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 / 사진=뉴스클립 |
볼펜 뚜껑 끝을 보면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흔히 잉크가 마르지 않게 공기를 통하게 하는 통풍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구멍은 잉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 작은 구멍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안전장치다.
이 구멍이 생긴 데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사람들은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생각에 잠길 때 무심코 볼펜 뚜껑을 입에 무는 버릇이 있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뚜껑을 입에 물고 놀다가 그대로 삼켜 버리는 일이 적지 않았다.
볼펜 / 사진=뉴스클립 |
문제는 볼펜 뚜껑이 가늘고 길어서, 삼켰을 때 목에 걸려 기도를 완전히 막아 버린다는 점이다. 숨길이 막히면 짧은 시간 안에 질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실제로 이런 사고로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있었다.
음식처럼 부드럽지 않고 단단한 데다 모양이 길쭉해, 한번 걸리면 더 위험했다.
삼켜도 숨이 통하게
볼펜 / 사진=뉴스클립 |
이런 사고가 반복되자 1990년 영국이 필기구 뚜껑에 대한 안전 기준을 새로 만들었다. 뚜껑에 공기가 통하는 구멍을 뚫거나, 아예 기도를 막지 못할 만큼 크기를 키우라는 내용이었다.
핵심은 뚜껑을 삼키더라도 그 구멍으로 공기가 드나들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뚜껑이 목에 걸려도 구멍을 통해 숨을 쉴 수 있으면, 질식이라는 최악의 상황만큼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구멍 하나가 생사를 가르는 차이를 만드는 셈이다.
이 기준은 곧 다른 나라로 퍼져 나갔다. 1991년 세계적인 필기구 회사가 이를 도입한 것을 시작으로, 많은 제조사가 따르면서 볼펜 뚜껑의 구멍은 사실상의 국제 표준이 되었다. 안전 기준이 자리 잡은 뒤로는 같은 사고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작은 구멍에 담긴 배려
볼펜 / 사진=뉴스클립 |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쓰는 볼펜 대부분은 뚜껑 끝에 이 작은 구멍을 달고 있다. 무심코 지나치던 구멍 하나에 수많은 아이의 안전을 지키려는 고민이 담겨 있는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뚜껑을 입에 무는 습관 자체를 들이지 않는 것이다. 구멍이 있다 해도 큰 뚜껑이나 다른 작은 부품을 삼키면 위험하니,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볼펜이나 작은 문구류를 아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는 것이 안전하다.
볼펜 / 사진=뉴스클립 |
작은 구멍 하나에도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늘 손에 쥐던 볼펜이 조금 달리 보인다.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물건에도 이렇게 사람을 살리는 설계가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