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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땅을 호령하던 호랑이와 표범은 일제강점기 대규모 '해수구제' 사냥으로 치명적인 개체수 감소를 겪었습니다.
  • 광복 이후에도 표범 가죽과 고기를 노린 무분별한 덫과 올무 남설이 이어지며 마지막 남은 서식 기반마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 범의 멸종사는 단순한 동물 박멸을 넘어, 인간의 탐욕과 근현대사의 수난이 빚어낸 뼈아픈 생태계 단절의 기록입니다.

한반도는 예로부터 산마다 맹수가 깃들어 산줄기를 호령하던 '범의 나라'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와 표범을 엄밀히 나누기보다 모두 이라 부르며 두려움과 공경의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남한 야생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된 마지막 호랑이는 1924년 강원도 횡성 포획 기록이었고, 표범 역시 1970년 경남 마산 여항산을 끝으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산천을 누비던 거대한 맹수들은 도대체 왜, 어떻게 우리 곁에서 사라진 것일까요?

1. 한반도 산야에서 벌어진 맹수들의 완전한 절멸

공식 통계로 기록된 한반도 범의 마지막 숨결은 참혹할 정도로 짧고 뚜렷합니다.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한국 호랑이 박제 표본은 1908년 전남 영광 불갑산에서 잡혀 목포 유달초등학교에 보관된 암컷 한 마리뿐입니다. 유전자 분석 결과 이는 현재 러시아 극동에 서식하는 시베리아 호랑이와 완전히 동일한 아종으로 밝혀졌습니다.


옛 석조 건축물의 계단 앞에 일본 군복을 입은 남성들과 기모노를 입은 여성들이 일렬로 서 있는 흑백 사진

한반도에서 포획된 호랑이가 당시 일본 황족에게 진상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우리 산야의 비극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표범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호랑이보다 체구가 작고 험준한 바위산에 숨어 살 수 있어 해방 이후인 1960년대까지 지리산과 덕유산 자락 등 백두대간 곳곳에서 간간이 목격되거나 생포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62년 합천 오도산에서 생포되어 창경원에 머물렀던 표범을 비롯해 산발적인 포획을 끝으로, 남한 산림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들은 완전히 절멸하고 말았습니다.

2.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의 침묵이 던지는 의미

대형 맹수의 절멸은 단순히 야생동물 종 하나가 사라진 사건에 그치지 않습니다. 생태계 피라미드의 정점에 서서 초식동물의 개체수를 조절하고 산림의 자연적 균형을 유지하던 지배자가 사라지면서, 한반도 산림 생태계는 심각한 구조적 왜곡을 겪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범의 멸종사는 일제강점기와 전쟁, 전후의 극심한 빈곤 등 고난으로 점철된 우리 근현대사의 수난사와 정확히 궤를 같이합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던 민족의 생태적 터전이 외세의 무자비한 자원 수탈과 근대화의 광풍 속에서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를 생생하게 증명하는 역사적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3. 총칼과 올무가 끊어놓은 생명의 끈

범이 이토록 빠르게 절멸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일제강점기에 시행된 해수구제(害獸驅除) 정책이었습니다. 일제는 사람과 가축에 해를 끼치는 맹수를 없앤다는 명목 아래 헌병, 순사, 전문 포수를 총동원해 대대적인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공식 기록으로만 1915년부터 30년간 호랑이 97마리, 표범 624마리가 희생되었으며, 비공식적인 수렵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흑백 영상 속에서 표범의 발이 나무 구멍이나 좁은 틈 사이로 조심스럽게 내디뎌지는 모습

당시 범은 공포의 대상이자 동시에 고가에 거래되는 귀한 자원이기도 했습니다.


비극은 광복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50~60년대 가난했던 시절, 돈벌이나 보양식으로 귀하게 취급되던 표범의 가죽과 고기를 노려 산림 전역에 쇠와이어로 만든 올무와 덫이 무차별적으로 설치되었습니다. 당시 표범 고기는 학질을 치료한다는 속설로 인해 소 한 마리 값보다 비싼 15만 원 안팎에 거래되기도 했습니다. 산돼지를 잡겠다며 무분별하게 놓은 수백 개의 올무는 성체와 새끼를 가리지 않고 목을 조르며 야생 표범의 마지막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았습니다.


숲속 나무 밑동에 가느다란 금속 올무가 감겨 있는 모습과 '범의 수난사', '골라듄다큐'라는 글자가 화면 상단에 적혀 있다.

무분별하게 설치된 올무와 덫은 산림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였던 표범마저 죽음으로 내몰며 우리 땅에서 그 자취를 감추게 했습니다.


4. 백두대간 서식지 단절과 인간 사회의 변화

맹수가 사라진 산야에는 멧돼지와 고라니 같은 유해조수가 천적 없이 급증하여 오늘날 농가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또한 산간벽지 주민들의 일상에 깃들어 있던 호랑이 관련 민간신앙과 구전 설화, 민속 문화 역시 점차 힘을 잃고 잊힌 옛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무차별적인 포획과 서식지 파괴는 백두대간 생태축을 파편화시켰으며, 야생동물과 인간이 맺어왔던 긴장과 공존의 규율을 단번에 무너뜨렸습니다. 맹수를 공포의 대상이자 영물로 대우하던 전통적인 생태관은 사라지고, 오직 경제적 이익과 박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이 고착화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5. 국경을 넘는 야생의 복원과 우리가 마주할 과제

한때 30여 마리까지 줄어들었던 러시아 시호테알린 산맥의 야생 시베리아 호랑이는 국제적인 보호 노력 덕분에 현재 600여 마리까지 개체수를 회복했습니다. 이들은 두만강 국경을 넘어 과거 자신들의 터전이었던 백두산과 한반도 북부 영역으로 서서히 서식 범위를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결국 한반도 범의 수난사가 던지는 질문은 명확합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야생의 생명들이 다시 우리 산줄기를 찾아올 때, 우리는 그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훼손된 생태 통로를 복원하고 밀렵 도구를 근절하며, 야생동물을 자연의 온전한 동반자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생태적 인식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FAQ

한국 호랑이와 시베리아 호랑이는 서로 다른 종인가요?

아닙니다. 과거 한반도에 살았던 한국 호랑이는 만주와 연해주에 서식하는 시베리아 호랑이(아무르 호랑이)와 유전적으로 완전히 일치하는 동일한 아종입니다.

남한에서 표범이 호랑이보다 더 늦게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표범은 주로 험준한 바위산에 서식하며 토끼나 너구리 등 작은 동물을 먹이로 삼기 때문에, 체구가 크고 넓은 평지 구릉성 산지를 선호하는 호랑이에 비해 인간의 눈을 피해 오래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해수구제' 정책의 실제 목적은 무엇이었나요?

명목상으로는 주민과 가축을 맹수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조선의 산림 자원을 안전하게 수탈하고 총기 소지를 엄격히 통제하며 고가의 호피와 녹용 등 진귀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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