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3

서울 한강 물줄기인데 한강을 못 만나는 하천

spark_icon5분 지식
  • 50여 년 전 양재천은 관악산에서 발원해 한강으로 곧장 흘러들어가던 한강의 1차 지류 사행천이었습니다.
  • 1971년 잠실 남쪽 송파강을 매립하고 개포 구획정리가 시작되자, 물길을 직선으로 펴 탄천에 합류시키는 역발상 토목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 도시화와 인공 수로화로 극심한 오염을 겪었던 양재천은 하천 정비 역사를 거쳐 오늘날 탄천을 통해 한강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양재천은 한강 수계에 속해 있으면서도 정작 한강을 직접 만나지 못하고 탄천으로 합류하는 하천입니다. 50여 년 전만 해도 관악산에서 흘러내려 한강 본류로 곧장 꽂히던 한강의 1차 지류였지만, 오늘날에는 탄천을 거쳐야만 한강에 닿을 수 있습니다.

도시 지도를 무심코 보면 자연스럽게 형성된 합류 지점처럼 보이지만, 사실 양재천의 현재 물길은 강남과 잠실 일대의 거대한 도시 개발이 낳은 인공적인 토목의 결과물입니다. 강 하나가 통째로 행선지를 바꾸게 된 원리와 그 속에 숨겨진 도시 하천의 메커니즘을 짚어봅니다.

1. 굽이치던 사행천, 원래의 양재천은 어디로 흘렀을까

원래의 양재천은 논밭 사이를 구불구불 휘감아 돌며 흐르던 전형적인 사행천이었습니다. 물길이 꺾이는 굽이마다 얕은 여울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백로가 날아드는 수려한 경관을 자랑했습니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백로가 머무는 여울이라는 뜻의 '학탄(鶴灘)' 혹은 '학여울'로 명확히 기록되었던 이유입니다.

당시 양재천은 탄천을 거치지 않고 독자적인 물길을 이루며 한강으로 직접 들어갔습니다. 다른 지류에 얹혀가는 2차 지류가 아니라 한강 본류와 바로 연결되는 온전한 한강의 1차 지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2. 잠실 개발과 송파강 매립이 부른 나비효과

옛 지도에 그려진 구불구불한 강줄기 위에 '학여울'이라는 큰 글자가 적혀 있고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문제는 그 아래'라는 문구가 겹쳐진 화면.

대동여지도에 '학여울'이라 기록될 만큼 생태가 살아있던 양재천은 본래 한강으로 직접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물길이었습니다.

문제는 양재천 하류가 맞닿아 있던 당시 한강의 구조였습니다. 과거 한강은 잠실 일대에서 물줄기가 둘로 갈라져 잠실섬을 양옆으로 감싸고 흐르는 형태였습니다. 남쪽의 본류였던 송파강과 북쪽의 샛강인 신천강 사이로 물이 흘렀는데, 장마철에 비가 조금만 많이 내려도 잠실섬 전체가 물에 잠기기 일쑤였습니다.

서울시는 홍수 방지와 택지 조성을 위해 1971년 대대적인 물길 정비에 착수합니다. 남쪽 본류였던 송파강을 막아버리고, 북쪽의 좁은 샛강을 넓혀 지금의 한강 본류로 전환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축구장 340개가 넘는 75만 평의 땅이 매립되었고, 메우지 않고 남겨둔 옛 송파강 물길의 일부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석촌호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매립 공사로 인해 기존에 남쪽 송파강으로 흘러들던 양재천은 하류의 출구를 잃게 됩니다.

3. 왜 한강까지 따로 물길을 파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막힌 양재천을 위해 한강 본류까지 새로운 단독 수로를 뚫어주면 되지 않았을까요? 현실적인 여건이 이를 가로막았습니다. 당시 양재천 하류 일대가 통째로 개포 토지구획정리 사업 지구에 편입되었기 때문입니다. 격자형으로 반듯하게 도시 구획을 나누고 도로와 택지를 조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구불구불한 자연 하천을 한강까지 단독으로 끌고 가는 것은 막대한 부지 낭비와 비용을 초래하는 난제였습니다.

격자형 도로와 건물들이 배치된 도시의 조감도 위로 일직선으로 뻗은 하천이 흐르고 있으며, 화면 중앙에 '물길을 반듯하게 펴서'라는 자막이 표시되어 있다.

토지 구획 정리 사업 과정에서 굽어 있던 물길은 도시의 효율성을 위해 곧게 펴지고 탄천과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토목 기술자들은 발상을 뒤집습니다. 한강까지 길고 복잡한 물길을 따로 내는 대신, 양재천 물길을 반듯하게 펴서 바로 옆을 지나던 탄천에 붙여버리는 방안을 택한 것입니다. 1974년 1,430m에 달하는 제방이 세워졌고, 1983년에는 평소 물이 흐르는 저수로를 정비하면서 콘크리트 옹벽 제방을 둘렀습니다. 자연스럽게 흐르던 곡류 하천이 직강화된 콘크리트 인공 수로로 탈바꿈하며, 양재천은 탄천의 지류로 편입되었습니다.

4. 인공 수로화의 대가와 도시 하천의 교훈

물길을 억지로 꺾고 콘크리트로 가둔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강남 일대로 인구와 건물이 급격히 밀집하면서 양재천의 수질은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1995년 양재천의 BOD(생물학적 산소요구량)는 평균 15mg/L까지 치솟아, 물고기가 살 수 없는 최하위 수질 등급인 5급수로 전락했습니다.

이후 1995년부터 삭막한 콘크리트 호안을 걷어내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하는 공사가 대대적으로 이어졌지만, 한 번 바뀐 물의 경로는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관악산에서 발원해 15km를 넘게 흘러온 물은 여전히 탄천을 먼저 만난 뒤 한강으로 들어갑니다. 백로가 노닐던 옛 물길의 흔적은 지하철 3호선 학여울역이라는 지명으로만 남아, 도시 개발이 지형과 자연을 어떻게 재편했는지를 말없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FAQ

양재천은 처음부터 탄천의 지류였나요?

아닙니다. 약 50여 년 전만 해도 양재천은 관악산에서 내려와 한강 본류로 곧장 흘러들어가던 한강의 1차 지류였습니다.

왜 양재천의 하류 물길이 탄천으로 바뀌었나요?

1971년 잠실 개발로 송파강을 막아 매립하면서 양재천의 한강 출구가 막혔고, 이후 개포 토지구획정리 사업과 맞물려 물길을 직선화하여 인접한 탄천에 연결했기 때문입니다.

지하철 3호선 '학여울역' 이름은 어디서 유래했나요?

과거 양재천이 구불구불 흐르던 사행천 시절, 물길 굽이마다 여울이 생겨 백로가 자주 날아들었다고 하여 대동여지도에 '학탄(학여울)'으로 기록된 데서 유래했습니다.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