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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발 700m의 척박한 화산마을 산꼭대기에 터를 잡은 자매는, 남들이 엄두도 내지 못하던 곳에서 스스로 삶의 터전을 일구어냈습니다.
  • 길조차 없던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정성을 다해 흙을 일구어 얻은 약초와 제철 나물은 그 어떤 진미보다 깊은 행복을 선사합니다.
  • 빠르고 편리한 것만 찾는 현대인들에게, 자연의 바람을 맞으며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삶이 주는 진정한 여유와 가치를 일깨워줍니다.

끝없는 하늘이 그야말로 지붕이 되는 곳, 구름이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해발 700미터의 산꼭대기에서 온전히 자신만의 행복을 일구어 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편리한 도시의 삶을 뒤로하고 이 험준한 고지대에 터를 잡은 김수자 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과 치유는 편리함이 아닌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땀 흘리는 정성에서 온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해발 700미터 산꼭대기 마당에서 두 여성이 쪼그려 앉아 풀을 뽑고 있고, 그 뒤로 빨간 의자와 탁자가 놓여 있다.

도시의 편리함을 뒤로하고 산꼭대기에 터를 잡은 자매가 함께 땀 흘리며 소박한 일상을 가꾸고 있습니다.


지금, 하늘 지붕 아래 펼쳐진 풍경

사방이 시원하게 뚫려 산도 발아래 놓이는 구름 위의 땅, 화산마을. 김수자 씨는 이곳 산봉우리에 무려 4년 전 홀로 터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작년부터는 든든한 이모네(동생 부부)가 뒤따라와 이웃이 되어주었지요. 자매가 함께하니 적막하던 산꼭대기에는 날마다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묵은 더덕밭과 우거진 수풀이 뒤엉켜 길조차 보이지 않던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매는 손수 돌을 골라내고 흙을 일구며 자신들만의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사랑스러운 손녀 시연이가 놀러 오는 날이면, 고단한 산길은 금세 정겨운 놀이터로 변하곤 합니다.

왜 50년 산 토박이도 주저한 이곳에 터를 잡았을까요?

이곳 화산마을은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3, 40년 넘게 밭을 일구어온 토박이들조차 결코 살아볼 엄두를 내지 못하던 거친 곳이었습니다. 물도 전기도 귀하고, 여름철에도 밤이 되면 온돌방에 불을 지펴야 할 만큼 서늘한 기후를 가진 척박한 고지대이기 때문입니다.


작업용 장갑을 낀 손으로 흙이 묻은 더덕을 들어 올려 보여주는 모습

거친 산비탈을 일구며 땀 흘려 얻은 귀한 결실이 소박한 기쁨을 더해줍니다.


주변 모두가 말렸던 이 무모한 도전에 대해 김수자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 2년 동안은 준비 없이 들어와 정말 대책 없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경치가 주는 행복이 50%라면, 남은 50%는 내 노동과 정성으로 채워가야 진정한 내 삶이 되는 법이죠." 남들이 보기엔 그저 불편하고 고단한 선택일지 몰라도, 그녀에게는 스스로의 힘으로 온전한 삶을 채워가는 값진 기회였습니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흘리는 구슬땀의 가치

화산마을의 하루는 자연의 시계에 맞춰 흘러갑니다. 수십 번의 호미질 끝에 겨우 건져 올린 두어 뿌리의 더덕, 한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새콤달콤한 산딸기는 기교 없는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지대가 높아 아래 세상보다 무려 한 달이나 늦게 자라는 여린 나물과 채소들은, 기다림을 아는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특별한 별미입니다.


울창한 숲과 산이 어우러진 좁은 비포장 산길을 흰색 트럭 한 대가 천천히 지나가고 있다.

굽이진 산길을 따라 오르는 트럭은 이곳 산꼭대기 마을에서 보내는 일상의 소박한 풍경입니다.


산에서 뜯어온 약초와 구지뽕나무, 오가피를 가마솥에 넣고 오랜 시간 푹 고아 만드는 조청은 그야말로 시간과 정성이 빚어낸 결정체입니다.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직접 땀 흘려 얻은 수확물로 차려낸 소박한 밥상 앞에서 자매는 세상 그 누구보다 든든하고 넉넉한 여유를 누립니다.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삶이 가져온 변화

도시의 빠르고 편리한 삶에 익숙한 이들에게 해발 700미터의 삶은 온통 불편함투성이일지도 모릅니다. 울퉁불퉁한 고갯길을 오르다 차 시동이 꺼지기 일쑤고, 흙냄새 땀냄새 가실 날이 없으니까요.


비포장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 흰색 소형 트럭과 주변의 밭과 나무들

불편함을 감수하고 선택한 산꼭대기에서의 삶은 매일이 새로운 모험이자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곳에 들어온 이후로 이들의 삶에서는 짜증과 조급함이 사라졌습니다. 가파른 언덕길에서 시동이 꺼져도 그저 유쾌한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이웃 노인회장님이 건네준 살구 한 바구니에 온 동네가 행복해집니다. 밑에 내려가서 살면 어떻겠냐는 질문에 자매는 단호하게 답합니다. "아래 세상에 내려가면 바람부터가 틀려서 이틀도 못 버티고 다시 올라오게 돼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하늘 아래 첫 동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바로 이곳 화산마을로 들어온 것입니다."

김수자 씨의 이 한마디에는 척박한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바꾸어낸 이의 당당한 자부심과 깊은 평온함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더 편리하고 더 빠른 것만을 쫓느라, 정작 스스로의 땀방울이 주는 정직한 기쁨과 바람 한 점에 기대어 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구름 위 화산마을의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따뜻한 연기가 오늘날 고단한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잔잔한 물음을 던집니다.


FAQ

화산마을은 어떤 곳인가요?

해발 700미터의 고지대에 위치한 산꼭대기 마을로, 사방이 탁 트여 있어 구름과 산이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비경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지대가 높다 보니 평지보다 기온이 낮아 한여름에도 밤에는 온돌방에 불을 때야 할 만큼 서늘하고, 나물이나 과일의 수확 시기도 한 달가량 늦습니다.

남들이 말리는 험한 곳에 집을 짓고 정착한 비결은 무엇인가요?

처음 2년 동안은 길도 없고 수풀만 우거져 고생이 많았지만, '경치가 주는 행복이 50%라면 나머지 50%는 내 정성으로 채운다'는 마음가짐으로 묵묵히 노동을 이어갔습니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고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뚝심이 있었기에 정착이 가능했습니다.

자매가 함께 모여 살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언니 김수자 씨가 먼저 화산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았고, 작년부터 동생인 이모네 부부가 뒤따라 들어와 이웃사촌이 되었습니다. 험한 산속 생활이지만 자매가 함께 밭일을 하고 일상을 공유하면서 외로울 틈 없이 활기차고 유쾌한 귀촌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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