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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중 와인의 95%는 오랫동안 묵혀두면 식초가 되며, 장기 숙성 가능 여부는 제조 단계에서 포도의 '응축도'에 의해 이미 결정됩니다.
  • 빈티지와 품종에 얽매여 비싼 돈을 낭비하는 메커니즘에서 벗어나, 기후 변화가 적은 신세계 와인은 빈티지 무관하게 신선할 때 즐기는 것이 훨씬 이득입니다.
  • 와인의 진정한 가치는 타인이 정해놓은 획일적인 등급이나 척도가 아니라, 다양한 향의 변화를 주체적으로 음미하며 자신만의 개성적인 취향을 승인하는 데 있습니다.

“친구와 와인은 오래될수록 좋다”는 말은 와인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품는 대표적인 오해이자 진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결론부터 아주 단호하게 말씀드리자면,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95% 이상은 병에 담긴 지 2년 이내에 다 마셔 없애야 하는 와인이며, 애매하게 아끼며 오래 묵혀두면 백이면 백 전부 시큼한 식초가 되고 맙니다. 와인이 수십 년 동안 버티며 깊은 맛을 내려면 포도나무 한 그루당 생산량을 극도로 제한하여 만든 특수한 구조를 가져야만 하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비싼 돈을 주고 맛이 다 빠져버린 식초를 마시는 꼴이 됩니다.

와인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포도가 지닌 본질적인 응축도와 올바른 테이스팅 방법을 알고 즐길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내는 인문학적 음료입니다. 뜬구름 잡는 와인 스노비즘(Snobbism)에서 벗어나, 진짜 와인을 제대로 고르고 즐길 수 있는 필수적인 개념들을 하나씩 확실하게 짚어보겠습니다.

1. 아끼다 똥 된다: 와인의 숙성 수명을 결정하는 '응축도'의 비밀

와인이 오래 버틸 수 있는가 없는가는 이미 만들어지는 그 순간부터 완벽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보통 와인은 병을 열어서 그냥 오래 두면 천천히 숙성되어 깊은 맛이 날 것이라 생각하지만, 장기 숙성을 견디는 와인은 제조 단계부터 차원이 다른 엄청난 수준의 포도 응축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집니다.

여기서 응축도란 쉽게 말해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따낸 포도로 와인을 얼마나 생산하느냐의 비율입니다. 포도나무 한 그루에 열린 열매로 와인 세 병을 만들어내는 일반적인 방식의 와인과, 같은 양의 포도를 쥐어짜고 걸러내 겨우 반 병 정도밖에 뽑아내지 못하는 최고급 와인이 과연 같을 수 있을까요? 당연히 한 방울 한 방울의 농도와 타닌, 산도의 파워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극도로 압축된 응축도를 지닌 와인만이 10년, 15년 이상의 세월을 견디며 점차 조화롭게 변해갑니다. 우리가 마트나 양판점에서 쉽게 구하는 대부분의 와인은 빨리 마시기 위해 태어난 녀석들이므로, 아끼지 말고 가장 가까운 시일 내에 마시는 것이 최고입니다.


강연장에서 한 남성이 관객을 향해 강연하고 있고 화면에는 '친구와 와인은 오래된 것이 좋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와인이 무조건 오래될수록 좋다는 생각은 흔한 오해이며, 대부분의 와인은 적절한 시기에 마셔야 제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화이트 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은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이러한 가볍고 산뜻한 와인들은 대개 병에 담긴 지 3년이 지나면 맛의 전성기가 완전히 꺾이고 맙니다. 되도록이면 매장에서 고를 때 우리가 서 있는 시점과 가장 가까운 연도(빈티지)가 적혀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싱싱하고 훌륭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비결입니다. 5만 원 이하의 가벼운 데일리 와인을 '귀한 것'이라며 침실 옷장 속에 소중히 넣어두었다간, 5년 뒤 요리용 식초로도 쓰기 힘든 갈색 액체와 마주하게 될 뿐입니다.

2. 시간이 선물하는 색채학: 화이트와 레드가 늙어가는 서로 다른 방식

시간이 흐르면서 와인이 점차 변화하는 모습은 시각적인 색상을 통해서도 아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완전히 정반대의 색상 변화 과정을 겪게 됩니다.


강연자가 무대 위에서 스크린 앞에 서서 관객들을 향해 손짓하며 설명하고 있고, 스크린에는 '친구와 와인은 오래된 것이 좋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화이트는 점점 짙어지고 레드는 점점 옅어져 간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은 숙성 과정에서 서로 다른 색채 변화를 겪게 됩니다.


화이트 와인은 은은하고 투명한 옅은 노란빛에서 시작해 시간이 오래 지나 오크와 접촉하고 산화가 진행되며 점점 짙은 금색으로 변해갑니다. 만약 아주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비싼 화이트 와인을 제대로 오랜 시간 동안 숙성시킨 뒤 개봉하면, 원래 화이트 와인이 보여주는 한계를 뛰어넘어 깊은 풍미를 가진 놀라운 황금빛 와인과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계 수명을 아득히 넘겨 완전히 산화되어 상해버리면 보기 싫은 칙칙한 갈색으로 변해 회복이 불가능해집니다.

