에, 어창에 냉각기를 가동해 항상 10도에서 11도의 차가운 수온을 일정하게 유지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아귀는 한 번 물면 결코 놓지 않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포악한 성격의 포식자입니다.


나무 막대기를 입에 물고 있는 아귀의 날카로운 이빨과 거친 피부가 클로즈업된 모습

강한 턱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아귀는 다룰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포식자입니다.


그물에서 아귀를 떼어내다 손가락이나 발을 다치는 사고가 빈번한데요. 여기서 어부들의 놀라운 지혜가 빛을 발합니다. 아귀의 눈을 꾹 누르면 아프고 놀란 아귀가 스스로 입을 쩍 벌린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 작은 노하우 덕분에 물고기도 사람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조업을 이어갈 수 있답니다. 한편 마산에서는 예로부터 된장 육수에 말린 건아귀를 넣어 찌개처럼 끓여 먹던 방식이 발전해 오늘날 3대째 이어지는 마산식 아귀찜이라는 독특한 음식 문화를 꽃피우기도 했습니다.

4. "내일의 바다를 위해" 어부들이 스스로 만든 엄격한 규칙

아귀가 귀한 몸이 되었다고 해서 어부들이 무작정 바다를 약탈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부산 연안의 아귀잡이 어부들은 내일의 바다를 위해 스스로 엄격한 규칙을 세워 실천하고 있습니다. 우선 그물코의 크기를 크게 만들어 규격에 미달하는 어린 아귀들은 그물 사이로 자연스럽게 빠져나가 방생되도록 유도합니다.


어창 안에 가득 담겨 있는 아귀들의 모습

내일의 바다를 위해 작은 물고기는 다시 놓아주고, 튼실한 아귀들만 정성껏 거두어들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루에 딱 한 번만 그물을 내리고 걷는 조업 원칙을 고수하며, 매주 토요일은 자체적인 휴무일로 지정해 바다에게 숨 쉴 시간을 줍니다. 당장의 눈앞의 이익보다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먼 미래의 바다를 먼저 생각하는 뱃사람들의 묵직한 철학이 담겨 있는 대목입니다.

5. 해파리의 습격과 구인난, 우리가 계속해서 아귀를 만나기 위해 주목할 과제

하지만 오늘날 바닷가 사람들이 마주한 현실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으로 겨울철까지 해파리 떼가 출몰하면서 아귀잡이 그물에 해파리만 가득 차는 일이 빈번해졌기 때문입니다. 독성을 가진 해파리는 어구를 파손하고 조업 시간을 지연시키며 큰 경제적 피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바다 위에서 작업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인터뷰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 화면

해파리 떼가 그물을 뒤덮으면서 조업에 큰 차질을 빚고 어민들의 고충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극심한 구인난까지 더해져, 원래라면 조업 상황을 진두지휘해야 할 선장님마저 일손이 부족해 직접 그물 작업을 도맡아야 하는 실정입니다. 우리가 식탁 위에서 맛있는 아귀찜을 편안히 마주하기까지, 보이지 않는 바다 너머에서는 이토록 치열한 구슬땀과 고군분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차가운 새벽바다를 견뎌내며 정성으로 건져 올린 아귀 한 마리. 조업을 마친 김진호 선장님이 아내 몰래 썰어주는 쫀득하고 탱글탱글한 아귀회 한 점에는 평생 바다에 순응하며 살아온 이들의 고단함과 여유가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오늘 저녁, 따뜻하고 매콤한 아귀찜 한 그릇을 마주하며 그 속에 담긴 바다 사람들의 수고로움과 인생 철학을 한 번쯤 음미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FAQ

아귀는 왜 과거에 '물턴벙이'라고 불렸나요?

과거에는 아귀의 못생긴 생김새와 그물을 망가뜨리는 습성 때문에 쓸모없는 물고기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물에 걸려 올라오면 바로 바다에 '텀벙' 던져버렸다고 해서 '물턴벙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아귀 조업 중에 아귀에게 물리지 않는 어부들만의 비결이 있나요?

아귀는 이빨이 날카롭고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습성이 있어 위험합니다. 어부들은 그물에서 아귀를 안전하게 떼어내기 위해 아귀의 눈 부분을 손으로 잡아서 누릅니다. 그러면 아귀가 통증을 느끼고 스스로 입을 벌리게 됩니다.

부산 기장 아귀 조업에서 어창의 수온을 조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귀는 수심 100~200m의 깊고 차가운 바다에 서식하는 심해성 어종입니다. 수온 변화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활어 상태로 신선하게 육지까지 운반하기 위해 어창에 냉각기를 설치해 수온을 항상 10도에서 11도 안팎으로 유지해 줍니다.

바다에서 갓 잡은 아귀로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 있나요?

어부들만 맛볼 수 있는 최고의 별미는 바로 '아귀회'입니다. 신선한 아귀의 꼬리 부분을 썰어 먹는데, 다른 생선회와 달리 탱글탱글하고 쫀득쫀득한 식감이 일품입니다. 이는 보존이 까다로워 배 위가 아니면 쉽게 맛보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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