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봉 / 한국관광공사-라이브스튜디오 |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수월봉은 해발 77m에 그치는 낮은 언덕이다. 그런데 바다와 맞닿은 서쪽 사면은 수십 미터 높이로 깎여 나가 절벽을 이루고, 그 단면에 화산재가 수평으로 겹겹이 쌓인 결이 드러난다. 물과 만난 마그마가 폭발하며 뿜어낸 화산재가 그대로 굳은 지층이어서, 이 일대는 천연기념물 제513호로 지정돼 있다.
절벽 바로 아래로는 엉알길이라 부르는 해안길이 이어진다. 정상에서 바닷가로 내려서면 한쪽에는 줄무늬 지층이 벽처럼 따라붙고, 반대쪽에는 바다가 수평선까지 트인다. 10월에는 절벽 위 사면을 덮은 억새가 익은 보리처럼 누렇게 변해, 쪽빛 바다와 황금빛 풀밭이 같은 시야 안에 들어온다. 억새 색이 가장 짙어지는 시기가 이 한 달에 몰려 있다.
층층이 쌓인 화산재 절벽 아래를 걷는다
수월봉 / 한국관광공사-라이브스튜디오 |
출발점은 수월봉 정상 전망대다. 언덕이 낮아 주차장에서 계단을 조금만 오르면 닿고, 올라서면 고산 일대 평야와 바다가 한 번에 펼쳐진다. 북쪽으로는 당산봉이, 서쪽 바다에는 무인도인 차귀도와 와도가 떠 있다. 섬 사이로 해가 내려앉는 저녁 풍경 때문에 제주 서쪽 일몰 명소로 꼽히는 자리다.
수월봉 / 한국관광공사-라이브스튜디오 |
정상에서 바닷가 쪽으로 내려서면 길은 절벽 밑을 따라 이어진다. 가까이 다가가면 화산재 지층이 얇은 띠 수백 겹으로 포개진 모습이 보이고, 분화 당시 날아와 박힌 돌덩이가 지층을 눌러 휘게 만든 자리도 남아 있다. 절벽 틈에서는 지층 사이로 스며든 물이 바위를 적시며 떨어져, 바닷바람 소리 사이로 물소리가 섞인다.
황금빛 억새와 쪽빛 바다가 한 장면에
수월봉 / 한국관광공사-라이브스튜디오 |
길을 걷는 동안 억새는 주로 머리 위 사면에 펼쳐진다. 바람이 바다에서 곧장 올라오는 지형이라 억새가 한쪽으로 쏠렸다가 다시 일어서는 움직임이 그대로 보인다. 해가 낮아지는 오후에는 역광을 받은 이삭이 더 밝게 빛나 황금빛에 가까워진다.
중간 구간은 길과 바다 사이 거리가 가장 좁아지는 곳이다. 자갈과 바위가 섞인 해안으로 파도가 밀려와 흰 거품이 번지고, 절벽 그늘이 덮인 구간과 햇빛이 그대로 드는 구간이 번갈아 나타난다. 고산기상대 쪽에서 출발할 경우 해녀의 집까지가 1km 남짓이라, 절반 지점에서 바다를 보며 한 번 쉬어 가기에도 알맞다. 걸어온 방향을 돌아보면 절벽 선이 활처럼 휘어 있다.
길은 자구내포구에서 끝난다. 포구에는 한치를 줄에 걸어 말리는 건조대가 늘어서 있고, 차귀도로 들어가는 배가 드나든다. 절벽과 억새를 보고 내려와 포구에서 섬을 바라보면, 걸어온 수월봉 사면이 바다 쪽에서 어떻게 깎여 있는지 한 번 더 확인된다.
걷는 데 걸리는 시간과 찾아가는 길
수월봉 / 한국관광공사-김지호 |
수월봉 정상에서 자구내포구까지는 약 2km다. 쉬지 않고 걸으면 50분 안팎, 절벽 앞에서 머물며 천천히 보면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해안길 구간은 계단이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어서 걷는 부담이 적다. 포구에서 거꾸로 올라오는 방향도 거리와 난도가 비슷해 어느 쪽에서 시작해도 된다.
자가용으로 가면 수월봉 전망대 앞 무료 주차장을 쓸 수 있고, 자구내포구에도 주차 공간이 있다. 대중교통은 제주버스터미널에서 202번 간선버스를 타고 고산 정류장에서 내리면 되는데, 1시간 40분가량 걸린다. 바다 쪽으로 열린 지형이라 바람이 강한 날이 많고, 파도가 높을 때는 해안길 일부가 통제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