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년퇴직한 65세의 아들이 90세를 앞두고 굽은 허리로 홀로 일하는 어머니가 걱정되어 지리산 200년 된 억새집으로 40년 만에 귀향했습니다.
- 느리고 고된 전통 방식을 고집하는 어머니와 체계적인 시스템을 추구하는 도시파 아들이 투박하게 투닥거리며 지리산 억새집의 따뜻한 밥상 공동체를 지켜가고 있습니다.
-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찾아오는 이들을 정성으로 맞이하는 어머니의 건강이 앞으로도 지리산 노포 민박의 온기를 유지하는 데 핵심이 될 것입니다.

코끝을 스치는 찬 바람에 가을빛이 완연해지면, 지리산 자락 해발 700m 고갯길은 붉고 노란 화원처럼 아름답게 물들어갑니다. 이 고즈넉한 비탈길에 무려 200살이 넘은 유서 깊은 초가가 우뚝 서 있습니다. 바로 고단한 나그네들의 든든한 쉼터가 되어주었던 지리산 억새집입니다. 이곳의 안주인인 김채옥 할머니에게 대단히 특별한 소식이 찾아왔습니다. 지난해 봄, 대기업에서 정년퇴직한 맏아들 공상곤 씨(65)가 40년 만에 고향 품으로 돌아와 엄마와 다시 한솥밥을 먹기 시작한 것입니다. 평생 구슬땀을 흘리며 일만 하던 엄마의 굽어버린 허리를 지키기 위해, 번듯한 직장 생활을 뒤로한 아들의 귀향으로 억새집의 새로운 2막이 활짝 열렸습니다.
사라져가는 옛 기억과 따뜻한 밥상을 지켜낸다는 것
어머니 김채옥 할머니가 평생 지켜온 이 억새집은 단순한 거처가 아닙니다. 18살 꽃다운 나이에 가마를 타고 시집와 무려 65년의 모진 세월을 묵묵히 버텨내 준 마음의 안식처이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남편의 흔적이 고스란히 깃든 그리움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200년 넘은 억새집을 지키며 긴 세월을 버텨온 할머니의 일상이 고즈넉하게 이어집니다.
지리산 둘레길의 명물로 자리매김한 이 집은 매일 수많은 등산객에게 정성 어린 보양식과 포근한 민박을 베풀어주는 고향집 같은 가치를 지닙니다. 하지만 점차 힘에 부치는 노모의 어깨 위에 얹어진 무거운 가업 주방을 누군가는 이어받아야 마땅했습니다. 아들 상곤 씨가 지리산으로 돌아온 것은 홀로 산골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한 따뜻한 효심이자, 사라져갈 뻔한 200년 고택의 생활 문화와 깊은 손맛의 전통을 오래도록 지켜내기 위한 구원투수적 한걸음이었습니다.
청상과부로 살아온 어머니의 고단한 일생과 아들의 결심
이토록 고집스럽게 고향집 터를 홀로 가꾼 진짜 비결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김채옥 할머니는 불과 스물둘이라는 젊은 나이에 청상이 되어 외아들을 홀로 품었습니다. 하나뿐인 귀한 자식을 당당히 키워내기 위해 매일같이 밭으로 일하러 가며 낮잠 한 번 자보지 못한 모진 노동의 삶을 자처해 왔습니다.
평생 쉼 없이 일해온 어머니의 굽은 허리에도, 밭에서 자라난 작물을 마주할 때면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집니다.
지나온 날들이 결코 평탄치 않았기에 아들에게 억새집은 그리움 그 자체였습니다. 작년 봄, 그저 고사리 일손을 조금 돕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왔던 상곤 씨는 거칠어진 손길로 고된 농사일을 부지런히 해치우는 엄마의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 울컥한 마음에 산골 주저앉기를 결심했습니다. 40년간 어머니 밥상에 오르던 정겹고 따뜻한 된장찌개 버금가는 따스함을 이제는 장성하여 환갑이 훌쩍 지난 자식이 보답할 때임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입니다.
