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판 / 사진=더카뷰 |
달걀을 다 먹고 나면 남는 종이 계란판은 대개 뜯어보지도 않고 곧바로 종이류 쓰레기통으로 간다. 오목한 칸이 서른 개나 붙어 있는 물건이라 버릴 때마다 아깝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실제로 쓸 데는 여러 곳이지만 아무 데나 놓아도 되는 물건은 아니다. 어디에 쓰면 되고 어디에는 쓰면 안 되는지를 가르는 것은 계란이 닿았던 자리인가 아닌가다.
계란을 담았던 판에 남는 살모넬라
계란판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 |
금이 가지 않은 깨끗한 계란에도 살모넬라가 있을 수 있는데, 계란이 나오는 통로가 배설물이 지나는 곳과 같아 껍데기가 오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껍데기가 서른 칸에 하나씩 몇 주 동안 닿아 있던 물건이 바로 계란판이다.
살모넬라는 마른 종이 위에서 생각보다 훨씬 오래 버틴다. 종이에 묻혀 둔 살모넬라가 25도에서 70일, 35도에서도 35일까지 살아 있었다. 종이 펄프는 구멍이 숭숭 뚫린 재질이라 물로 씻어도 섬유 안쪽까지는 닦이지 않는다.
그래서 음식이나 그릇처럼 입에 들어갈 것이 닿는 자리에는 계란판을 쓰지 않아야 한다. 아이 물감 팔레트로 쓰는 것도 손을 입으로 가져가기 쉬운 나이라면 권하기 어렵다.
칸마다 나눠 담는 소품과 탈취제
계란판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 |
대신 먹는 것과 떨어진 자리에서는 계란판만 한 물건이 없다. 서랍 속에서 늘 뒤엉키는 나사와 단추, 건전지, 머리끈을 칸마다 나눠 담으면 섞이지 않고, 서랍 크기에 맞게 잘라 넣으면 칸막이처럼 들어맞는다. 손이 자주 가는 것을 앞줄에 몰아 두면 서랍을 열자마자 어디 있는지 눈에 들어온다.
먹는 것과 떨어진 자리 가운데서도 계란판이 가장 잘 맞는 쪽은 탈취다. 미국 농무부는 냄새를 없앨 때 커피 가루나 베이킹소다를 넓고 얕은 그릇에 헐겁게 펼쳐 두라고 안내하는데, 오목한 칸이 줄지어 붙은 계란판이 이 조건에 그대로 들어맞는다.
계란판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 |
숯이나 바짝 말려 둔 커피 찌꺼기를 칸마다 조금씩 나눠 담아 신발장이나 옷장 바닥에 두면 된다.
다만 같은 탈취라도 냉장고 안에는 넣지 않는 편이 낫다. 종이 펄프는 습기를 빨아들이면 물러지고 곰팡이가 피기 쉬워서, 차고 습한 곳에서는 며칠 만에 형태가 무너진다.
택배 상자 빈틈을 채우는 완충재
계란판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 |
펄프를 눌러 굳힌 재질 자체는 공장에서 쓰는 완충 포장재로도 만들어진다. 충격이 섬유 구조 전체로 흩어지고 눌려도 형태가 남아, 병이나 전자부품을 담는 성형 포장재로 만들어 쓴다. 다만 계란판은 계란 모양대로 굳어 있어 다른 물건을 감싸 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택배를 쌀 때는 물건을 감싸는 데 쓰지 말고 상자 안 빈틈을 채우는 데 써야 한다. 컵이나 유리병을 종이로 한 번 싼 다음 그 둘레의 빈 곳에 계란판을 잘라 끼우면 상자 안에서 물건이 굴러다니지 않는다.
씨앗을 틔우는 트레이로 쓸 때는 더 큰 화분으로 옮겨 심는 시점만 지키면 된다. 칸에 담기는 흙이 적어 본잎이 나오면 곧 자리가 모자라므로 싹이 트는 데까지만 쓰고 그때 더 큰 화분으로 옮긴다. 칸째 잘라 종이 그대로 땅에 묻는 방식은 종이가 오래 남아 뿌리를 가두므로 피한다.
계란판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 |
여러 번 쓰임을 다하고 나면 그때는 종이류로 내놓으면 된다. 다만 물에 젖었거나 깨진 달걀이 묻어 얼룩진 것은 이물질을 떼어 낼 수 없으니 종량제 봉투에 넣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