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밥솥 내솥의 씻은 쌀 위에 얼린 간 무 큐브 한 조각을 올린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9월 하순이 되면 쌀독 사정이 애매해진다. 햅쌀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지난해에 사 둔 쌀은 아직 반 포대쯤 남아 있어, 새 쌀을 붓기 전에 남은 쌀부터 먹게 된다. 그런데 그 쌀로 밥을 지으면 밥알이 푸석하고 윤기가 없는 데다, 뚜껑을 열 때 묵은 냄새가 올라와 밥맛이 떨어진다.
이럴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밥물을 늘리는 것이다. 한 눈금쯤 더 붓고 지어 보면 밥알 겉만 질척해지고 씹어 보면 속은 여전히 퍽퍽한 데다, 묵은 냄새도 그대로 남아 있어 결국 국에 말아 먹게 된다.
밥맛은 밥물 양이 전부라고 알고 있지만, 묵은쌀에는 물보다 나은 것이 하나 있다. 무를 곱게 갈아 얼음틀에 얼려 두었다가 밥을 안칠 때마다 한 조각씩 꺼내 쌀 위에 얹는 방법이다.
밥물을 늘려도 묵은쌀 밥이 푸석한 이유
투명한 유리볼에 담긴 묵은쌀 알갱이를 가까이에서 본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묵은쌀이 푸석한 이유는 쌀알 속에 든 수분이 보관하는 동안 조금씩 빠져나가기 때문인데, 도정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알이 마르고 겉면의 기름기도 변해 특유의 묵은 냄새가 난다. 여름을 한 번 넘긴 쌀이라면 이 차이가 더 벌어진다.
그래서 밥물을 늘려 보지만 밥맛이 살아나지는 않는데, 짧은 시간에 부은 물은 밥알 겉만 적시고 속까지 들어가지 못해 겉은 질척하고 속은 퍽퍽한 밥이 되기 때문이다. 냄새도 물을 더 붓는다고 옅어지지 않아서, 물의 양만 건드려서는 한계가 있다.
무가 통하는 이유는 무의 90% 이상이 수분이라서인데, 곱게 갈아 두면 쌀알 사이사이에 고루 퍼진 채로 밥이 지어지고 솥 안이 뜨거워지면서 머금고 있던 물기를 천천히 내놓는다. 가을에 나오는 무는 단맛도 오를 대로 올라 있어 그 단맛이 밥알에 배면 묵은 냄새가 덜 느껴진다. 밥물을 늘리는 대신 물기를 천천히 내놓는 것을 넣는 쪽으로 손을 대야 하는 이유다.
간 무 얼려 두고 밥 지을 때 한 조각씩 쓰는 방법
손질한 무와 물을 넣은 믹서 용기 안에서 곱게 갈린 무를 확인하는 장면.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만드는 일은 밥 짓는 날 말고 시간이 있는 날 한 번에 해 두는 것이 좋다. 무는 3~4cm 두께로 한 토막 잘라 껍질을 벗기고, 믹서에 들어갈 만큼 깍둑썰어 넣은 다음 물을 3스푼 정도 붓고 곱게 간다. 물을 조금 넣어야 날이 헛돌지 않고 고르게 갈리는데, 건더기가 씹히지 않고 걸쭉하게 흘러내릴 정도면 다 갈린 것이다.
갈아 놓은 무는 얼음틀에 한 칸씩 나눠 담는다. 칸을 가득 채우지 말고 팔 부쯤만 담아야 얼면서 부풀어도 넘치지 않는다. 그대로 냉동실에 하루 정도 두면 단단하게 굳는데, 손으로 눌러 자국이 남지 않을 만큼 굳었으면 틀에서 빼내 밀폐용기나 지퍼백에 옮겨 담는다. 얼음틀에 그대로 두면 냉동실 냄새가 밴다.
간 무를 팔 부 정도씩 나눠 담은 흰색 실리콘 얼음틀.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밥을 안칠 때는 쌀을 평소대로 씻어 내솥에 담고 눈금에 맞춰 물을 부은 다음, 그 물을 두 숟갈 정도 덜어 내고 얼린 무 큐브를 한 조각 쌀 위에 얹는다. 큐브도 결국 물이라서 덜어 내지 않으면 밥이 질어진다. 녹일 필요 없이 얼린 채로 얹고 평소처럼 취사 버튼을 누르면 된다.
물 눈금이 보이는 전기밥솥 내솥에 무 큐브 한 조각을 넣는 장면.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밥이 다 되면 뚜껑을 열고 주걱으로 아래위를 한 번 뒤집어 섞는다. 밥알에 윤기가 돌고 뚜껑을 열 때 올라오던 묵은 냄새가 덜하면 제대로 된 것이다. 한 번에 두 조각 이상 넣지 않는 것이 좋은데, 무 맛이 도드라져 무밥에 가까워진다. 얼려 둔 큐브는 한 달 안에 쓰는 것이 좋고, 잡곡밥에도 같은 방법으로 쓸 수 있다.
무가 제철로 나오는 지금은 수분도 단맛도 가장 많은 때라 한 통 사서 갈아 두기에 좋다. 남은 묵은쌀을 밀어 두고 새 쌀만 먹기보다 무 한 조각으로 밥맛을 살려 끝까지 먹어 보길 권한다. 먹던 쌀을 버리지 않고 다 먹는 일은 날마다 올라오는 밥 한 그릇을 제값 하게 만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