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지 않은 포도 송이를 작은 덩이로 나누기 전, 껍질의 하얀 왁스층이 보이도록 담은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9월 하순이 되면 과일 가게 앞자리가 포도로 채워진다. 한 송이 값이 만만치 않아도 제철이라 맛이 좋으니 두어 송이씩 사 오게 되는데, 집에 들어와서 하는 일은 대개 정해져 있다. 흐르는 물에 씻어 물기를 털고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담아 둔 포도는 이틀만 지나도 상태가 달라진다. 껍질에 잔주름이 잡히고 손으로 집으면 알이 툭 떨어지며, 통 바닥에는 물이 고여 그 자리에 닿은 알이 물러 있다. 며칠 나눠 먹으려고 사 온 포도를 서둘러 먹어 치우거나 절반을 버리게 된다.
포도가 이렇게 빨리 무르는 것은 냉장고 탓이 아니라 사 온 날 씻어 둔 탓이다. 포도는 씻지 않은 채로 송이를 작게 나눠 종이에 싸서 밀폐용기에 담아 두면 같은 포도가 일주일이 넘어도 알이 탱탱하다.
포도를 미리 씻어 두면 이틀 만에 물러지는 이유
포도알 사이에 물기가 남기 쉬운 촘촘한 송이와 껍질의 하얀 왁스층을 가까이에서 보여 주는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포도알이 무르는 것은 껍질 겉에서 시작된다. 알과 알이 빽빽하게 붙은 송이는 사이사이로 물기가 한번 들어가면 잘 마르지 않는데, 그 물기가 껍질에 계속 닿아 있으면 껍질이 약해지고 그 자리부터 색이 변하며 물러진다. 씻은 뒤에 송이를 흔들어 털어 내는 정도로는 알 사이에 고인 물까지 빠지지 않고, 밀폐용기에 담으면 그 물기가 갈 곳이 없어 안쪽에 그대로 남는다.
게다가 포도를 씻으면 껍질에 묻어 있던 하얀 가루가 벗겨진다. 이 가루는 농약이나 먼지가 아니라 포도 껍질 위에 생기는 얇은 왁스층으로, 안에 든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주고 바깥의 물기가 껍질에 스며드는 것도 더디게 만든다. 손으로 문지르면 바로 지워질 만큼 얇아서, 한번 씻어 낸 포도는 수분이 빠지면서 훨씬 빨리 무르기 시작한다. 그래서 씻는 것은 보관하기 전이 아니라 먹기 직전 한 번만 하는 쪽이 낫다.
사 온 포도 무르지 않게 보관하는 방법
깨끗한 종이 타월과 뚜껑 있는 밀폐용기, 작은 가위를 준비해 둔 보관 작업대.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필요한 것은 주방용 종이 타월 몇 장과 뚜껑이 있는 밀폐용기다. 사 온 봉지째 두지 않고 그날 바로 손을 대는 것이 좋은데, 이때 물은 쓰지 않는다. 한 번에 먹을 양을 먼저 정해 두면 나누기가 수월해서, 한자리에서 다 먹을 만큼인 스무 알 안팎을 한 덩이로 잡으면 알맞다.
큰 송이는 가위로 작게 나눈다. 손으로 알을 하나씩 떼면 꼭지 자리가 벌어져 그 구멍으로 수분이 빠지니, 알이 아니라 줄기를 잘라 작은 송이 여러 개로 만든다. 나누는 동안 껍질이 터진 알이나 이미 색이 변한 알은 보이는 대로 떼어 낸다. 상한 알 하나를 그대로 두면 옆에 붙은 알까지 같이 물러진다.
포도알이 아닌 줄기 부분을 작은 가위로 잘라 한 번 먹을 만큼의 작은 송이로 나누는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나눈 송이는 하나씩 종이로 느슨하게 감싼다. 꽉 조이면 알이 눌려 터지니 종이를 펼쳐 놓고 송이를 올린 다음 양옆을 접어 덮는 정도면 충분하다. 종이가 송이에서 나오는 습기를 빨아들여 껍질에 물기가 맺히는 것을 줄여 주고, 알이 떨어져도 종이 안에 머물러 아래 알에 즙이 묻지 않는다.
작은 포도 송이를 종이 타월 위에 올리고 양옆을 느슨하게 접어 감싼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싼 송이를 밀폐용기에 차곡차곡 담고 뚜껑을 닫아 냉장고 채소칸에 넣는다. 채소칸은 다른 칸보다 온도가 덜 내려가고 찬 바람이 직접 닿지 않아 껍질이 마르지 않는다. 먹을 때는 한 덩이만 꺼내 흐르는 물에 씻고, 남은 것은 종이째 다시 넣어 둔다. 종이가 축축해졌으면 마른 것으로 바꿔 주는 것이 좋다.
이미 씻어 버린 포도라면 마른 종이로 알 사이 물기까지 눌러 닦아 내고 이틀 안에 먹는 쪽으로 잡는 게 좋다. 껍질이 얇고 알이 잘 떨어지는 품종은 보관 기간을 그보다 짧게 본다. 송이를 들었을 때 한두 알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며칠 안에 먹는다.
제철 포도는 값이 싸지 않아 한 송이를 사도 며칠을 나눠 먹게 된다. 봉지를 풀면서 씻지 않고 나눠 싸 두는 데 걸리는 시간은 오 분이면 충분하니, 다음에 포도를 사 오면 바로 해 보길 권한다. 사 온 날의 단맛과 탱탱한 알을 마지막 송이까지 그대로 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