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봉투로 감싼 들기름 병이 냉장고 안쪽 아래 선반에 세워져 있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들기름은 나물을 무칠 때나 밥에 몇 방울 넣을 때처럼 조금씩 쓰는 기름이라, 한 병을 사면 몇 달을 두고 쓰게 된다. 상온에 두면 금방 상한다는 말을 들어 사 온 날 바로 냉장고에 넣어 두는 집이 많고, 한번 넣어 둔 뒤로는 자리를 다시 살펴보지 않는다.
그런데 반쯤 남은 들기름을 꺼내 나물에 넣어 보면 처음 샀을 때의 고소한 향이 느껴지지 않고 혀끝에 쓴맛 같은 것이 남는 경우가 있다. 냉장고에 넣어 뒀는데도 이러니 들기름은 원래 오래 못 가는 기름이라 여기고 반 병을 그대로 버리게 된다.
들기름이 냉장고 안에서도 향을 잃는 데는 온도와 상관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투명한 병을 종이봉투로 감싸 씌운 다음 문 쪽이 아닌 안쪽 선반에 세워 두면, 한 병을 1년 가까이 고소한 향 그대로 쓸 수 있다.
냉장고 안에서도 들기름 향이 빠지는 이유
투명한 유리병에 든 들기름이 냉장고 조명을 받는 모습이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들기름은 참기름이나 콩기름보다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든 기름이라서, 공기와 빛에 닿으면 기름 성분이 서서히 변한다. 이렇게 변한 기름에서 나는 것이 고소한 향 대신 느껴지는 묵은 냄새와 쓴맛인데, 한번 변한 기름은 다시 처음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냉장고는 온도는 낮춰 주지만 빛까지 막아 주지는 못하는데, 문을 열면 안쪽 조명이 켜지기 때문이다. 하루에 열 번 스무 번 문을 여닫는 동안 투명한 병에는 그 빛이 그대로 들어가고, 선반 앞쪽에 늘 보이게 세워 둔 병일수록 빛을 받는 시간이 길어진다.
문 쪽 선반에 꽂아 두는 것도 기름에는 좋지 않은데, 문 쪽은 여닫을 때마다 바깥 공기가 닿아 안쪽 선반보다 온도가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결국 들기름 병 자체를 빛이 통하지 않게 가리고, 온도가 일정한 자리로 옮겨 두는 쪽으로 손을 대야 한다.
들기름 향 안 빠지게 냉장고에 보관하는 방법
마른 휴지로 들기름 병목과 뚜껑 둘레를 닦고 있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필요한 것은 집에 있는 종이봉투 하나다. 약국에서 받은 봉투나 빵집 종이봉투, 작게 접어 둔 종이 쇼핑백이면 되고 빛이 통하지 않을 만큼 두꺼운 것을 고른다. 병 높이보다 봉투가 조금 길어야 윗부분을 접어 덮을 수 있어 편하다.
씌우기 전에 병목과 뚜껑 둘레에 흘러내린 기름을 마른 휴지로 닦아 낸다. 기름이 묻은 채로 넣으면 종이가 젖어 흐물흐물해진다. 그다음 뚜껑을 끝까지 돌려 닫는데, 공기가 드나드는 틈이 남아 있으면 빛을 가려 둬도 향이 빠지기 때문이다.
병을 봉투에 세워 넣고 봉투 윗부분을 두세 번 접어 병 어깨까지 덮어 준다. 그 상태로 냉장고 문 쪽이 아닌 안쪽 선반, 그중에서도 손이 쉽게 닿는 아래쪽 선반에 세워서 놓는다. 눕혀 두면 뚜껑 틈으로 기름이 새어 봉투가 젖고 선반에도 묻는다.
접은 종이봉투에 넣은 들기름 병을 냉장고 아래 안쪽 선반에 세워 놓고 있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봉투에 넣으면 라벨이 가려지니 겉면에 개봉한 날짜를 적어 두는 것이 좋다. 꺼낼 때 병 입구에 코를 대 보고 고소한 향이 올라오면 그대로 쓰고, 크레파스 냄새 비슷한 묵은 냄새가 나면 음식에는 넣지 않는다. 한 번에 적게 쓴다면 작은 병에 나눠 담아 쓰는 병만 꺼내 두는 것도 괜찮다.
종이봉투 겉면에 개봉 날짜를 적은 들기름 병이 냉장고 선반에 서 있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들기름은 비싸게 사 놓고도 향이 빠진 뒤에 버리게 되는 일이 많은 기름이니, 종이봉투 하나 씌워 안쪽 선반에 세워 두는 습관을 들여 보길 권한다. 들기름 병을 가려 두는 일은 나물 한 접시에서 올라오는 고소한 향을 끝까지 지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