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코리아=민경원 기자] 산과 강이 가까운 구례에서는 여행의 속도가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지리산 능선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걷다가 섬진강 옆 대숲으로 들어서면 한여름의 열기도 잠시 멀어진다. 화려한 볼거리보다 숲과 길, 작은 마을을 천천히 누비는 시간이 여행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전남 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동시에 품고 있어 산행부터 숲 산책, 예술 여행까지 서로 다른 하루를 만들기 좋다. 여름의 끝자락, 조금은 선선해진 바람을 따라 노고단과 섬진강 대나무숲길, 구례예술인마을, 천개의향나무숲, 산수유마을을 연결해 구례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나보자.
지리산이 한눈에…구름 위를 걷는 듯한 ‘노고단’
구례 여행에서 지리산을 빼놓기는 어렵다. 토지면 문수리 일대에 자리한 노고단은 지리산의 대표적인 봉우리 가운데 하나로, 능선에 올라서면 겹겹이 이어지는 산줄기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노고단 야생화 원추리꽃./ 사진=구례군 |
발아래 펼쳐지는 산봉우리와 계곡, 멀리 섬진강으로 이어지는 풍경은 구례가 왜 ‘산과 강의 도시’로 불리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시야가 트이는 날에는 능선이 여러 겹으로 포개지며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장면을 만날 수 있다.
여름철에는 높은 고도에서 만나는 바람도 반갑다. 정상만 바라보고 서두르기보다 탐방로 곳곳에서 달라지는 지리산의 표정을 천천히 살펴보는 편이 좋다. 탐방 구간에 따라 예약이나 출입 관련 사항이 달라질 수 있어 출발 전 국립공원공단을 통해 최신 탐방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각사각 대숲 소리가 여름 음악…섬진강 대나무숲길
산에서 내려왔다면 이번에는 강을 따라 걸을 차례다. 구례읍 원방리의 섬진강 대나무숲길은 짙은 초록빛 사이로 여유로운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야생 갓꽃 활짝 핀 구례 섬진강 대나무숲길 |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대나무가 자연스럽게 그늘을 만들고, 바람이 스칠 때마다 잎이 서로 부딪치며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자동차 소음과 사람들의 목소리 대신 바람과 나뭇잎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걷는 것이 이 길의 묘미다.
대숲을 벗어나면 섬진강 주변 생태탐방로와 연결돼 산책을 이어갈 수 있다. 시기에 따라 길 주변에서 야생화도 만날 수 있다. 강과 대숲이라는 전혀 다른 풍경을 한 번에 즐길 수 있어 오래 걷지 않아도 구례다운 자연을 느끼기 좋다.
마을 전체가 작은 갤러리…구례예술인마을
구례의 자연 사이에는 조금 색다른 공간도 숨어 있다. 광의면 온당리에 조성된 구례예술인마을이다.
화가와 도예가, 건축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모여 살면서 작업하는 곳으로, 개성 있는 건축물과 작업공간이 어우러져 일반적인 농촌마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갤러리와 작업실을 둘러보다 카페에서 쉬어가는 식으로 일정을 잡으면 좋다. 숙박이 가능한 공간도 있어 자연과 예술을 함께 즐기는 체류형 여행지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매주 토요일에는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을 만날 수 있는 ‘갤러리 오픈데이’가 운영되기도 한다. 다만 개별 공간의 개방 여부와 일정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방문 전 운영 정보를 확인하는 편이 좋다.
생각도 잠시 쉬어가는 곳…천개의향나무숲
광의면 지천리로 이동하면 이름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는 ‘천개의향나무숲’을 만난다.
천개의향나무숲 향나무숲길 |
여러 종류의 향나무와 식물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북적이는 관광지를 빠르게 둘러보기보다 숲속을 천천히 걸으며 머물기에 어울린다. 잘 가꿔진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서 낯선 식물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무엇보다 이곳의 매력은 ‘고요함’이다. 숲을 채우는 나무 향과 바람, 주변 풍경을 느끼며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걸음이 느려진다. 여행 중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원하는 사람에게 특히 잘 맞는다.
조용한 숲의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 음식물 반입과 흡연은 제한된다. 사진만 찍고 떠나는 명소라기보다 자연 속에서 잠시 머물며 쉬어가는 장소로 접근하는 편이 좋다.
산수유마을은 봄에만 예쁘다?…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
산동면 위안리의 구례산수유마을은 노란 꽃이 온 마을을 뒤덮는 봄 풍경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봄이 지나면 여행이 끝나는 곳은 아니다.
해발 약 400m에 자리한 마을은 지리산 자락과 돌담, 산수유나무가 어우러져 계절마다 분위기가 달라진다. 여름에는 짙어진 초록 사이를 걸을 수 있고, 가을이 가까워지면 꽃이 있던 자리에 붉은 산수유 열매가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산수유 옛길을 따라 걷거나 지리산둘레길과 묶어 트레킹 코스를 만들 수도 있다. 인근 수락폭포까지 동선을 넓히면 시원한 물줄기를 만나는 여름 여행도 가능하다. 가을에는 산수유 열매가 익어가는 마을 풍경을, 겨울에는 만복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설경을 만날 수 있어 계절을 바꿔 다시 찾아도 좋다.
구례산수유마을/사진-산림청 |
‘빨리 보는 여행’보다 ‘천천히 머무는 여행’
구례의 매력은 하나의 압도적인 관광지에 있지 않다. 아침에는 지리산 능선을 걷고, 오후에는 섬진강 대숲에서 바람 소리를 듣다가 작은 예술인마을과 숲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 하루 안에서도 여행의 풍경이 계속 바뀐다.
특히 여름 끝자락에는 산과 강, 숲을 연결하는 일정이 잘 어울린다. 노고단의 탁 트인 풍경에서 시작해 섬진강 대나무숲길의 초록 그늘로 내려오고, 천개의향나무숲과 산수유마을에서 느긋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식이다.
바다로 떠나는 여름휴가와는 결이 다르다. 물놀이 대신 숲길을 걷고, 시끌벅적한 관광지 대신 바람과 대숲 소리를 따라가는 여행. 여름이 물러나는 길목에서 조금 느린 휴식이 필요하다면 구례로 향할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