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령도에서 200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 공동 조업 '대후리'는 마을 주민들이 함께 그물을 끌어 올려 수확물을 공평하게 나누는 상생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해일 방지용 간척 사업과 중국산 소금의 공급 과잉으로 백령도의 마지막 유산인 어족 자원과 화동 염전은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 군사 통제 구역이 만들어낸 아이러니한 안전지대에서 생명이 쉼을 얻듯, 고단하지만 묵묵히 이어온 이들의 정성 어린 삶을 보존하려는 인문학적 관심조차가 절실합니다.

맑고 푸른 바다 건너 북한 장산곶이 지척에 보이는 서해 최북단의 섬, 백령도. 이곳에는 200여 년 동안 거친 바다를 헤쳐온 섬사람들의 지혜와, 공동체의 따뜻한 나눔이 살아 숨 쉬는 전통 어업 방식 '대후리'가 펼쳐집니다. 육지와의 교통이 쉽게 끊기던 고립된 환경에서 스스로 자급자족하기 위해 태동한 이 지혜로운 조업 방식은, 오늘날 개발과 경쟁에 익숙해진 우리 사회에 함께 살아가는 진짜 상생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1. 백령도 사곶 해변에 울려 퍼진 목소리, 올해 첫 '대후리'의 시작
조용하던 마을에 확성기 소리가 울려 퍼지면, 한동안 일손을 놓고 있던 온 동네 주민들이 해변으로 하나둘 모여듭니다. 바로 올해의 첫 '대후리' 조업을 시작하겠다는 신호이지요. '대후리'란 그물을 크게 후려서 고기를 잡는다는 뜻에서 유래된 백령도만의 유서 깊은 전통 어업 방식입니다.
마을 주민들이 확성기 호출에 응해 올해 첫 대후리 조업을 위한 장비를 갖추고 모여들고 있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첫 조업을 위해서 물때를 맞춘 오후 3시경, 마침내 거대한 몸짓의 배가 바다로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그물을 치기 위해서는 모래가 완만하게 펼쳐진 얕은 해변이 필수적이기에, 백령도에서도 오직 사곶 해변 주변에서만 이 장엄한 광경을 만날 수 있답니다. 350m에 달하는 대형 그물을 바다에 넓게 풀어주는 과정부터가 이미 거대한 협동의 시작입니다.
2. 가진 배가 없어도 넉넉하게, 200년을 밀려온 나눔의 그물망
그물을 바다에 둥글게 치고 나면 백령도 장정들이 한데 엉겨 붙어 거대한 줄을 당기기 시작합니다. 그물이 워낙 무거워 허리에 걸세를 차고 온몸의 체중을 실어 당겨야 겨우 한 걸음씩 물러설 수 있지요. 10명에서 20명의 구슬땀이 모여 드디어 그물이 지상으로 올라오면 백령도 바다가 품은 풍요로운 선물이 우수수 쏟아집니다.
대후리 조업으로 수확한 물고기들을 참여한 마을 주민들이 평등하게 나누어 가집니다.
그물 안에는 은빛 멸치 무리뿐만 아니라 학꽁치, 광어, 삼치새끼 등 온갖 제철 물고기들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백령도 사람들만의 진짜 아름다운 전통이 빛을 발합니다. 이렇게 잡은 물고기는 배를 가진 사람이나 그물이 있는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조업에 참여해 밧줄을 함께 당긴 모든 이들이 똑같은 양으로 담아 갑니다. 가진 배가 없어도 몸을 아끼지 않고 땀을 흘렸다면 누구나 일주일 반찬 걱정 없이 넉넉한 만선을 누릴 수 있었던, 가난했던 시절의 따뜻한 배려이자 상생의 약속인 셈입니다.
3. 무엇이 백령도의 풍요를 뒤흔들고 있는가
한때는 여덟 척의 배가 동시에 바다로 나가 백령도 경제를 책임졌던 이 찬란한 공동 어업은, 아쉽게도 현재는 그 겨우 명맥만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섬사람들의 터전을 위협하는 첫 번째 가혹한 현실은 바로 해안선 개발입니다. 과거 자유롭게 밀려들던 바닷길을 막아 백령대교를 건설하고 간척 조치를 취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안 생태계의 균형이 깨어졌고, 주민들은 입을 모아 과거의 그 많던 어족 자원이 크게 줄어들었음을 한탄합니다.
