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이 진한 갈색빛을 띠는 김치찌개가 작은 스테인리스 냄비에 담겨 가스레인지 위에 놓여 있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김장 김치를 겨우내 먹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통을 여는 일이 망설여진다. 뚜껑을 열 때부터 시큼한 냄새가 먼저 올라오고 한 조각 집어 먹으면 신맛이 혀를 찌르는데,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워 대부분 찌개로 끓여 먹게 된다. 그런데 막상 끓여 놓고 보면 김치보다 국물이 더 시어서 밥 한 술 뜨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럴 때 흔히 꺼내는 것이 설탕이다. 반 스푼쯤 넣고 저으면 넣는 순간에는 신맛이 덜한 것 같지만, 몇 번 떠먹다 보면 국물이 텁텁하고 느끼해지면서 김치찌개 특유의 시원한 맛이 오히려 사라진다. 신맛은 아래에 그대로 남아 있고 단맛만 위에 얹힌 상태라 숟가락이 자꾸 멈추게 된다.
설탕 대신 꺼낼 것은 냉장고 문칸에 늘 있는 된장이다. 김치찌개에 된장을 넣는다는 말이 낯설게 들리지만, 김치를 볶아 물을 붓고 끓이는 단계에서 반 스푼만 풀어 주면 혀끝을 찌르던 신맛이 가라앉고 국물이 오래 묵힌 김치로 끓인 것처럼 묵직해진다.
설탕으로는 가라앉지 않는 김치찌개 신맛
뚜껑을 연 김치통 안에 노랗게 익은 김치가 국물에 잠겨 있고, 국물이 김치 위까지 올라와 있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김치가 시어지는 것은 익는 동안 김치 안에서 산이 만들어지기 때문인데, 이 산은 김치 조각보다 국물에 더 많이 녹아 있다. 그래서 찌개로 끓이면 김치에 배어 있던 산이 그대로 국물로 빠져나오고, 끓일수록 국물이 졸아들면서 신맛은 오히려 더 도드라지게 된다.
여기에 설탕을 넣으면 단맛이 하나 더 생길 뿐 산 자체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혀는 신맛과 단맛을 따로 느끼기 때문에 처음 한 술은 덜 신 것 같아도 뒷맛에서 신맛이 다시 올라오고, 남은 단맛이 돼지고기 기름과 겹치면서 국물이 느끼해진다. 신맛을 덮는 쪽이 아니라 감싸는 쪽으로 손을 대야 하는 이유다.
된장은 이 자리에서 성격이 다르게 움직인다. 된장의 짠맛과 구수한 맛이 김치의 산 성분을 감싸 혀끝을 찌르는 날카로운 부분을 눌러 주고, 콩을 발효시키면서 생긴 단백질 성분이 국물에 녹아 감칠맛으로 남는다. 시큼하게 튀던 맛이 자리를 내주고 그 빈자리를 구수한 맛이 채우는 셈이다.
신 김치찌개에 된장 넣어 신맛 잡는 방법
밥숟가락에 된장이 절반 정도 담겨 있고, 아래에는 뚜껑을 연 된장통이 놓여 있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분량은 4인 기준 찌개 한 냄비에 된장 반 스푼이면 충분하다. 밥숟가락으로 반 정도 뜨는 양인데, 한 스푼을 넘기면 국물이 된장찌개 쪽으로 넘어가 김치찌개 맛이 흐려진다. 된장이 들어가는 만큼 소금이나 국간장은 평소보다 덜 넣고, 간은 다 끓인 뒤에 맞추는 것이 좋다.
먼저 신 김치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냄비에 넣고 들기름이나 식용유를 한 바퀴 둘러 중불에서 5분쯤 볶는다. 김치를 미리 볶아 두면 김치 숨이 죽으면서 신맛이 한결 덜해지고 국물 맛도 진해진다. 돼지고기를 넣는다면 이때 같이 넣고 겉면이 하얗게 익을 때까지 함께 볶아 준다.
냄비 안에서 썰어 넣은 김치와 돼지고기가 기름에 볶이며 고기 겉면이 하얗게 변하고 있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김치가 투명해지면 물이나 쌀뜨물을 재료가 잠길 만큼 붓고 센불로 끓인다. 국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할 때 된장 반 스푼을 국자에 덜어 국물로 먼저 푼 다음 냄비에 넣어야 덩어리 없이 고르게 퍼진다. 그대로 넣으면 된장이 뭉친 채 가라앉아 어느 숟가락에서는 짜고 어느 숟가락에서는 신맛이 그대로 난다.
끓는 냄비 위에서 국자에 덜어 담은 국물에 된장을 젓가락으로 풀어 섞고 있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이후에는 중불로 줄여 20분 이상 끓인다. 국물 색이 맑은 붉은빛에서 진한 갈색빛으로 바뀌고 김치 조각이 손가락으로 눌러 뭉개질 만큼 물러지면 다 된 것이다. 신맛이 아직 남았다면 감자를 큼직하게 썰어 몇 조각 넣고 더 끓이면 국물의 산맛이 줄어든다. 다만 된장을 더 넣어 맞추려 하면 짠맛만 세지니 그대로 두는 편이 낫다.
시어져서 손이 가지 않던 김치가 한 통 남아 있다면 이번에는 설탕 대신 된장 반 스푼으로 끓여 보길 권한다. 한 통을 끝까지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아 두면 김치를 담그거나 사 둘 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