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해미읍성 / 한국관광콘텐츠랩-이범수 |
충남 서산 해미면 한복판에는 돌로 쌓아 올린 성이 하나 남아 전한다. 산에 기대지 않고 평지에 그대로 두른 성이라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사방이 트인 들판이 그대로 눈에 들어온다.
이 성이 세워진 것은 조선 초의 일이다. 태종 17년인 1417년에 시작해 세종 3년인 1421년에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지고, 서해로 들어오는 왜구를 막으려고 예산 덕산에 있던 충청병마절도사영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만든 자리다. 오래 남은 형태를 인정받아 1963년에 사적으로 지정됐다.
탱자성이라고도 불린 조선의 읍성
서산 해미읍성 / 한국관광콘텐츠랩-이범수 |
이 성의 둘레는 1800미터쯤으로 기록돼 있다. 성벽 높이는 4.9미터이고 보호구역 면적은 19만 6381제곱미터로 기록돼 있으며, 동서남북 네 방향에 문을 냈고 그중 남문인 진남문은 무지개 모양으로 쌓았다.
성벽 바깥에는 탱자나무를 촘촘히 심었다. 가시가 빽빽한 나무를 둘러 심어 사람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한 것인데, 그래서 이 성에는 탱자성이라는 별명이 함께 붙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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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중심지 노릇은 230년쯤 이어졌다. 효종 3년인 1652년에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옮겨 가면서 그 자리에 해미현 관아가 들어왔고, 1914년까지는 호서좌영으로 내포 지방의 군사를 맡았다.
이순신이 열 달을 근무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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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에는 이순신의 이름도 함께 남아 전한다. 1576년 무과에 급제한 그가 1579년에 충청병마절도사의 군관으로 이곳에 부임해 열 달가량 근무한 기록이 전해진다.
성 안에는 그 시절 건물이 여러 채 복원돼 자리를 지킨다. 현감이 일을 보던 동헌과 손님을 맞던 객사, 병사들이 쉬던 청허정과 조선시대 가옥을 재현한 민속가옥, 옥사가 넓은 잔디밭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다.
성 안에는 오래 자란 나무도 여러 그루 서서 그늘을 만든다. 진남문 옆 은행나무는 수령이 150년에서 200년쯤으로 밑동에서 두 줄기가 서로 껴안은 모양이고, 가지 열한 개가 하트처럼 뻗은 모양이라 부부의 백년해로 이야기가 함께 전해진다.
1866년을 안고 있는 회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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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에 선 회화나무 한 그루에는 무거운 내력이 함께 따라붙는다. 수령이 300년쯤이고 높이 18미터에 둘레가 4.5미터인 이 나무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 1000여 명이 잡혀 와 고초를 겪은 자리를 그대로 지켜본 나무다.
이 나무는 호야나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회화나무를 부르는 충청도 사투리에서 온 이름이고, 2008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됐다가 2024년에 충청남도 자연유산으로 다시 지정됐다.
성 남쪽으로 걸어서 15분쯤 가면 해미국제성지가 나온다. 순교자들이 생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여숫골에 1975년 순교탑과 2003년 기념 성전이 들어섰다. 2014년 8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성을 찾아 아시아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집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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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찾아가는 데 드는 비용은 따로 없다. 입장료와 주차료를 모두 받지 않고 3월부터 10월까지는 새벽 5시부터 밤 9시까지 열어 둔다. 올가을에는 10월 9일부터 사흘 동안 성곽 축제가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