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 오르는 배 영양밥 한 개를 흰 도자기 그릇에 담아 낸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날이 선선해지는 10월 중순이면 과일 가게 앞에 크고 단단한 배가 수북이 쌓이기 시작한다. 제철을 맞은 배는 물이 많고 단맛이 진해 깎아 놓으면 금방 접시가 비지만, 한 상자를 들여 놓으면 식구들이 다 먹기 전에 몇 개씩 남아 냉장고 한쪽을 차지하게 된다.
영양밥도 이맘때 자주 짓는 밥이다. 밤과 대추, 은행을 넣어 정성껏 지어도 늘 먹던 맛이라 식탁에서 반응이 심심한 편인데, 재료를 더 넣거나 양념장을 바꿔 봐도 밥맛 자체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아 아쉬울 때가 많다.
이럴 때는 후식으로만 먹던 배를 영양밥 그릇으로 써 보는 것이 좋다. 속을 파낸 배에 다 지은 영양밥을 눌러 담고 배 뚜껑을 덮어 8분 정도 찌면, 배의 달콤한 맛이 밥에 스며들어 평소와 다른 영양밥을 맛볼 수 있다.
찌는 동안 배의 단물이 밥으로 스며드는 이유
속을 파낸 배 안쪽 벽에 영양밥이 고르게 닿아 있는 단면.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배는 과육 대부분이 물이고 그 물에 단맛이 녹아 있는 과일이다. 생으로 베어 물 때 입안 가득 즙이 터지는 것도 그 때문인데, 찜기에 넣어 열을 받으면 과육이 부드러워지면서 안에 머금고 있던 단물이 조금씩 배어 나온다.
배 속을 파내 그릇처럼 만들면 단물이 배어 나오는 자리가 바로 밥이 닿는 배 안쪽 벽이 된다. 배 뚜껑까지 덮어 두면 위로 빠져나가던 김이 배 안에 머물러 밥알을 촉촉하게 감싸는데, 이때 배의 즙과 향이 밥알 사이사이로 함께 들어간다.
그래서 배를 썰어 밥 위에 얹거나 곁들여 먹을 때와는 맛이 다르다. 밥알마다 은은한 단맛이 들어 밤과 대추의 단맛과 어우러지는데, 이 단맛을 제대로 입히려면 그릇이 될 배를 고르는 일부터 신경 쓰는 것이 좋다.
배 그릇에 영양밥 눌러 담아 찌는 순서
단단한 배와 미리 지은 영양밥을 찜기 옆에 준비한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배는 손으로 눌렀을 때 단단하고 들었을 때 묵직한 것을 고른다. 무른 배는 속을 파내는 동안 벽이 쉽게 부서지고 쪄낸 뒤에도 모양이 주저앉아 그릇으로 쓰기 어렵다. 영양밥은 미리 지어 두고, 찜기에는 물을 충분히 부어 먼저 김을 올려 두면 편하다.
배는 꼭지 쪽 윗부분을 뚜껑으로 쓸 만큼 가로로 잘라 따로 둔다. 바닥이 기우뚱하면 껍질만 얇게 저며 평평하게 세운 다음, 숟가락으로 씨가 있는 가운데부터 과육을 둥글게 긁어낸다. 벽을 너무 얇게 남기면 찌는 동안 찢어지니 숟가락으로 살짝 눌러 봐서 단단함이 느껴질 만큼은 남기는 것이 안전하다.
윗부분을 뚜껑으로 남기고 속을 둥글게 파낸 배와 숟가락.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속을 파낸 배에 영양밥을 숟가락으로 꾹꾹 눌러 담아 빈틈없이 채운다. 밥이 배 안쪽 벽에 고루 맞닿아야 단맛이 골고루 스며들기 때문인데, 밥을 다 담았으면 잘라 둔 배 뚜껑을 덮고 김이 오른 찜기에 넣어 8분 정도 찐다. 배 껍질 색이 한결 짙어지고 잘린 단면의 과육이 반투명하게 변하면 다 된 것이다.
영양밥을 채운 배에 뚜껑을 덮어 김 오른 찜기에 올린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다 쪄진 배는 뜨겁고 물러져 있어 손으로 집으면 화상을 입거나 모양이 무너지기 쉬우니, 넓은 뒤집개로 밑을 받쳐 그릇에 옮기는 것이 좋다. 8분을 훌쩍 넘겨 오래 찌면 배가 지나치게 물러져 주저앉으니 시간을 지키는 것이 좋고, 파낸 과육은 따로 두었다가 후식으로 먹으면 된다.
올가을 배가 몇 개 남았다면 영양밥 짓는 날 한 번쯤 그릇으로 써 보길 권한다. 제철 배 하나만 있으면 늘 먹던 영양밥에 새로운 단맛을 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