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월정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경남 함양의 화림동계곡에는 옛 선비들이 노닐던 정자가 물길을 따라 줄지어 서 있다. 그중에서도 농월정은 이름부터 운치가 깊다. 농월(弄月), 즉 '달을 희롱한다'는 뜻이다.
계곡의 너럭바위에 비친 달을 벗 삼아 풍류를 즐긴다는 의미로, 예부터 함양을 찾은 시인과 묵객이 반드시 거쳐 가던 자리였다. 정자를 둘러싼 너럭바위와 산자락이 가장 짙푸르게 물드는 6월 중순은, 이 풍류의 자리를 찾기에 더없이 좋은 때다.
농월정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농월정은 조선 시대 학자 지족당 박명부가 영조 9년인 1733년에 처음 지은 것으로 전한다.
거대한 너럭바위가 넓게 펼쳐진 계곡 한가운데, 그 바위를 굽어보는 자리에 정자가 앉아 있어 물과 바위와 정자가 하나의 풍경으로 어우러진다. 이런 빼어난 경관 덕에 농월정과 그 일원은 명승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불타 사라졌다 되살아난 정자
농월정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지금 우리가 보는 농월정은 사실 옛 정자 그대로가 아니다. 농월정은 2003년 뜻하지 않은 화재로 완전히 불타 사라지는 아픔을 겪었다.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 온 정자가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가 된 것이다. 이후 함양군이 옛 기록사진과 도면을 토대로 복원에 나서, 2015년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정자로 옛 모습을 되살렸다.
그래서 농월정 앞에 서면 정자의 단정한 자태와 함께, 한 번 사라졌다 다시 일어선 사연까지 함께 떠올리게 된다. 정자 아래 너럭바위에는 옛사람들이 새겨 놓은 글씨가 곳곳에 남아 있어, 이 자리가 오래도록 사랑받아 온 풍류의 터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정자 셋을 잇는 선비문화탐방로
농월정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농월정 하나만 보고 돌아오기는 아쉽다. 화림동계곡에는 농월정 외에도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같은 옛 정자가 줄줄이 이어져, 여덟 못과 여덟 정자를 뜻하는 '팔담팔정'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이 정자들을 차례로 잇는 길이 선비문화탐방로다.
탐방로는 계곡 물길을 따라 약 5.7km 이어지며, 거연정에서 시작해 동호정을 지나 농월정에 이르는 동안 정자와 소(沼), 너럭바위가 번갈아 나타난다. 길이 평탄해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 편하고, 천천히 걸어도 두 시간 남짓이면 닿는다.
농월정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정자마다 인근에 주차 공간이 있어, 다 걷기 부담스럽다면 거연정·동호정·농월정만 차로 옮겨 가며 둘러봐도 좋다.
한여름 성수기 전인 6월은 신록이 가장 무성하면서도 덥지 않아, 옥빛 계곡을 끼고 정자 사이를 걷기에 알맞은 시기다. 물놀이가 본격화되기 전이라 비교적 한산하게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이맘때의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