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에서 끓인 라면 국물을 국자로 떠 작은 그릇에 담는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늦은 저녁에 출출해서 봉지 라면 한 개를 꺼내 끓이는 날이 있다. 봉지에 적힌 대로 물을 550밀리리터 받아 끓이고 면과 스프를 같이 넣어 4분 30초를 지켜도, 막상 한 젓가락 뜨고 국물을 떠먹으면 짜기만 하고 어딘가 밍밍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서 계란을 풀거나 대파를 썰어 넣고 치즈 한 장을 올려 보지만, 국물 위에 고소한 맛이 얹히는 정도라 밑바탕은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라면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숙주와 토마토, 먹다 남은 족발, 땅콩버터를 넣는 시점만 맞춰 주면 봉지 라면 한 개가 라멘집 국물이나 해장국처럼 진해진다.
봉지 라면 국물이 끓여도 밍밍하게 남는 이유
검은 주물 받침 위 냄비에서 면과 스프 국물이 끓는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봉지 라면 스프는 소금과 고춧가루, 간장 분말을 중심으로 맞춰져 있어서 맵고 짠맛은 끓이자마자 올라오지만, 혀에 남는 기름기나 고기에서 나오는 감칠맛은 많지 않다. 조리 시간도 5분 안쪽이라 냄비 안에서 무언가가 우러날 틈이 없다.
국물이 얇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끓는 물에 분말을 풀어 간을 맞춘 국물은 아무리 오래 저어도 간만 세질 뿐 깊어지지는 않는다. 물을 적게 잡아 농도를 올려 보면 짠맛이 먼저 치고 올라와 오히려 먹기 힘들어진다.
국물이 진해지려면 기름기, 고기를 끓여 낸 국물, 끓이면 맛이 우러나는 채소 가운데 하나가 들어가야 한다. 숙주는 채소에서 나오는 시원한 맛을, 토마토는 끓이면 짙어지는 단맛과 신맛을, 족발은 고기와 껍질에서 나오는 기름기를, 땅콩버터는 식물성 지방의 고소함을 국물에 넣어 준다. 다만 네 가지가 제대로 들어가려면 넣는 시점이 서로 다르다.
라면 국물 진하게 만드는 재료 넣는 방법
깨끗한 조리대 위에 라면에 넣을 숙주와 토마토, 족발, 땅콩버터를 나눠 놓은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숙주를 쓸 때는 면과 스프를 넣고 3분쯤 지나 면이 거의 익었을 때 숙주를 한 움큼, 두 손으로 집어 올릴 정도만 넣고 30초만 더 끓인 다음 불을 끈다. 숙주는 오래 끓이면 물러져 아삭한 맛이 사라지므로, 숨이 살짝 죽고 반투명해지면 다 된 것이다. 이렇게 끓이면 국물에 시원한 맛이 돌아 일본식 라멘에 가까워진다.
거의 익은 라면 위에 숙주 한 움큼을 넣어 짧게 끓이는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토마토를 넣을 때는 순서가 반대다. 중간 크기 토마토 한 개를 여섯 조각으로 썰어 물이 끓기 시작할 때 면보다 먼저 넣고 2~3분 끓여 국물에 우려낸 다음, 그다음에 면과 스프를 넣는다. 껍질째 넣어도 되고 꼭지만 떼면 충분하다. 국물이 옅은 주홍색으로 변하고 숟가락으로 떠먹었을 때 신맛이 살짝 돌면 제대로 우러난 것이라, 속이 부대끼는 아침에 해장라면으로 먹기 좋다.
면을 넣기 전 끓는 물에 토마토 여섯 조각을 먼저 넣은 냄비.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먹다 남은 족발이 냉장고에 있으면 부위를 나눠서 넣는다. 뼈는 스프를 넣기 전에 먼저 냄비에 넣어 3~4분 끓이고, 살코기는 스프와 함께, 껍질은 면과 함께 넣는다. 껍질은 끓는 동안 조금씩 풀어져 국물이 뿌옇고 진해지는데, 숟가락에 국물이 살짝 걸쭉하게 묻으면 설렁탕처럼 끓은 것이다. 남은 족발은 냉장고에 들어간 지 이틀 안쪽인 것만 쓴다.
땅콩버터는 불을 끈 다음에 넣는다. 끓는 중에 그대로 떨어뜨리면 덩어리가 져서 풀리지 않으므로, 국자로 국물을 조금 떠서 거기에 한 수저를 먼저 개어 멍울이 없어진 뒤 냄비에 돌려 붓는다. 한 봉지에 한 수저면 충분하고, 더 넣으면 단맛이 앞에 선다. 땅콩버터의 단 기운은 스프의 고추 매운맛이 잡아 주어, 국물이 고소하면서 진득해진다.
네 가지를 한 번에 다 넣으면 맛이 섞여 무엇을 넣었는지 알기 어려우니 한 번에 하나씩만 골라 넣는 것이 좋다. 집에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식구가 있으면 땅콩버터는 쓰지 않는다. 족발이나 땅콩버터를 넣은 국물은 기름기가 늘어 다소 느끼할 수 있어, 김치를 곁들이면 먹기 편하다.
다음에 라면을 끓일 때는 냉장고 문을 한 번 열어 보고 그 가운데 하나를 골라 넣어 보길 권한다. 같은 봉지 라면이라도 재료 하나와 넣는 시점만 바꾸면 끼니 한 번이 한결 든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