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예담촌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
경남 산청에는 흙과 돌을 섞어 쌓은 담장이 미로처럼 이어지는 옛 마을이 하나 남아 있다. 담장이 워낙 촘촘하게 얽혀 있어서 지도를 보고 들어가도 어느 쪽으로 나올지 모른 채 걷게 되는 곳이다.
늦여름이면 담 너머로 붉은 배롱나무 꽃이 마을 곳곳에서 올라온다. 그런데 이 마을을 오래 지켜 온 나무는 배롱나무가 아니라 어귀에 선 회화나무 두 그루이고, 마을을 대표하는 장면도 그쪽에서 나온다.
X자로 얽혀 자란 부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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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들어서면 굵은 나무 두 그루가 서로 몸을 기울여 엇갈린 채 서 있다. 두 나무가 자라면서 가지를 뻗다가 공중에서 X자 모양으로 교차해 버린 형태여서, 사람들이 부부나무라고 부르며 그 아래를 지나가는 것이 이 마을에서 첫 번째로 하는 일이 됐다.
두 그루 모두 수령이 대략 300년쯤으로 헤아려지는 오래된 나무들이다.
마을이 자리를 잡은 시기와 얼추 겹치니, 담장 안 사람들이 몇 대에 걸쳐 바뀌는 동안 이 두 그루만 같은 자리를 지켜 왔다는 뜻이 된다. 나무를 먼저 보고 마을을 도는 순서가 자연스럽게 굳은 것도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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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그 아래가 마을에서 가장 서늘한 자리가 되기도 한다. 잎이 촘촘해 그늘이 짙게 지고 나무가 큰 만큼 그늘의 폭도 넓어서, 담장을 한 바퀴 돌고 나온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모여 앉는다. 여름 한낮에는 마을에서 가장 붐비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이 마을에서 찍히는 사진 가운데 가장 많은 것도 결국 이 두 그루를 담은 장면이다.
돌담길 자체가 등록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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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에서 눈여겨볼 것은 집보다 담장 쪽이다. 흙에 돌을 섞어 쌓아 올린 담장이 골목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데, 이 돌담길 자체가 등록문화유산 제281호로 이름을 올려 두었다. 집 한 채가 아니라 길 전체가 지정된 흔치 않은 사례다.
담을 따라 걷다 보면 높이가 구간마다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 키를 넘는 자리가 있는가 하면 어깨쯤에서 끝나는 자리도 있어서, 담 너머로 마당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리듬이 걸음과 함께 생긴다. 같은 골목을 두 번 돌아도 지루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다.
이 마을이 2011년에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뽑힌 것도 담장의 몫이 크다. 입장료와 주차료를 받지 않으니 지나는 길에 차를 대고 한 바퀴 돌아보기에도 부담이 없다.
담장 안은 들여다보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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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지켜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이 마을은 관람용으로 꾸며 놓은 곳이 아니라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집들이 모인 곳이라, 대문 안으로 들어가거나 담 너머로 마당을 들여다보는 일은 삼가야 한다.
담장에 기대거나 올라서는 것도 피해야 할 일이다. 오래된 흙담은 겉보기보다 약해서 사람 무게가 실리면 사이에 박힌 돌이 빠지고, 한 번 무너진 자리는 원래 모양대로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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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 좁고 담이 높아 소리가 유난히 잘 울린다. 이른 아침이나 해가 기울 무렵에 조용히 걸으면 마을도 편하고, 담장에 드리운 그림자까지 길게 늘어져 사진도 그때가 가장 잘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