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악산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
제주 남서쪽 대정읍 해안에는 바다 쪽으로 낮게 솟아오른 오름이 하나 있다. 해발 104미터로 높지 않은 데다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하나도 없어, 능선을 따라 걷는 내내 바다와 초원이 한 화면에 같이 담긴다.
이 오름의 둘레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가 한 바퀴 2.8킬로미터 순환 코스로 이어진다. 8월 바람이 초록 들판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수풀이 한꺼번에 눕는 모습이 파도처럼 번지는 자리라, 여름 끝자락에 걷기 좋은 길로 꼽힌다.
정상 대신 걷는 2.8킬로미터
송악산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
이곳을 찾기 전에 한 가지 먼저 짚어 둘 대목이 남는다. 정상부와 정상 탐방로는 자연휴식년제로 묶여 2027년 7월 31일까지 출입이 제한된 상태라, 지금 이곳에서 걸을 수 있는 것은 둘레를 도는 산책로 쪽이다.
둘레길만으로도 볼 것은 충분히 이어진다. 코스 중간에 전망대가 세 군데 놓였고 해안 절벽과 초원을 번갈아 지나는 구조라, 방향이 바뀔 때마다 눈앞에 들어오는 장면이 계속 달라진다.
길바닥은 흙길과 나무 데크가 번갈아 나오는 구성으로 고르게 깔려 있는 편이다. 경사가 완만해 등산로라기보다 산책로에 가까운 정도이고, 다만 무장애 코스로 안내되는 길은 아니라 유모차나 휠체어로 도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늘이 이어지는 구간은 길지 않아 한여름 낮에는 볕이 그대로 드는 자리가 많다.
절벽 아래 뚫린 굴 17개
송악산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
해안 절벽 아래쪽에는 사람이 판 굴이 줄지어 뚫려 남았다. 일제강점기 말인 1945년 무렵 연합군 함대를 겨냥해 만든 시설로, 확인된 것만 17기이고 일자형과 H자형, ㄷ자형으로 모양이 나뉜다.
이 굴들은 2006년 12월에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등록 이후로는 안내판과 함께 관리되고 있다. 제주도민이 강제로 동원돼 파 내려간 자리라 풍경만 보고 지나치기에는 무게가 다른 곳이어서, 안내판을 한 번 읽고 지나가면 남는 것이 달라진다. 절벽 위쪽으로는 화산재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지층이 그대로 드러난다.
입장료도 주차료도 없는 둘레길
송악산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
입장료와 주차료는 받지 않는 것으로 안내돼 있다. 대중교통으로 간다면 752번 버스를 타고 산이수동 정류장에서 내리면 되는데, 제주 시내에서 출발하는 경우 환승이 필요하니 출발 전에 노선을 확인해 두는 편이 좋다. 주차장은 둘레길 입구 쪽에 마련해 두었다. 주말 낮에는 자리가 빨리 차는 편이다.
바다 위로는 섬 두 개가 나란히 떠올라 눈에 걸린다. 걷는 방향에 따라 두 섬이 겹쳐 보이기도 하고 나란히 놓이기도 한다. 가까이 보이는 형제섬과 그 너머 가파도가 걷는 내내 시야에 걸리기 때문에, 날이 맑은 날에는 능선 어디에 서도 바다와 섬이 같은 화면에 들어온다.
송악산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
걷고 나서 배를 타고 섬으로 건너가는 일정도 짤 수 있다. 가까운 운진항에서 가파도까지는 편도 10분이면 닿고 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가까이까지 하루 여섯 차례쯤 오가니, 오전에 둘레길을 돌고 오후에 섬으로 건너가는 순서가 무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