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끈 팬 안의 잡채 위에 밑간한 시금치를 올려 젓가락으로 섞는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명절이나 식구들 생일상에 올리는 음식 가운데 잡채만큼 손이 많이 가는 것이 드물다. 당면을 불리고 고기와 채소를 하나씩 볶아 한 그릇에 모으는 동안 부엌에 서 있는 시간이 한참인데, 정작 상에 올려놓고 보면 시금치만 축 늘어져 색이 누렇게 변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시금치를 아예 따로 데쳐 두거나 맨 마지막에 넣어 볶아 보기도 하는데, 뜨거운 팬에 들어가는 순간 숨이 죽어 버리니 결과는 비슷하다. 젓가락으로 집어 올리면 시금치끼리 뭉친 채로 딸려 나오고, 씹을 때 질긴 줄기가 입에 남는다.
시금치는 익히는 시간을 짧게 잡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고, 아예 불을 끄고 넣어야 한다. 당면과 다른 채소를 다 볶은 뒤에 불을 끄고 시금치를 넣으면 팬에 남아 있는 열로만 익어 색과 식감이 그대로 살아 있다.
팬에 들어가자마자 숨이 죽는 시금치
뜨거운 팬에서 당면과 채소 사이로 시금치 잎이 빠르게 줄어드는 조리 장면.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시금치 잎은 얇고 물기가 많아서 열이 닿으면 가장 먼저 물이 빠져나온다. 양파나 당근은 아직 익지도 않은 시점에 시금치는 이미 부피가 반으로 줄어들고, 잎에서 나온 물이 팬 바닥에 고이면서 양념까지 묽어진다.
당면과 채소 옆에서 열을 받아 작아진 시금치 잎이 보이는 팬 안쪽.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거기서 조금만 더 볶으면 잎은 흐물흐물해지는데 줄기는 반대로 물기가 빠져 질겨진다. 한 팬에서 같이 익히는 동안 시금치만 두 번 익는 셈이라, 불을 약하게 줄이거나 볶는 시간을 짧게 잡아도 숨이 죽는 것은 막기 어렵다.
반면 불을 끈 팬에는 당면과 채소가 머금은 열이 남아 있어서 시금치를 넣고 섞어 두면 1~2분 사이에 적당히 익는다. 잎이 부드럽게 늘어질 만큼만 열이 전해지고 줄기에는 아삭함이 남아, 초록색도 선명하게 유지된다.
잡채에 넣은 시금치 질기지 않게 섞는 방법
데친 시금치에 참기름과 소금으로 밑간해 작은 그릇에 따로 둔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시금치는 뿌리 쪽 흙을 칼로 긁어 내고 밑동에 열십자로 칼집을 넣어 포기째 씻은 다음, 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넣고 30초만 데쳐 찬물에 식히고 물기를 꽉 짠다. 데친 시금치는 한 입 길이로 썰어 참기름과 소금으로 살짝 밑간해 따로 둔다.
당면은 미지근한 물에 30분쯤 불려 건져 두고, 소고기와 양파, 당근, 버섯을 각각 볶아 한쪽에 모아 둔다. 불린 당면은 간장과 설탕, 참기름을 섞은 양념을 부어 중간 불에서 함께 볶는데, 양념이 당면에 배면서 윤기가 돌 때까지 3~4분이면 된다.
당면이 투명해지고 양념 국물이 거의 보이지 않으면 볶아 둔 고기와 채소를 넣고 한 번 더 섞는다. 색을 더 내고 싶으면 부추나 파프리카를 이때 넣는데, 두 가지 모두 오래 볶지 않아도 금방 익어 색이 산다.
여기서 불을 끄고, 팬이 식기 전에 밑간해 둔 시금치를 넣어 젓가락으로 아래위를 뒤집어 가며 섞는다. 손으로 버무리면 뜨거워 다치기 쉬우니 젓가락이나 집게를 쓰고, 시금치가 뭉치지 않고 당면 사이로 고르게 퍼지면 그릇에 옮겨 담아 통깨를 뿌린다. 남은 잡채를 다시 데울 때도 팬에 올려 약한 불로 잠깐 데운 뒤 불을 끄고 섞는 것이 좋다.
불을 끈 팬에서 시금치가 당면 사이에 고르게 퍼지도록 젓가락으로 섞는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다음에 잡채를 만들 때는 시금치만 따로 빼 두고 맨 마지막에 불을 끈 다음 넣어 보길 권한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일수록 마지막 순서 하나가 상에 올린 뒤의 모양과 식감을 좌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