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서 꺼낸 반찬통 안에서 당면과 기름이 엉겨 한 덩어리로 굳어 있는 잡채.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추석 상을 물리고 이틀쯤 지나 냉장고 문을 열면 반찬통 안에서 잡채가 한 덩어리로 굳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젓가락으로 떠내려 해도 당면이 서로 엉겨 붙어 통째로 딸려 나오고, 기름은 하얗게 엉겨 면 사이에 박혀 있다. 명절 음식 중에서도 손이 제일 많이 간 것이 잡채인데 남은 모양새가 이러니 손이 잘 가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 접시에 덜어 전자레인지에 넣고 1~2분 돌린다. 뜨겁기는 한데 먹어 보면 면이 축 늘어져 뚝뚝 끊어지고 양념은 접시 바닥에 물처럼 고인다. 두어 번 그렇게 데워 먹다가 결국 남은 절반은 버리게 되는 일이 해마다 되풀이된다.
식은 잡채를 되살리는 자리는 전자레인지가 아니라 프라이팬이다. 물을 아주 조금만 두르고 약불이 아닌 강불에서 2~3분 볶아 내면 굳었던 당면이 다시 탱탱해진다.
전자레인지에 돌린 잡채가 눅눅해지는 이유
전자레인지에서 꺼낸 잡채. 면이 축 늘어지고 접시 바닥에는 양념 국물이 고여 있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잡채가 덩어리로 굳는 것은 당면과 기름이 함께 식으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고구마 전분으로 뽑은 당면은 뜨거울 때는 부드럽게 풀려 있다가 온도가 내려가면 딱딱하게 되돌아가는 성질이 있고, 무칠 때 넣은 참기름과 식용유는 냉장고 온도에서 하얗게 엉긴다. 굳은 전분과 엉긴 기름이 면끼리 서로 달라붙게 만들어 한 덩어리가 된다.
전자레인지가 힘을 못 쓰는 이유는 데우는 방식에 있다. 전자레인지는 음식 속에 있는 물기를 흔들어 열을 내는 방식이라 잡채에 남아 있던 양념 국물이 그대로 면 안으로 들어간다. 이미 하룻밤 사이 국물을 머금어 불어 있던 당면이 한 번 더 물을 빨아들이니 굵기만 늘고 씹는 맛은 사라진다. 게다가 접시 안에서 뜨거워지기만 할 뿐 수분이 빠져나갈 길이 없어 눅눅함이 그대로 남는다.
반대로 팬은 바닥에서 직접 열이 올라오고 수분이 김으로 날아간다. 여기에 물을 아주 조금 넣으면 그 물이 굳은 기름과 양념을 먼저 풀어 주고, 강한 불이 그 물기를 짧은 시간에 날려 버린다. 양념은 다시 면에 달라붙고 겉면의 물기는 사라지니 처음 무쳤을 때의 결로 돌아오는 것이다.
식은 잡채 팬에 볶아 되살리는 방법
불을 켜기 전 차가운 팬에 덩어리를 풀어 펼쳐 담은 잡채와 물 두 큰술.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준비할 것은 프라이팬 하나와 물 한두 큰술이 전부다. 두 사람이 먹을 한 접시 분량을 기준으로 물은 두 큰술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기름은 따로 넣지 않는다. 잡채에 이미 참기름과 식용유가 들어 있어 팬이 달아오르면 그 기름이 다시 녹아 나온다.
냉장고에서 꺼낸 잡채는 팬에 넣기 전에 젓가락으로 덩어리를 대강 풀어 놓는다. 통째로 넣으면 겉만 뜨거워지고 속은 찬 채로 남는다. 풀어 놓은 잡채를 차가운 팬에 먼저 펼쳐 담고 그 위에 물을 골고루 뿌린 다음 불을 켠다.
불은 처음부터 강불로 올린다. 팬이 달아오르면 다글다글 소리가 나면서 김이 올라오는데, 이때 젓가락이나 집게로 아래위를 뒤집어 가며 2~3분 볶는다. 약불에서 오래 두면 물이 천천히 스며들어 면이 도로 불어 버리니 짧고 세게 가는 편이 낫다.
강불에서 김이 오르는 팬 위 잡채를 집게로 아래위 뒤집어 볶는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팬 바닥에 물기가 보이지 않고 면에 윤기가 돌면서 젓가락으로 집었을 때 한 가닥씩 떨어지면 다 된 것이다. 불을 끄고 참기름을 서너 방울 떨어뜨려 한 번만 더 섞어 준 뒤 바로 접시에 옮긴다. 물을 뿌릴 때 팬이 이미 달아올라 있으면 기름이 튀니 불을 켜기 전에 넣는 순서를 지킨다.
젓가락으로 집어 올렸을 때 한 가닥씩 떨어지는, 다 볶아진 잡채.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다만 이 방법도 잡채가 상하기 전이라야 통한다. 잡채는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도 2~3일이 한계이고, 그보다 오래 두면 면이 불어 아무리 볶아도 식감이 돌아오지 않는다. 냉동실에 넣으면 당면이 푸석해져 녹인 뒤 질감이 많이 달라지니 얼려 두지 않는 편이 좋다.
뚜껑을 덮어 냉장실 선반에 넣는 잡채 밀폐용기. 보관은 2~3일이 한계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올 추석에 잡채가 남으면 전자레인지 문을 열기 전에 팬부터 꺼내 보길 권한다. 몇 시간을 들여 만든 음식을 이틀 만에 버리지 않고 마지막 한 젓가락까지 제맛으로 먹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