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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가로수는 왜 암수를 몰랐을까: 15년 걸리던 성별 판별을 바꾼 DNA 기술

spark_icon6분 지식
  • 은행나무는 15~30년이 지나 꽃이 피어야 암수가 구분되어 과거에는 성별을 모른 채 도로변에 심어졌습니다.
  • 국립산림과학원이 개발한 DNA 성감별 기술은 1년생 묘목 잎 한 장으로 수나무 특이 표지를 확인해 암수를 정확히 가려냅니다.
  • 이 기술로 암나무 교체가 빨라지며 악취 민원은 줄고 있지만, 수종 교체로 인한 기존 가로수 제거라는 생태적 과제도 함께 안고 있습니다.

서울 거리에서 가장 흔하게 만나는 가로수는 단연 은행나무입니다. 2023년 말 기준 서울 전체 가로수 29만 4,668그루 중 은행나무는 10만 2,079그루로 전체의 34.6%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플라타너스나 왕벚나무를 크게 앞지른 수치입니다.

단순화된 형태의 기하학적 나무들이 줄지어 심어진 도시 거리의 3D 그래픽 영상 화면

서울 거리 어디에서나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가로수의 압도적인 주인공은 단연 은행나무입니다.

그런데 가을만 되면 이 흔한 나무 탓에 도시 곳곳이 몸살을 앓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열매가 밟히며 풍기는 고약한 냄새 때문입니다. 악취의 원인은 열매 껍질에 든 비오볼(Bilobol) 성분으로, 맨손으로 만지면 피부염까지 일으킬 수 있습니다. 지자체마다 고소작업차와 진동 수확기까지 동원해 열매를 미리 털어내지만, 작업 인부 9명이 온종일 매달려도 겨우 10그루 남짓 처리하는 데 그칩니다. 매년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쏟아붓고도 다음 해 가을이면 악취는 어김없이 되풀이됩니다.

왜 처음부터 수나무만 심지 못했을까: 15년의 시간 장벽

여기서 자연스러운 의문이 듭니다. 열매는 암나무에만 열리니 애초에 냄새가 나지 않는 수나무만 골라 심을 수는 없었을까요?

답은 허탈하게도 심을 때는 암수를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은행나무는 겉모습만으로 성별을 구별할 수 없는 암수딴그루 식물입니다. 암수를 확인하려면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 기간이 무려 짧게는 15년에서 길게는 30년 가까이 걸립니다.

1971년 서울시 상징 나무로 지정될 당시, 매연과 공해를 잘 견디는 어린 묘목들을 성별 구분 없이 도로변에 대거 심었습니다. 수십 년이 흘러 나무가 완전히 자란 뒤에야 비로소 거리 곳곳에서 암나무가 정체를 드러내며 악취를 풍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은행나무 DNA 성감별 기술: 잎 한 장으로 성별을 읽다

결국 문제는 '꽃이 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자연의 시간표였습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이 물리적 한계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2000년대 초반 연구에 착수해 2011년 국내 최초로 은행나무 성감별 DNA 분석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손가락으로 작은 녹색 나뭇잎 한 장을 들고 있는 모습의 3D 애니메이션 장면입니다.

이제는 묘목 단계에서 잎사귀 하나만 있어도 암수를 정확히 구별할 수 있습니다.

원리는 명쾌합니다. 수나무 유전체에만 존재하는 특이 DNA 표지를 찾아내는 방식입니다. 어린 묘목의 잎에서 추출한 DNA를 증폭했을 때, 수나무는 띠가 두 줄로 나타나고 암나무는 한 줄로 나타납니다.

이제는 15년을 기다릴 필요 없이 손톱만 한 잎 한 장만 있으면 1년생 어린 묘목 단계에서 성별을 판별할 수 있습니다. 전국 8개 지역에서 암수 각 80여 그루를 대상으로 교차 검증까지 마쳤습니다.

연구실에서 거리로: 도시 가로수의 세대교체

기술 개발 이후 가로수 행정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DNA 분석으로 암수가 가려진 묘목 중 수나무는 도로변 가로수로 배치하고, 암나무는 열매를 수확하는 종자 생산용 농가로 전환했습니다.

도심 속 보도블록에 심어진 어린 은행나무 한 그루와 그 앞에 '바꿔 심습니다'라는 한글 자막이 표시된 3D 그래픽 영상 화면.

지자체에서는 가로수 은행나무의 성별을 식별한 뒤, 악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하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각 지자체의 바꿔심기 사업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서울 강북구는 가로수 암나무를 전량 수나무로 교체 완료했고, 광진구 역시 한 해 115그루를 교체하는 등 서울 시내 가로수 암나무는 매년 1천 그루 이상 줄어들고 있습니다. 악취 민원이 잦았던 번화가와 보행로를 중심으로 수나무 은행길이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기술적 해결 뒤에 남겨진 과제

다만 이 효율적인 기술 뒤편에는 함께 고민해야 할 도시 생태의 그늘도 있습니다. 환경단체 집계에 따르면 매년 수종 교체와 정비 과정에서 사라지는 서울의 은행나무만 한 해 700그루가 넘습니다. 용산구 한 곳에서만 254그루의 교체 계획이 잡히기도 했습니다.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하는 것을 넘어, 관리 편의를 이유로 은행나무 자체를 뽑아내고 다른 수종으로 대체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과거 산업화 시절 매연과 공해를 묵묵히 견뎌내며 도시를 지켰던 가로수가 악취라는 이유 하나로 거리에서 밀려나는 셈입니다.

15년을 기다려야 했던 자연의 굴레를 잎 한 장의 DNA 분석으로 극복해 낸 기술은 분명 도시 행정의 혁신입니다. 하지만 어렵게 찾아낸 해법인 만큼, 기존의 건강한 나무를 무분별하게 베어내기보다는 보행 환경과 생태적 가치가 균형을 이루는 정밀한 식재 관리가 뒤따라야 할 시점입니다. 서울 거리의 노란 수나무 은행길은 바로 이 치열한 공학적 역발상과 생태적 고민 끝에 탄생한 것입니다.


FAQ

은행나무 열매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열매 겉껍질에 함유된 비오볼(Bilobol)과 은행산 등의 성분 때문입니다. 이 성분들은 냄새가 고약할 뿐만 아니라 맨손으로 만질 경우 피부염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왜 수나무만 골라서 심지 않았나요?

은행나무는 어린 묘목 상태에서 육안으로 암수 구분이 불가능하며, 최소 15년에서 30년이 지나 꽃과 열매가 맺혀야 성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DNA 성감별 기술은 어떤 원리로 작동하나요?

수나무에만 존재하는 특이 DNA 표지를 분석하는 원리입니다. 어린 잎에서 DNA를 추출해 증폭하면 수나무는 두 줄, 암나무는 한 줄의 띠가 나타나 손톱만 한 잎 한 장으로 성별을 가려냅니다.

가로수로 쓰이지 않는 암나무는 모두 폐기되나요?

아닙니다. DNA 분석을 통해 걸러진 암나무는 폐기되지 않고 식용 열매를 수확하거나 종자를 받는 용도의 농가 식재지로 전환되어 활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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