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부터 죽으면 안 됩니다” 스페인에 존재하는 이상한 온천마을


죽음이 금지된 스페인 그라나다 란하론 마을 / 사진=flicrk@Sergio Rodríguez

죽음이 금지된 스페인 그라나다 란하론 마을 / 사진=flicrk@Sergio Rodríguez

1999년 스페인 남부의 한 시장이 주민들에게 꽤 황당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당분간 죽지 마세요.”

농담처럼 들리지만 이유는 현실적이었습니다. 마을 공동묘지에 더 이상 자리가 없었던 겁니다.

장소는 그라나다 남쪽 산악지역에 자리한 작은 온천마을 란하론. 죽음까지 금지해야 했던 이 동네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당시 시장 호세 루비오는 새 묘지 부지를 확보할 때까지 주민들에게 건강을 각별히 챙겨달라는 취지의 선언을 실제로 발표했습니다.


죽으면 안 되는 마을

1999년 란하론의 공동묘지는 사실상 포화 상태였습니다. 새 묘지 부지가 필요했지만 해결이 늦어지자 당시 시장 호세 루비오가 선택한 방식은 정면돌파가 아니라 풍자였습니다. 주민들에게 새 묘지를 마련할 때까지 최대한 건강을 챙겨 죽지 말라고 지시했고, 선언문에는 아예 란하론에서 죽는 것을 금지한다는 문구까지 들어갔습니다. 물론 실제로 사망자를 처벌하겠다는 법은 아니었습니다. 행정 문제를 대놓고 비꼬면서 정부에 해결을 촉구한 정치적 퍼포먼스에 가까웠습니다. 당시 주민들도 대부분 이를 유머로 받아들였다고 전해집니다.


하필 장수와 건강의 마을

란하론 생수 / 온라인커뮤니티

란하론 생수 / 온라인커뮤니티

재미있는 건 란하론이 원래부터 물과 건강으로 유명한 마을이라는 점인데요. 이곳의 광천수는 18세기부터 건강 효능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19세기에는 온천 휴양지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현재 란하론 온천에는 서로 성분이 다른 6개의 광천수가 사용되며, 마사지와 수치료 프로그램도 운영됩니다. 죽음을 금지한 마을이 알고 보면 수백 년째 사람들이 몸을 돌보러 찾아오는 곳이라는 게 묘하게 잘 맞아떨어집니다.



스페인 여행 중 마트에 들어갔다면 Lanjarón이라는 이름이 적힌 생수를 본 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마을 이름 자체가 광천수 브랜드로 사용될 정도로 물이 지역의 상징입니다. 거리 곳곳에도 분수와 샘이 남아 있고, 오래된 중심가를 걷다 보면 물과 관련된 흔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덕분에 란하론은 단순히 ‘죽으면 안 되는 이상한 마을’보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광천수·온천 여행지라는 본업이 따로 있습니다.


위치는 그라나다에서 남쪽으로 내려간 시에라네바다 산맥 남사면, 알푸하라 지역입니다. 하얀 집이 이어지는 산악마을과 계곡을 함께 볼 수 있어 그라나다 여행에서 렌터카로 알푸하라를 돌 때 첫 관문처럼 넣기 좋습니다. 마을에는 온천뿐 아니라 란하론 성터와 오래된 골목, 꿀 박물관도 있습니다.


란하론의 ‘죽음 금지령’은 실제 처벌을 위한 법이라기보다 공동묘지 부족 문제를 알리기 위한 시장의 풍자였습니다. 하지만 이 황당한 사건 덕분에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마을 이름이 계속 회자되고 있습니다.  죽음은 금지됐지만 온천은 환영하는 마을. 란하론 정도는 기억해둘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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