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 익은 묵은지와 돼지고기가 담긴 묵은지찜 냄비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날이 쌀쌀해지는 10월 하순이면 김치냉장고 깊숙이 넣어 둔 묵은지를 꺼내 돼지고기와 함께 푹 끓이는 집이 많다. 한 솥 끓여 두면 며칠 밥상이 든든해지지만, 오래 익은 김치라 신맛과 매운맛이 앞서서 국물을 몇 숟가락 떠먹다 보면 혀끝이 금방 얼얼해진다.
신맛을 누그러뜨리려고 설탕을 한 숟가락 넣어 보기도 하지만, 많이 넣으면 국물이 들큼해지고 적게 넣으면 별 차이가 없다. 고구마를 큼직하게 썰어 함께 넣는 집도 있는데, 이렇게 하면 고구마 조각만 달고 정작 국물과 묵은지 맛은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제철 고구마를 썰지 말고 믹서에 갈아서 육수 대신 붓는 방법이 있다. 고구마 1/3개만 갈아 넣어도 묵은지의 매운맛 사이로 은은한 단맛과 구수함이 국물 전체에 퍼지고, 멸치나 사골로 육수를 따로 내지 않아도 맛이 한결 깊어진다.
덩어리 고구마가 국물까지 달게 하지 못하는 이유
국물 위에 덩어리 고구마가 따로 보이는 묵은지찜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고구마를 덩어리로 넣으면 단맛이 대부분 고구마 속에 머문다. 겉이 익어 부드러워지는 동안 국물로 빠져나오는 양은 많지 않아서, 고구마를 베어 물 때만 달고 국물과 묵은지에는 시큼한 맛이 그대로 남는다.
설탕은 반대로 국물에 바로 녹아 단맛이 한꺼번에 올라오는데, 묵은지의 신맛을 덮을 만큼 넣으면 단맛이 따로 놀아 김치 맛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양을 줄이면 신맛이 그대로라서 설탕만으로는 알맞은 양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고구마를 갈면 고구마가 잘게 부서져 물과 섞인 뿌연 고구마 물이 되는데, 이 물을 붓고 끓이면 고구마가 국물 속에 고루 풀어지면서 단맛이 묵은지와 돼지고기 사이사이에 밴다. 그래서 고구마는 썰어 넣기보다 갈아서 육수처럼 붓는 것이 좋다.
투명 계량컵에 담긴 연한 노란색 고구마 간 물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묵은지찜에 고구마 갈아 넣어 끓이는 방법
묵은지 위에 돼지고기를 올려 둔 냄비와 손질한 고구마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준비물은 묵은지와 찜에 쓸 돼지고기, 고구마 1/3개, 고춧가루다. 고구마는 껍질을 벗겨 믹서에 들어가기 좋게 큼직하게 썰고, 냄비 바닥에는 묵은지를 깔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올려 미리 준비해 둔다.
썰어 둔 고구마를 믹서에 넣고 칼날이 잘 돌아갈 만큼 물을 부어 간다. 아주 곱게 갈 필요는 없는데, 덜 갈린 알갱이가 조금 남아 있어도 끓이는 동안 국물 속에서 풀어지기 때문이다.
물과 고구마 조각을 넣은 투명 믹서 용기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고구마 간 물을 묵은지와 돼지고기 위에 육수처럼 고루 붓고 고춧가루를 뿌린 다음 40분 동안 끓인다. 고구마가 풀어지면서 국물이 조금씩 되직해지므로, 끓이는 중간중간 냄비 바닥을 한 번씩 긁어 주어야 바닥에 눌어붙지 않는다.
고구마는 1/3개면 충분하다. 묵은지찜의 중심은 오래 익은 김치 맛이라, 고구마를 더 많이 갈아 넣으면 단맛이 앞서고 국물이 죽처럼 되직해져 묵은지 맛이 묻힌다. 묵은지가 유난히 시거나 짜서 국물 맛이 세게 느껴질 때도 고구마를 더 넣기보다 묵은지를 찬물에 한 번 헹궈 쓰는 편이 맛을 맞추기 쉽다.
40분쯤 지나 국물 속에 고구마 알갱이가 보이지 않고 묵은지 줄기가 젓가락으로 쉽게 찢어지면 다 익은 것이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을 때 신맛 뒤로 단맛이 은은하게 따라오면 고구마 물이 국물에 제대로 풀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