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밥솥 내솥에 흰쌀과 불린 현미, 검은콩, 보리를 담아 둔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밥솥을 열어 주걱으로 섞을 때까지는 멀쩡해 보이는데, 한 숟갈 떠서 씹다 보면 콩 한 알이 사각하고 부서지거나 현미 알갱이 가운데가 딱딱하게 남아 있는 날이 있다. 식구들이 먹다 말고 숟가락을 내려놓으면 밥 한 솥을 그대로 두고 다시 안쳐야 하나 싶어진다.
이럴 때 대부분 밥물을 탓한다. 다음번에는 물을 한 눈금 더 붓고 취사 버튼을 누르는데, 결과는 겉의 흰쌀만 질척해지고 콩과 현미 속은 여전히 단단한 밥이 된다. 같은 자리가 또 설익으니 잡곡을 줄이게 되고, 몸에 좋다고 사 둔 잡곡은 봉지째 남는다.
잡곡밥이 설익는 것은 밥물 눈금보다 불리는 시간 쪽에서 생기는 일인 경우가 많다. 잡곡은 종류마다 물을 먹는 속도가 달라서, 한 그릇에 다 같이 담가 30분 뒤에 건지면 어떤 것은 속까지 충분히 불고 어떤 것은 겉만 젖은 채로 밥솥에 들어간다.
같은 솥에서 콩과 현미만 단단하게 씹히는 이유
물에 불린 흰쌀과 현미, 검은콩을 투명한 볼에 나눠 담아 알갱이 차이를 보여 주는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흰쌀은 겉껍질을 깎아 낸 상태라 물에 담그면 30분 안에 속까지 물이 들어간다. 반면 현미는 왕겨만 벗겨 낸 것이라 그 아래 겨층과 배아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이 층은 기름기가 있어 물을 튕겨 내는 성질이 강하다. 그래서 같은 물에 같은 시간을 담가도 현미 속은 마른 채로 남는다.
콩은 여기서 한 단계 더 걸린다. 서리태나 강낭콩은 껍질이 두껍고 알이 굵어서 물이 가운데까지 닿는 데 몇 시간이 필요하다. 겉은 금방 불어 주름이 펴지기 때문에 다 됐다고 보기 쉽지만 속은 아직 단단한 상태이고, 이대로 안치면 밥이 다 되도록 가운데만 사각거린다.
밥물을 늘려도 이 차이는 메워지지 않는다. 밥솥 안에서 물이 끓고 잦아드는 시간은 30분 안팎이라서, 그 사이에 콩 속까지 물이 들어갈 만큼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이다. 늘어난 물은 이미 충분히 분 흰쌀만 더 먹어 밥이 질어진다. 손을 대야 하는 곳은 밥물 눈금이 아니라 밥솥에 넣기 전에 담가 두는 시간이다.
잡곡 종류별로 나눠 불려 밥 짓는 방법
검은콩, 현미와 흑미, 보리와 귀리를 각각 물에 담가 둔 세 개의 볼.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준비는 볼을 두세 개 꺼내 놓는 데서 시작한다. 한꺼번에 담그지 않고 오래 걸리는 것부터 차례로 담그는데, 서리태나 강낭콩 같은 콩류는 최소 3시간, 율무도 3~4시간이 필요하다. 현미와 흑미는 1시간이 기본이고 2시간 안팎이면 속까지 고르게 분다. 보리와 귀리, 기장은 껍질이 얇아 30분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저녁 여섯 시에 밥을 안칠 생각이면 콩은 세 시쯤, 현미와 흑미는 네 시에서 다섯 시 사이, 보리와 귀리, 기장은 다섯 시 반쯤 담그면 시간이 맞는다. 시간이 모자랄 때는 현미와 귀리, 렌틸콩을 따뜻한 물에 담그면 1시간으로 줄일 수 있다.
현미와 귀리를 미지근한 물에 담가 둔 작은 유리 볼을 가까이에서 본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불린 잡곡은 각각 체에 밭쳐 물을 따라 버리고 씻어 둔 흰쌀과 함께 밥솥에 담는다. 밥물은 잡곡과 물을 1:1.2~1.4로 잡는데, 잡곡 비율이 높을수록 1.4 쪽으로 늘려 잡는다. 흑미나 콩을 담갔던 물은 색이 진하고 떫은맛이 있어 밥물로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불린 검은콩과 현미를 체에 밭쳐 물기를 뺀 뒤 밥솥 내솥에 넣는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취사가 끝나면 바로 열지 말고 10분쯤 뜸을 들인 다음 주걱으로 위아래를 바꿔 섞는다. 콩을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힘을 주지 않아도 뭉개지고 현미 알갱이 가운데에 흰 심이 보이지 않으면 제대로 된 것이다. 여름에는 상온에 오래 두면 담근 물에서 쉰내가 나니 세 시간 넘게 불릴 잡곡은 냉장실에 넣어 둔다.
요즘 나오는 잡곡 중에는 미리 금을 내 두어 불리지 않고 바로 넣는 제품도 있으니 포장 뒷면 표시를 한 번 확인하고 나서 담그는 시간을 잡아 보길 권한다. 담그는 시간만 곡물별로 나눠도 늘 사 먹던 그 잡곡으로 식구들이 남기지 않는 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