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팬에서 앞뒤로 노릇하게 구워진 훈제오리 조각이 한쪽에 모여 있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진공포장된 훈제오리 한 팩이면 저녁 반찬 걱정은 덜었다 싶은데, 막상 팬 앞에 서면 손이 먼저 식용유 병으로 간다. 고기는 기름을 둘러야 눌어붙지 않는다고 오래 해 왔기 때문인데, 훈제오리에서는 그 습관이 맛을 깎는 쪽으로 간다. 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오리를 올리는 순간부터 주방이 분주해진다.
기름을 두르고 구우면 몇 분 지나지 않아 팬에서 연기가 오르고 기름이 사방으로 튀어 가스레인지 주변을 한참 닦아야 한다. 접시에 담아 놓고 한두 점 먹다 보면 입이 금방 느끼해지고, 훈제오리를 사는 이유인 훈연향도 기름 냄새에 묻혀 잘 느껴지지 않는다.
훈제오리는 기름을 한 방울도 두르지 않고 잘 달군 마른 팬에 올려 중약불에서 5~10분 앞뒤로 구우면 된다. 기름을 더해 주는 것이 아니라 굽는 내내 빼 내는 것이 담백하게 먹는 요령이다.
이미 기름을 머금고 있는 훈제오리
훈제오리 한 조각의 껍질 아래 지방층과 익은 살코기 단면이 가까이 보인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훈제오리는 생오리와 달리 훈연을 거치면서 한 번 익혀 나온 고기라서, 팬에 올리는 일은 굽는다기보다 속까지 데우면서 겉면만 노릇하게 만드는 일에 가깝다. 게다가 껍질 아래에 지방층이 두껍게 붙어 있어 팬 온도가 올라가면 그 지방이 저절로 녹아 나온다.
여기에 식용유를 두르면 팬 바닥에는 두르고 시작한 기름과 오리에서 나온 기름이 함께 고인다. 고인 기름에 고기가 반쯤 잠긴 채 익으면 겉면의 물기가 날아가지 못해 바삭해지지 않고 눅눅하게 번들거리며, 기름 양이 많은 만큼 연기도 더 나고 사방으로 튄다.
기름 없이 올리면 눌어붙을 것 같지만, 팬을 충분히 달군 뒤에 올리면 고기가 닿자마자 껍질 쪽 지방이 녹아 나와 그 기름 위에서 구워진다. 그래서 훈제오리는 기름을 붓는 쪽이 아니라 고인 기름을 덜어 내는 쪽으로 손을 대야 한다.
훈제오리 기름 빼고 담백하게 굽는 방법
중약불의 빈 팬에 훈제오리 조각을 겹치지 않게 펼쳐 올린 모습이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냉장고에서 꺼낸 훈제오리는 포장을 뜯어 10분쯤 그대로 두고 찬 기운을 뺀다. 그사이 팬에 아무것도 두르지 않은 채 중약불로 2분 남짓 달구는데, 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을 때 또르르 구르면 올릴 때가 된 것이다. 오리는 겹치지 않게 한 장씩 펼쳐 놓는다.
올리면 곧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름이 배어 나오는데, 이때도 불은 중약불 그대로 두고 한 면을 2~3분씩 굽는다. 가장자리가 노릇해지고 살짝 오그라들면 뒤집을 때이고, 앞뒤로 5~10분이면 속까지 따뜻해진다. 불을 세게 올리면 겉만 타고 속은 차가운 채로 남으니 불 세기는 끝까지 바꾸지 않는다.
중약불의 팬에서 가장자리가 노릇해진 훈제오리를 집게로 뒤집고 있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굽는 동안 팬에는 기름이 금방 고이는데, 바닥이 얇게 덮일 정도가 되면 불을 끄고 팬을 기울여 빈 캔이나 내열 그릇에 따라 낸다. 뜨거운 기름이라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용기에 받지 않고, 싱크대에 그대로 붓지도 않는다. 두세 번 나누어 따라 내며 구우면 겉이 눅눅해지지 않는다.
불을 끈 팬을 기울여 나온 기름을 작은 내열 유리 그릇에 받고 있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좀 더 담백하게 먹고 싶다면 중간에 물을 두세 스푼 붓고 뚜껑을 덮어 1~2분 데치듯 익힌 다음, 뚜껑을 열고 물기를 날리면 기름과 짠맛이 같이 빠진다. 다 구운 오리는 키친타월을 깐 접시에 잠깐 올려 남은 기름을 닦아 내고, 식초를 넣어 새콤하게 무친 부추무침을 곁들이면 느끼함이 한결 덜하다.
훈제오리는 사다 놓고 굽기만 하면 되는 편한 재료인데, 기름 한 번 두르지 않는 것만으로 맛이 꽤 달라지니 다음에는 마른 팬에 구워 보길 권한다. 기름을 빼면서 구우면 돈을 주고 산 훈연향이 그대로 살아나 반찬으로도 안주로도 물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