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암산용늪 / 한국관광공사-황성훈 |
강원도 인제군 대암산 꼭대기 아래 해발 1,280m 지점에는 늪이 있다. 물이 빠져나가기 쉬운 산 위에 습지가 남은 것인데, 죽은 풀이 다 썩지 못하고 눌려 쌓인 이탄층이 4,500년 동안 자라 지금의 바닥을 만들었다. 땅속 물이 아니라 빗물과 안개로 유지되는 이런 고층습원은 국내에서 용늪 한 곳뿐이다. 1997년 람사르협약에 이름을 올린 국내 첫 습지이기도 하다.
용늪은 1년 내내 열려 있지 않다. 습지를 지키기 위해 5월 16일부터 10월 31일까지만 탐방을 받고, 나머지 기간에는 출입을 막는다. 올해 남은 기간은 10월 말까지 한 달 남짓이다. 해발이 높아 산 아래보다 풀빛이 먼저 바뀌는 자리라, 늪 가장자리 들풀과 억새가 누렇게 물드는 모습을 이 기간에 볼 수 있다.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풀밭
대암산용늪 / 한국관광공사-황성훈 |
숲길을 따라 오르다 늪에 닿으면 갑자기 시야가 트인다. 물을 머금은 땅이라 키 큰 나무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낮은 풀만 덮인 평평한 벌판이 나타난다. 그 뒤로 대암산 능선이 낮게 둘러서 있어 산속에 들판 하나가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탐방객은 습원 가장자리에 놓인 데크에서 안쪽을 본다. 발밑으로는 오랜 세월 쌓인 이탄층이 이어지고, 그 위에 고층습원에서만 사는 들풀이 자리를 나눠 군락을 이룬다. 물이 얕게 고인 자리와 풀이 빽빽한 자리가 색으로 구분돼, 같은 벌판인데도 구역마다 결이 다르게 보인다.
대암산 용늪 / 한국관광공사-손명권 |
해설사가 일행과 함께 움직이며 이탄층이 어떻게 쌓였는지, 어떤 풀이 이 높이에서만 자라는지 짚어준다. 늪 자체가 보호구역이라 안으로 들어가거나 길을 벗어날 수 없고, 정해진 동선에서 보는 방식으로만 관람이 이뤄진다.
걷는 데 걸리는 시간과 두 갈래 들머리
대암산 용늪 / 한국관광공사-손명권 |
현재 이용할 수 있는 길은 서흥리 탐방자지원센터에서 출발하는 코스다. 왕복 약 5km를 걸어 오르내리는 일정으로 다섯 시간쯤 걸리며, 하루 120명까지 받는다. 거리는 길지 않지만 계속 오르막이 이어지는 산길이라 등산화와 물은 챙기는 편이 낫다.
오르는 동안 풍경도 한 번씩 바뀐다. 아래쪽은 활엽수가 우거져 하늘이 잘 보이지 않다가, 고도가 올라갈수록 나무 키가 낮아지고 능선 너머 산줄기가 겹겹이 드러난다. 정상부에 가까워지면 바람이 세지고 공기도 서늘해져, 같은 날 산 아래와 옷차림이 달라진다.
인제읍 가아리에서 차량으로 습지 입구까지 올라간 뒤 걷는 왕복 3시간짜리 짧은 코스도 있었다. 하루 30명만 받던 길인데, 산사태로 탐방로가 무너지면서 지난 7월부터 출입이 막혔다. 다시 여는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열흘 전에 끝내야 하는 예약
대암산용늪 / 한국관광공사-황성훈 |
용늪은 예약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탐방 예정일 열흘 전까지 인제군 용늪 예약 누리집에서 신청을 마쳐야 하고, 현장에서 접수하는 방법은 없다. 하루 인원이 정해져 있는 만큼 주말 자리는 먼저 차는 편이다.
출발지인 서흥리 탐방자지원센터는 인제 읍내에서 차로 이동한다. 탐방은 해설사와 함께 정해진 시간에 출발하므로 늦게 도착하면 합류하기 어렵다. 늪 안에서는 음식을 먹거나 채집하는 행위가 금지되고, 길 밖으로 나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올해 탐방이 끝나면 용늪은 이듬해 5월까지 닫힌다. 산 위 벌판이 누렇게 물드는 시기와 마지막 개방 기간이 겹치는 셈이라, 올가을에 보려면 남은 한 달 안에 일정을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