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실에서 꺼낸 작은 고춧가루 용기를 뚜껑 닫은 채 조리대 위에 둔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고춧가루는 한 번 사면 몇 달을 두고 쓰는 양념이라 대부분 냉동실에 넣어 둔다. 봄에 빻아 둔 것을 여름 내내 꺼내 쓰고, 가을 김장 무렵에 또 한 봉지를 채워 넣는 식이다. 얼려 두었으니 색도 향도 처음 그대로일 거라고 믿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반년쯤 지나 통을 열어 보면 넣을 때의 붉은빛이 아니다. 가루가 군데군데 뭉쳐 숟가락에 걸리고, 코를 대면 매운 향 대신 냉동실 냄새가 먼저 올라온다. 분명 얼려 두었는데도 이렇게 되는 이유를 모르니 다음번에도 같은 자리에 같은 방식으로 넣게 된다.
고춧가루를 상하게 하는 것은 냉동실 안이 아니라 통을 꺼내 뚜껑을 여는 그 짧은 순간이다. 꺼내자마자 열지 말고 뚜껑을 닫은 채 5~10분만 두었다가 열면 색과 향이 훨씬 오래 간다.
냉동실에서 막 꺼낸 고춧가루 통에 물기가 생기는 이유
차가운 고춧가루 용기 바깥면에만 옅은 물방울이 보이고 뚜껑은 닫혀 있는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겨울에 밖에 있다가 실내로 들어오면 안경알이 뿌옇게 흐려진다. 차가운 유리에 따뜻한 공기가 닿으면서 공기 중의 수분이 물방울로 맺히는 것인데, 냉동실에서 막 꺼낸 고춧가루 통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통 자체가 영하로 차 있어서 주방의 따뜻한 공기와 만나는 면마다 물방울이 맺힌다.
뚜껑을 바로 열면 그 따뜻한 공기가 통 안으로 들어가 가루 위에 그대로 내려앉는다. 고춧가루는 물기를 잘 빨아들여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 수분이 표면부터 스며들고, 다시 냉동실에 넣으면 젖은 자리끼리 붙어 덩어리가 된다. 꺼낼 때마다 이 과정이 되풀이되니 한 번 열 때마다 조금씩 상태가 나빠진다.
통을 닫은 채로 두면 물방울은 통 바깥면에만 맺히고 안쪽 가루는 마른 상태로 남는다. 5~10분이면 통이 주방 온도에 가까워지는데, 이때 열면 안팎의 온도 차가 거의 없어 공기가 들어가도 수분이 맺히지 않는다. 고춧가루를 지키는 방법은 결국 통을 여는 시점을 늦추고 여는 횟수 자체를 줄이는 쪽이다.
냉동실 고춧가루 눅눅해지지 않게 꺼내 쓰는 방법
고춧가루를 1~2주분씩 담은 작은 밀폐용기 여러 개를 냉동실 안쪽 선반에 모아 둔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먼저 큰 봉지째 넣어 둔 고춧가루를 작은 용기 여러 개에 나눠 담는다. 한 통에 1~2주 동안 쓸 양만 담는 것이 기준이라, 국이나 볶음에 자주 쓰는 집이라면 작은 반찬통 하나 정도가 알맞다. 뚜껑이 잘 닫히는 용기가 좋고, 담기 전에 용기 안쪽을 마른 행주로 닦아 물기를 없앤다.
나눠 담은 용기는 냉동실 안쪽에 모아 둔다. 냉장실은 문을 여닫을 때마다 온도가 오르내려서 가루가 덩어리지고 다른 반찬 냄새가 배기 쉬운 반면, 냉동실 안쪽은 온도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된다. 지금 쓰는 통 하나만 꺼내 쓰고 나머지는 열지 않은 채로 두는 것이 나눠 담는 이유다.
쓸 때는 통 하나를 꺼내 뚜껑을 닫은 그대로 조리대에 5~10분 올려 둔다. 그 사이에 재료를 다듬거나 냄비를 불에 올려 두면 시간이 맞는다. 통 바깥면에 맺혔던 물방울이 사라지고 손으로 감쌌을 때 차갑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열어도 되는 때다.
뚜껑을 닫은 고춧가루 용기가 깨끗한 조리대 위에서 실온에 잠시 놓여 있는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뚜껑을 열고 물기가 없는 마른 숟가락으로 필요한 양만 덜어 낸 다음 바로 뚜껑을 닫는다. 방금 국을 젓던 숟가락이나 씻고 나서 물기가 남은 숟가락을 넣으면 닿은 자리부터 굳고 그 부분에 냄새가 밴다. 고춧가루 통에만 쓰는 숟가락을 하나 정해 마른 곳에 따로 두면 매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열어 둔 고춧가루 용기에서 마른 작은 숟가락으로 필요한 양만 덜어 내는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조리하는 동안 통을 열어 둔 채 가스레인지 옆에 두면 올라온 김이 그대로 들어가니, 덜고 난 통은 곧장 냉동실로 돌려놓는다. 이미 뭉친 고춧가루는 손으로 부숴 보아 가루가 다시 흩어지면 그대로 쓰고, 눅눅하게 뭉개지면 그 통부터 먼저 쓰는 것이 좋다.
고춧가루는 한 번 눅눅해지면 다시 말려도 색과 향이 돌아오지 않으니, 통을 꺼낸 뒤 5~10분만 기다리는 습관을 들여 보길 권한다. 이 짧은 기다림이 반년 뒤에도 처음 빻았을 때의 붉은색으로 국물 색을 내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