자식들을 생각하며 고단한 세월을 삭혀낸 장독대는 섬 생활의 넉넉한 정을 대변합니다.
여기에 산업의 변화도 한몫을 더했습니다. 소금 맛이 좋기로 유명한 백령도 역사와 함께해 온 마지막 염전인 화동 염전 역시 큰 고비를 겪고 있습니다. 싼 가격을 무기로 밀려오는 중국산 소금의 장벽 앞에서, 평생 소금을 긁어 정성을 다해 일구었던 부부의 염전들은 하나둘 쓸쓸히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흘리는 땀방울의 가치가 현대의 가격 경쟁력 앞에서 무력하게 바래지는 순간입니다.
4. 인간과 자연이 상생하는 안전지대, 잔점박이물범의 서식지
그러나 거친 세파 속에서도 생명은 뜻밖의 곳에서 자신들만의 길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백령도 남쪽에 자리를 잡은 연봉바위 인근 바다에는 천연기념물 제31호로 지정된 잔점박이물범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1년에 고작 50일 정도밖에 모습을 허락하지 않는 수줍은 이 생명체들이 머나먼 백령도를 서식처로 낙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안전한 바다 환경 덕분에 물범들이 백령도를 주요 서식처로 삼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분단의 아픔이 서린 삼엄한 군사 작전 구역과 민간인 출입 통제선이 역설적이게도 이 동물들에게는 포획과 인간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가장 완벽한 안전지대'를 제공해 줍니다. 넉넉히 쉴 수 있는 바위와 풍부한 먹이, 그리고 인간의 간섭 차단이라는 생태적 우산 아래서 물범들은 지쳐버린 날개를 쉬어 갑니다. 오랜 시간 우리 민족에게는 긴장과 대립의 상징이었던 이 통제 구역이, 자연의 다른 생명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평화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었던 인류학적 공존의 진풍경입니다.
5. 불 꺼진 등대 아래서 우리가 되새겨야 할 섬의 철학
백령도의 한편에는 북한 땅에 불빛이 새어 들어간다는 국가 안보상의 이유로 1960년대에 폐쇄되어 이제는 더 이상 불을 밝히지 않는 노등대가 서 있습니다. 비록 더는 찬란한 불빛을 내뿜지 못하지만, 노등대는 여전히 매서운 세찬 파도와 바람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폐등대는 묵묵히 섬 사람들의 삶을 곁에서 함께해 왔습니다.
"여기 공기 존데, 너무 고디어." 주민의 덤덤한 한마디 속에는 삶의 숭고함과 애환이 동시에 묻어납니다. 평생을 매서운 노동 속에서 보내며 자연이 베풀어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이웃과 정을 나누었던 백령도 사람들. 그들의 영혼은 거친 풍랑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노등대와 꼭 닮아 있습니다. 비록 옛 영광은 옅어지고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지만, 상생의 정성이 어려 있는 백령도의 인문 생태적 가치만큼은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따뜻한 시대적 유산이 아닐까요?
FAQ
'대후리'는 어떤 조업 방식인가요?
대후리는 약 200년 전부터 전해 내려온 백령도 고유의 전통 공동 어업 방식입니다. 350m 길이의 거대한 그물을 바다에 넓게 펼쳐놓은 후, 마을 주민 약 10~20명이 해변에서 힘을 합쳐 그물을 육지로 끌어당겨 고기를 잡습니다.
대후리로 확보한 어획물은 어떻게 분배되나요?
가장 핵심적인 전통은 '공평한 분배'입니다. 개인 소유의 배가 없더라도, 조업에 참여해 함께 땀을 흘리고 그물을 당긴 모든 사람이 물고기를 똑같은 양으로 나누어 가집니다.
마지막 염전인 '화동 염전'이 위기에 처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백령도의 좋은 기후 덕에 질 좋은 소금이 생산되었으나, 저렴한 중국산 소금이 대거 유입되면서 가격 경쟁력을 잃어 하나둘 문을 닫게 되었고 현재는 마지막 한 곳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백령도에 천연기념물 잔점박이물범이 모여드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백령도가 접경지대로서 민간인 출입 통제 지역이 많다 보니, 사람이나 선박의 위협으로부터 격리되는 안전한 피난처 역할을 합니다. 또한 연봉바위처럼 쉴 수 있는 풍부한 암초와 풍성한 어족 자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