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신안 영산도는 '봄 36일, 가을 36일'이라는 엄격한 채취 규칙을 통해 청정한 바다 생태계를 지켜가고 있습니다.
- 노인들만 남은 섬에 제주 원정 해녀들이 찾아와 바다 곳간을 열고, 치수 미달의 어린 생명들은 자연으로 돌려보냅니다.
-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연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바보 섬' 영산도와 가리산 부부의 삶은 진정한 상생의 가치를 보여줍니다.

전남 신안의 작은 섬 영산도가 '바보 섬'이라 불리면서도 자연의 풍요로움을 가득 머금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영산도는 고령화로 조업할 손길이 부족해 제주 해녀들을 '원정 용병'으로 초청하면서도, 봄 36일, 가을 36일이라는 엄격한 채취 제한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당장의 쉬운 이익 대신 자연이 스스로 회복할 시간을 확보해 주는 이 영리한 '바보들의 약속'이 기후 변화와 수산 자원 고갈 속에서 진정한 생태계 보존의 해답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1. 해녀도 없는데 넘쳐나는 전복과 홍합: 영산도 바다의 풍경
흑산도에서도 배를 타고 더 깊숙해 들어가는 '섬 속의 섬' 영산도에는 20명 남짓한 주민들이 옹기종기 살아가고 있습니다. 완연한 가을이 다가오면 한적하던 영산도 바다가 그야말로 생기로 가득 차오릅니다. 하지만 정작 섬을 지켜온 해녀들의 춘추는 어느덧 80세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거친 바닷속으로 물질을 할 수 있는 고령의 주민들이 점차 사라지자, 섬 사람들은 특별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바로 이웃 섬인 제주에서 노련한 '특급 원정 해녀들'을 모셔와 바다 곳간을 열어젖히는 일입니다.
자연이 허락한 만큼만 거두며 영산도 바다의 풍요로움을 지켜갑니다
제주와 호흡을 함께 맞춰 온 해녀들이 거센 풍파를 뚫고 물속으로 뛰어들면, 손바닥보다 더 커다랗게 자라난 자연산 전복과 거대한 가을 홍합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딴 바다는 수온 변화와 오염으로 백화현상이 일어나 조개 한 줌 줍기 어려워진다는데, 이곳 영산도 바다만큼은 세월을 비껴간 듯 푸르고 활력이 넘쳐납니다. 땀방울을 송글송글 흘리며 건져 올린 최상품 전복의 고운 빛깔을 보니 과연 자연이 아낌없이 내어준 명물이라 불릴 만하지요?
2. 왜 다른 바다가 텅 비어갈 때 이곳은 생명이 춤출까요?
많은 연안 어장들이 무분별한 어획과 환경 변화로 인해 고갈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산도가 다른 바다와 대조적으로 자연산 자원의 보고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욕심을 한 단계 내려놓은 덕분입니다.
한 계절 동안 기다리고 인내한 덕분에 더 크고 실하게 자란 영산도의 가을 홍합입니다.
대부분의 어가는 당장의 시세가 좋을 때 대량으로 채취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영산도 바다 사람들은 '적당량을 모아 가치 있게 팔자'는 철학을 수십 년 넘게 지켜오고 있습니다. 수온 변화로 다른 지역의 양식 홍합들이 떼죽음을 당할 때도 이곳의 홍합은 야생의 거친 갯바위에 달라붙어 그야말로 단단하고 건강하게 제 몸집을 키워냈습니다. 주민들과 원정 해녀들은 자연이 스스로 지은 냉장고 속에서 필요한 시기에만 필요한 만큼 꺼내 먹는 지혜를 체득한 셈입니다.
3. '봄-가을 딱 36일의 규칙'과 어린 생명 방생
영산도를 지탱해 주는 가장 강인한 힘은 주민들이 스스로 제정하고 지켜나가는 자율적인 생태 시간표에 있습니다. 영산도 사람들은 봄에 36일, 가을에 36일만 채취를 허락합니다. 일 년 중 고작 72일만이 이곳 바다의 문이 열리는 온전한 시간입니다.
당장의 이익보다는 멸종을 막고 내일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주민들이 정한 채취 규칙을 실천합니다.
