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인리스 싱크대 위 유리볼에 담긴 흰 쌀에 찬물을 한 번에 붓는 순간으로, 물이 뿌옇게 흐려지고 있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밥을 짓기 전에 쌀을 씻는 일은 하루에 한 번씩 되풀이하는 일이라 손이 먼저 움직인다. 볼에 쌀을 붓고 수돗물을 받으면서 손바닥으로 몇 바퀴 휘휘 젓고, 뽀얗게 흐려진 물을 따라 버리고 다시 물을 받는 식이다. 쌀은 여러 번 박박 씻어야 깨끗하다고 배운 터라 물이 맑아질 때까지 씻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그렇게 공들여 씻어도 밥솥을 열면 어딘가 텁텁한 냄새가 올라오는 날이 있다. 쌀을 새로 사 왔는데도 묵은쌀 같은 냄새가 나고, 밥이 식으면 그 냄새가 더 도드라진다. 덜 씻어서 그런가 싶어 다음번에는 한두 번 더 씻어 보지만 밥맛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밥 냄새를 가르는 것은 씻는 횟수가 아니라 처음 부은 물을 얼마나 빨리 따라 버리느냐다. 첫 물은 손으로 젓지 말고 10초 안에 쏟아 버리는 것이 요령인데, 같은 쌀로 밥을 지어도 이 한 가지만 바꾸면 냄새가 한결 덜하다.
첫 물에 녹아 나온 쌀겨가 밥에 냄새를 남기는 이유
쌀을 담근 첫 물이 짙게 뿌옇고, 볼 안쪽 물 위로 고운 쌀겨 가루가 떠 있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쌀알 표면에는 도정하면서 떨어져 나온 고운 쌀겨 가루가 얇게 붙어 있다. 쌀겨에는 지방 성분이 들어 있어 보관하는 동안 조금씩 산화되는데, 묵은쌀에서 나는 그 특유의 냄새가 여기서 나온다. 이 가루는 물에 닿는 순간부터 빠르게 녹아 나오기 때문에 첫 번째 물이 가장 진하고 뿌옇다.
문제는 마른 쌀이 물을 만나면 처음 몇 초 동안 물을 가장 빠르게 빨아들인다는 점이다. 냄새 성분이 잔뜩 녹아 있는 첫 물을 그대로 둔 채 손으로 저으면 쌀알이 그 물을 그대로 마셔 버린다. 한번 쌀알 안으로 들어간 냄새는 그 뒤에 물을 열 번 갈아도 빠지지 않아서, 여러 번 씻을수록 손만 아프고 밥맛은 그대로다.
물 온도도 같은 이유로 중요하다. 따뜻한 물은 쌀이 더 빨리 빨아들이는 데다 쌀알 겉의 전분이 풀어져 찰기와 씹는 맛이 떨어지므로, 쌀은 찬물로 씻는 것이 좋다. 결국 오래 씻는 쪽이 아니라 냄새가 녹아 나온 물을 쌀이 마시기 전에 버리는 쪽으로 손을 대야 한다.
밥에서 나는 묵은내 없애는 쌀 씻는 방법
볼을 기울여 첫 물을 쏟아 버리고, 손바닥으로 입구를 막아 쌀알이 딸려 나가지 않게 하고 있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먼저 찬물을 넉넉히 준비해 둔다. 쌀을 볼에 담아 놓고 수도를 틀어 물을 받기 시작하면 물이 차오르는 동안 이미 십여 초가 지나가므로, 다른 그릇이나 주전자에 찬물을 미리 받아 두었다가 한 번에 붓는 편이 낫다. 쌀 두 컵이면 물은 쌀이 잠기고 손가락 한 마디쯤 더 올라올 만큼이면 충분하다.
받아 둔 찬물을 쌀 위에 한 번에 붓고 손은 대지 않는다. 젓지 말고 볼을 한두 번 가볍게 흔들어 쌀이 물에 골고루 닿게만 한 다음, 열을 세는 사이에 물을 따라 버린다. 체에 밭치거나 볼을 기울여 쏟으면 되는데, 쌀알이 딸려 나가지 않게 손바닥으로 입구를 가볍게 막아 주면 편하다.
첫 물을 버린 다음부터가 실제로 씻는 순서다. 다시 찬물을 붓고 손가락을 펴서 쌀을 서너 바퀴 가볍게 돌린 뒤 물을 따라 버리기를 세 번에서 네 번 되풀이한다. 손바닥으로 눌러 비비면 쌀알이 부서져 밥이 질어지므로 힘을 주지 않는다. 물이 완전히 맑아질 때까지 씻을 필요는 없고, 쌀알이 비칠 정도로 약간 뿌연 상태에서 멈추면 된다.
손가락을 펴서 쌀을 가볍게 돌려 헹구는 모습으로, 물은 쌀알이 비칠 만큼만 뿌옇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씻은 쌀은 바로 밥솥에 안치지 말고 찬물에 불린다. 여름에는 30분, 물이 차가운 겨울에는 1~2시간이면 적당하며, 불린 물은 따라 버리고 새 물을 잡아 밥을 짓는다. 여름철에 서너 시간씩 담가 두면 쉰내가 날 수 있으니 시간을 넘기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씻은 쌀을 찬물에 담가 불리는 중으로, 맑은 물 아래 쌀알이 그대로 비쳐 보인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쌀을 씻는 데 드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니 오늘 저녁밥부터 첫 물을 10초 안에 따라 버려 보길 권한다. 밥은 식구들이 날마다 빠짐없이 먹는 음식이라, 냄새가 배지 않게 짓는 것만으로도 밥상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