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불의 팬에서 들기름에 볶아 색이 짙어진 김치와 돼지고기.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날이 서늘해지면 김치찌개만큼 손이 자주 가는 음식이 없다. 그런데 집에서 끓인 김치찌개는 신맛만 도드라지고, 밖에서 먹던 그 구수한 맛이 좀처럼 나지 않는다. 같은 김치에 같은 돼지고기를 넣었는데도 국물 맛이 얄팍해서, 설탕을 조금 넣어 보거나 멸치 육수로 바꿔 봐도 생각한 맛과는 거리가 있다.
가장 많이 하는 대처는 김치를 먼저 볶는 것이다.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김치를 한참 볶아 넣으면 신맛은 조금 누그러지지만, 국물을 떠 보면 노란 기름이 둥둥 떠 있고 구수한 맛은 여전히 비어 있다. 기름을 덜 넣으면 김치가 팬에 붙고, 넉넉히 넣으면 느끼해져서 어느 쪽으로도 만족스럽지 않다.
이때 식용유 자리에 들기름을 쓰면 국물 맛이 달라진다. 두르는 양과 넣는 시점만 지키면 되는 간단한 방법이다.
식용유로 볶은 김치찌개에 구수한 맛이 안 남는 이유
냄비 가장자리의 맑은 국물 위에 얇게 보이는 기름과 김치 조각.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김치찌개의 맛은 김치에 든 물기를 얼마나 날렸는지에서 갈린다. 김치를 생것 그대로 물에 넣고 끓이면 배추에서 나온 신 국물이 그대로 퍼져서 찌개가 시큼하고 묽어지는데, 기름을 두른 팬에 먼저 볶으면 물기가 날아가면서 신맛이 가라앉고 김치 자체의 단맛이 올라온다. 그래서 볶는 과정을 건너뛴 찌개는 아무리 오래 끓여도 맛이 얕다.
문제는 무엇으로 볶는지다. 콩기름이나 카놀라유 같은 식용유는 그 자체로는 향이 거의 없어서, 김치의 물기를 날리는 일은 해도 국물에 더해 줄 맛이 없다. 게다가 향이 없는 기름은 많이 두르나 적게 두르나 국물 위로 그대로 떠올라서, 떠 보면 기름 막만 눈에 들어온다.
들기름은 들깨를 볶아서 짠 기름이라 고소하고 구수한 향이 진하게 들어 있다. 이 향이 김치를 볶는 동안 김치 사이로 배어들고, 물을 부어 끓이면 국물 전체에 퍼져서 신맛 뒤에 묵직한 맛이 깔린다. 같은 양을 써도 향이 국물에 섞여 들기 때문에 식용유처럼 노랗게 뜨는 기름도 눈에 덜 띈다.
김치찌개에 들기름 둘러 볶는 방법
들기름 병과 계량스푼을 곁에 둔 익은 묵은지.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준비할 것은 들기름 한 가지다. 2~3인분이면 반 스푼에서 많아도 한 스푼이 적당하고, 그 이상 넣으면 고소한 정도를 넘어 국물이 느끼해진다. 김치는 익어서 신맛이 오른 묵은지가 좋고, 담근 지 얼마 안 된 겉절이는 볶아도 단맛이 덜 올라온다.
먼저 팬을 중불에 올려 달군 다음 식용유 대신 들기름을 반 스푼 두른다. 들기름은 연기가 날 만큼 센 불에 오래 두면 쓴맛이 돌기 때문에, 불을 올리지 않고 중불을 그대로 유지한다. 기름이 퍼지면 김치를 국물째 넣지 말고 건져서 넣고, 돼지고기를 함께 쓸 때는 고기를 먼저 넣어 겉이 하얗게 익은 뒤에 김치를 넣는다.
중불의 가스레인지 팬에서 먼저 익히는 돼지고기와 들기름.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김치를 넣고는 뒤적이며 3~5분쯤 볶는다. 처음에는 김치에서 나온 물이 팬에 고이는데, 그 물이 졸아서 바닥이 보이고 김치 색이 짙어지며 가장자리가 투명해지면 충분히 볶인 것이다. 여기에 물이나 쌀뜨물을 부어 찌개를 끓이고, 불을 끄기 직전에 들기름을 반 스푼쯤 한 바퀴 더 둘러 마무리한다. 오래 끓이면 향이 날아가므로 마지막에 두르는 쪽이 고소한 향이 훨씬 잘 남는다.
찌개를 끄기 직전 국물 위에 들기름을 가볍게 두르는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들기름은 참기름보다 쉽게 변하는 기름이라서, 쓰고 남은 것은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넣어 두는 것이 좋다. 꺼내서 냄새를 맡았을 때 쩐 냄새가 올라오면 그 기름으로 볶으면 찌개에 그 냄새가 그대로 옮는다. 들기름을 쓰는 날에는 참기름을 따로 더하지 않는 편이 낫고, 국물이 고소한 만큼 간은 평소보다 조금 약하게 잡아도 맛이 선다.
다음에 김치찌개를 끓일 때는 식용유 통 대신 들기름 병을 먼저 꺼내 보길 권한다. 기름 한 가지만 바꿔도 늘 끓이던 찌개에서 예전에 먹던 구수한 맛이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