한창 전복을 채집하는 과정에서도 아주 엄격한 심사가 이루어집니다. 육지의 시장에 가져가면 제법 그럴듯한 중품 대접을 받아 값을 치를 법한 전복일지라도 기준 크기보다 작다면 지체 없이 푸른 바다 바닥으로 돌려보냅니다. "당장 잡으면 모두 돈이지요. 그래서 외지인들은 우리를 '바보 섬'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다 따버리면 영산도 바다는 텅 빈 사막이 되고 말 겁니다"라고 이장님은 허허롭게 웃어 보입니다. 지속 가능한 공존을 위해 불편하고 가난한 선택을 보편적 상식으로 받아들인 것, 이것이 바보의 탈을 쓴 지혜의 정체입니다.
4. 자연의 순리에 스며들어 행복을 짓는 산골 부부
자연의 흐름에 몸을 정렬하고 조금은 느릿하게 살아가는 영리한 고립의 자세는 섬 바다 너머 해발 1050m의 강원도 홍천 가리산 자락에서도 고스란히 목격됩니다. 시골 처녀와 서울 총각으로 만나 무려 10여 년간 직접 몸으로 흙집을 조각하며 살아온 김회정, 이명택 부부의 가을 풍경이 바로 그렇습니다.
직접 짓는 산골 살림에 필요한 실용적인 물건들을 꼼꼼히 비교하며 준비합니다
도시에서는 겪어본 적 없던 소소한 의견 충돌들이 깊은 산골로 들어와 몸소 일하고 집을 가꾸며 비로소 해소되었다고 부부는 고백합니다. 텃밭에서 갓 기른 싱그러운 채소에 식용 꽃 한 송이를 얹어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가을의 특별식을 차려내는 순간부터, 찬 바람을 이겨낼 화덕 피자를 손수 구워 나누는 일까지 이들의 모든 일상은 정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직접 가꾼 텃밭 채소와 꽃으로 차려낸 소박한 밥상 앞에서 부부가 평온한 일상을 나눕니다.
"다소 귀찮은 것들로 가득한 삶이지만, 안 귀찮으면 시골 삶의 맛과 여유를 즐길 수 없어요. 귀찮음 또한 곧 행복을 위한 필수 조건이지요." 불편이라는 가격을 당당히 치르고 자연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이들의 미소는 영산도 바다 사람들의 그늘 없이 환한 표정들을 꼭 빼닮았습니다.
5. 앞으로의 공존과 기후 소멸 극복을 위한 과제
우리가 앞으로 가장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할 점은 개발과 효율성의 이름 아래 무차별적으로 훼손되기 쉬운 낙도 공동체와 산골 생태계를 어떻게 조용하고 단단하게 후세로 물려줄 것인가에 있습니다.
인위적인 가공과 가속화는 당장의 물질적 풍요를 선사해 줄 순 있어도, 결국 생명력 넘치는 본질을 거무스름하게 메마르게 합니다. 가파르게 질주하는 고령화의 그늘 속에서도 자연의 자정식 조절 능력을 온전히 사랑하고 아낀다면 인류는 또 한 번 자연에게 더 큰 사랑으로 보답받을 것입니다. 다가오는 겨울을 채비하기 위해 정성스레 장작을 가다듬는 가리산 골짜기와 가을 한 철 풍성한 한 상 차림으로 잔치를 치러낸 영산도 바다의 온화한 하루는 오늘날 깊은 여운을 전합니다. 당신의 삶에도 조급함을 조금 내려놓을 쉼표를 잠시 마련해 두었을까요?
FAQ
영산도는 왜 일 년에 딱 36일씩 두 번만 해산물을 캐나요?
무분별하게 많이 따면 생물들이 멸종하여 지속 가능성을 잃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산도 주민들은 자체 규칙을 정해 봄에 36일, 가을에 36일 동안만 한정적으로 채취하여 바다가 스스로 더 알차고 튼튼하게 자라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합니다.
제주 해녀들이 전라도 영산도까지 원정 물질을 오는 이유가 있나요?
영산도 거주 주민들의 연령대가 높아져 대부분 80세 이상이 되었기에 물질 조업이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영산도의 청정한 수산 자원을 보존하면서 채취하기 위해, 조업 능력이 우수한 제주도 해녀 특공대들이 매해 시기에 맞춰 방문 조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치수 미달 전복을 방생하는 게 경제적으로 정말 도움이 되나요?
단기적으로는 손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훨씬 유리합니다. 작은 크기의 전복들을 보존해 주어야 산란 시기를 거치며 건강하게 증식할 수 있고, 추후 훨씬 씨알이 굵은 거대한 자연산 특상품으로 수확되어 어민 가계에 더 든든한 소득 보탬이 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