‘계량형 도시 아들’과 ‘손맛형 어머니’의 좌충우돌 현실 장터
오랜 시간 도회지에서 정형화된 업무에 익숙했던 퇴직 일꾼 아들과 제철의 재료로 감을 잡아 일하는 지리산 터줏대감 어머니 사이에 다사다난한 일상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상곤 씨는 그야말로 농사랑 요리 모두에서 백점 만점에 빵점이라는 가슴 아픈 평가를 어머니에게 전대받았지만, 아궁이에 짚을 때고 손님이 오실 때면 귀한 산닭을 잡기 위해 산비탈 추격전도 벌이며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평생의 연륜이 깃든 억새집 주방에서 어머니가 직접 손질한 재료로 정성 가득한 보양식을 준비합니다.
이 둘은 일하는 스타일 때문에 시시때때로 입담 대결을 펼치기도 합니다. 아들은 수저의 치수를 정확하게 지키고자 하나, 어머니는 평생을 이어온 특유의 넉살 가득한 눈대중 손맛이 핵심이라며 참견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70년 지기 동창생들이 모진 주름살을 이끌고 억새집 정원에 찾아와 정결히 내놓은 엄나무 백숙의 따뜻함을 맛볼 때는, 누구보다 깊은 존경을 표하게 됩니다. 아들은 비록 솥 씻기와 뒤처리가 본인의 전공이 되었을지라도 든든한 어머니의 곁에 있어 마냥 미소 짓고 행복해합니다.
수십 년간 지켜온 할머니만의 비법이 담긴 음식은 찾는 이들의 발길을 끊이지 않게 만든다.
건강하게 더 오래, 억새 지붕 아래 나눌 인생의 맛을 바라보며
이제 우리 삶이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어머니의 건강과 유쾌한 노년의 일조 비율입니다. 억새집의 하루는 심심할 틈이 전혀 없지만, 한 발짝 걸을 때마다 찾아오는 허리의 찌릿함과 고달픈 노동은 여전히 극복할 과제입니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간절히 제안합니다. 제발 농사 일을 이전의 백분의 일 수준으로 대폭 줄이고 조금만 더 게으른 할머니가 되어 달라고 말이죠.
평생 어머니가 지켜온 산골 집에서 이제는 한 상 가득 따뜻한 밥상을 함께 나누는 단란한 일상.
건강하셔야 따뜻한 아궁이의 열기 속에서 어머니가 가장 사랑하는 밥 짓기와 손님 대접도 더 먼 지평선 너머까지 지속할 수 있을 테니까요. 2년마다 말린 억새 지붕을 교체해 주어야 하는 번거로운 고택의 수고스러움도, 어머니의 평생 철학 가득한 건강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한 편의 따사로운 전원 다큐멘터리처럼 오랜 울림을 세상에 전해줄 것을 우리는 확신합니다.
FAQ
지리산 억새집은 어떤 곳인가요?
200년이 넘은 전통가옥으로 가을 억새를 말려 2년에 한 번씩 지붕을 갈아주며 보존해온 소중한 삶의 터전입니다. 김채옥 할머니께서 30년 넘게 민박과 지리산 둘레길 손님들을 위한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려주고 계십니다.
아들 공상곤 씨가 귀향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대기업에서 정년퇴직한 뒤 지난해 봄 힘들어하시는 어머니의 고사리 농사 일손을 돕고자 내려왔습니다. 굽은 허리로 여전히 고생하시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어머니가 평생 일궈온 억새집을 지키고 정성스러운 한 끼의 인연을 오래 돕고자 귀향을 결정하셨습니다.
어머니 김채옥 할머니 백숙의 독특한 비결은 무엇인가요?
산에 풀어 키운 튼튼한 토종닭을 직접 잡으시며, 서울 조카가 보내준 한약재와 엄나무, 칡뿌리를 넣고 옥수수 대를 함께 끓여 닭 기름기를 꼼꼼히 제거합니다. 게다가 잡내를 잡고 구수한 맛을 내는 볶은 콩가루와 30년 묵은 조선간장으로 맛을 돋우는 것이 이 집만의 특색 있는 비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