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58m 올랐는데 은빛 억새가 어깨까지 차네요"... 입장료도 주차비도 안 받는 가을 억새 언덕


다랑쉬오름 / 한국관광공사-이범수

다랑쉬오름 / 한국관광공사-이범수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들판에는 표고 382m의 다랑쉬오름이 우뚝 서 있고, 그 앞에 낮게 엎드린 언덕 하나가 붙어 있다. 이 낮은 쪽이 아끈다랑쉬오름이다. '아끈'은 제주말로 작다는 뜻으로, 큰 오름 곁의 작은 오름이라는 이름 그대로다. 표고는 198m, 아래 들판에서 꼭대기까지 실제로 올라야 하는 높이는 58m뿐이다.

몸집은 작아도 꼭대기에 올라서면 풍경은 단번에 넓어진다. 정상이 뾰족한 봉우리가 아니라 접시처럼 얕게 팬 분화구이고, 그 안쪽 바닥과 바깥 능선이 모두 억새로 덮여 있다. 가을이 되면 억새가 한꺼번에 서면서 언덕 하나가 통째로 은빛으로 바뀐다. 제주 억새는 9월 말에서 10월 초에 빛이 돌기 시작해 10월 중순부터 11월 초 사이 절정에 든다.

20분이면 닿는 억새 분화구

다랑쉬오름 일출 / 한국관광공사-김용연

다랑쉬오름 일출 / 한국관광공사-김용연

주차장에서 흙길을 50m쯤 걸으면 탐방로 입구가 나온다. 경사가 짧고 길이 곧아 중간에 쉬지 않으면 20분 안에 정상에 선다. 제주 오름 가운데 오르는 부담이 가장 적은 축에 들어 아이와 함께 올라도 무리가 없다.

정상에 닿으면 분화구 가장자리를 따라 한 바퀴 도는 길이 이어진다. 분화구가 얕고 둥글게 파여 있어 오르내림 없이 평평하게 걷는다. 걷는 동안 억새는 어깨 높이까지 올라오고, 바람이 불면 둘레 전체가 같은 방향으로 한 번에 눕는다.

둘레를 돌다 보면 억새가 길 양옆에서 모여 시야를 가리는 구간과, 키가 낮아지며 분화구 안이 한눈에 드러나는 구간이 번갈아 나온다. 분화구 바닥은 움푹한 접시 모양 그대로 남아 있어 가장자리에 서면 억새가 안쪽으로 둥글게 휘어 도는 모습이 보인다.

억새 사이로 드러나는 옆 오름

아끈다랑쉬오름의 아침 / 한국관광공사-박윤준

아끈다랑쉬오름의 아침 / 한국관광공사-박윤준

둘레길에서 북쪽을 보면 다랑쉬오름이 억새 너머로 통째로 들어온다. 능선부터 기슭까지 가리는 것이 없어 오름 한 채의 생김새를 그대로 본다. 방향을 바꾸면 구좌 일대 들판과 멀리 바다까지 시야가 트인다. 높은 산에 올라야 나오는 풍경을 20분 만에 만나는 셈이다.

들판 곳곳에는 크고 작은 오름이 봉긋하게 솟아 있다. 밭과 방풍림, 검은 돌담이 그 사이를 메우고 있어 한 자리에서 몸을 돌리는 것만으로 제주 중산간의 지형이 어떻게 생겼는지 눈에 들어온다.

아끈다랑쉬오름의 일출 / 한국관광공사-송정원

아끈다랑쉬오름의 일출 / 한국관광공사-송정원

억새는 빛을 등지고 볼 때 가장 희게 빛난다. 해가 낮게 드는 오전 9시에서 11시,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에 오르면 은빛이 진하게 살아난다. 한낮에는 같은 자리에서도 색이 누렇게 눌린다.

산굼부리나 새별오름처럼 이름난 억새 명소에 비하면 찾는 사람이 적은 편이다. 둘레길 폭이 좁아 사람이 몰리면 걷기 불편한데, 그런 일이 드물어 억새밭을 느긋하게 돌아볼 수 있다.

걷는 데 걸리는 시간과 찾아가는 길

다랑쉬오름 / 한국관광공사-김지호

다랑쉬오름 / 한국관광공사-김지호

들머리에서 정상까지 오르고 분화구 둘레를 한 바퀴 돈 뒤 내려오면 왕복 한 시간 남짓이다. 입장료와 주차비는 받지 않는다. 탐방로에 매점이나 화장실이 없으니 물은 미리 챙겨 올라가는 것이 좋다.

차로 가면 제주시내에서 동쪽으로 40분 안팎 걸린다. 다랑쉬오름 주차장을 함께 쓰며, 이곳에 차를 세우고 두 오름을 이어 오르는 사람도 많다. 정상부는 그늘이 없고 흙길이 비 온 뒤에는 미끄러워 바닥이 단단한 신발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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