반면 레드 와인은 젊고 싱싱할 때 선홍빛이나 맑은 루비색을 띠다가, 세월이 흘러 힘이 빠지고 숙성되면 그 쨍하던 채도가 스스르 빠지면서 바랜 벽돌색이나 연한 주황빛으로 옅어집니다. 30년 이상을 지독하게 버틴 명품 보르도 와인을 잔에 따르면 정말 빈티지한 느낌의 은은한 벽돌색이 나타나는데, 이때는 보관 환경에 따라 완전히 수명을 다해 수챗구멍에 버려야 하는 액체가 되어 있거나, 혹은 상상을 초월하는 깊이와 감동을 주는 예술품이 되어 있거나의 극단적인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3. 빈티지와 품종: 소설 같은 마케팅에 감춰진 거품 걷어내기

와이너리가 매년 내놓는 연도를 일컫는 '빈티지(Vintage)'는 와인 수집가들에게 종종 신앙처럼 군림하지만, 사실 우리가 평소에 마시는 평범한 일상 속 와인에서는 빈티지라는 요소에 크게 목을 맬 필요가 거의 없습니다.


강연장에서 한 남성이 무대 위 스크린의 프레젠테이션 내용을 가리키며 청중에게 설명하고 있는 모습

무조건 오래된 와인이 좋다는 통념에서 벗어나 품종과 빈티지의 본질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후가 매년 변덕스럽게 바뀌는 프랑스 보르도나 이탈리아 피에몬테 같은 구세계 유럽 지역에서는 확실히 어느 해에 포도가 자랐는지가 와인의 질을 완전히 쥐락펴락합니다. 최고의 기후를 만난 이른바 '슈퍼 빈티지(Super Vintage)' 와인은 부자들이 지하 셀러에 모두 쟁여두어 평범한 사람들이 구경하기도 힘들며, 섣부르게 덜 자란 영(Young)한 상태에서 땄다가는 숙성이 덜 되어 심각하게 떨떠름하고 맛없는 상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칠레, 아르헨티나, 호주 같은 신대륙 지역은 1년 내내 태양이 대단하게 쬐고 기후가 일정하기 때문에 해마다 품질의 편차가 크지 않습니다. 어차피 2년 안에 편하게 마실 데일리 와인이라면 빈티지의 미세한 점수 차이는 아무 의미가 없으므로 돈을 더 얹어가며 빈티지 타령을 하실 이유가 졸라 없습니다.

특정 포도 품종의 성격을 지나치게 규격화하고 스노비즘에 빠지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합니다. "까베르네 소비뇽은 무조건 묵직하다", "피노 누아는 마냥 여리여리하다"는 단정은 매우 납작한 편견입니다. 몇 년생 포도나무에서 수확했는지, 어떤 토양에서 키웠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역할을 하는 양조가(Winemaker)가 마지막 마스터링 단계에서 어떤 성향으로 디자인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이 창조되기 때문입니다. 품종의 이름을 외우고 뻐기는 지식보다는, 그 병 뒤에 숨어 있는 다양한 환경적 변수들의 다채로움을 즐기는 안목이 훨씬 중요합니다.

4. 입을 넘어 코로 마신다: 아로마(Aroma)와 부케(Bouquet)를 읽는 요령

인간의 혀가 본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아기자기한 맛은 매우 단순하지만, 코로 감지하는 와인의 향기는 수백 가지에 달합니다. 과학적으로 인간이 혀를 통해 느끼는 아는 맛은 단맛, 신맛, 쓴맛, 짠맛, 그리고 단백질에서 오는 감칠맛(Umai)까지 단 다섯 가지 영역뿐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떫은맛'조차 맛이 아니라 혀 점막이 강하게 오그라드는 촉감적 통증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와인을 마실 때 느끼는 풍부하고 기막힌 뉘앙스들은 다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바로 코가 감지하는 200여 가지의 놀라운 향기 덕분입니다. 이 후각적 경험을 크게 두 범주로 나눈 것이 바로 아로마와 부케의 개념입니다.

  • 아로마(Aroma - 땅 위의 향): 병을 갓 오픈했을 때 혹은 잔에 따르자마자 가장 먼저 직관적으로 튀어나오는 과일 본연의 향기입니다. 포도 품종 고유의 캐릭터와 포도밭 위를 맴돌던 기운이 주가 되며, 대개 레몬, 라임, 사과, 상큼한 베리류 등 싱그러운 과일 맛을 연상시킵니다.
  • 부케(Bouquet - 땅 밑의 향): 와인이 잔 속에서 공기와 열심히 부딪히며 서서히 산화 성숙을 겪을 때(혹은 잔을 돌리는 스월링 후에) 깊고 입체적으로 피어오르는 2차적인 숙성 향입니다. 포도를 키워낸 땅속 흙더미의 기운, 축축한 낙엽을 태우는 연기, 시가 담배, 묵직한 가죽, 심지어 고양이 오줌 냄새 같은 의외의 요소들이 결합하여 와인에 묵직한 설득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따라서 와인을 테이스팅할 때는 입에 머금어 굴리는 행동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고요히 눈을 감고 아로마에서 부케로 유려하게 흘러가는 향의 정교한 변화를 코로 가만히 뒤쫓아 보는 것이 훨씬 풍성한 식문화를 즐기는 올바른 사용법입니다.

5. 척도와 계급이 없는 세계: 마크 트웨인의 조언과 나만의 취향 찾기

19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마크 트웨인은 삶을 멋지게 즐기는 자유분방한 인물이었는데, 그는 예술과 미식의 본질에 대해 참으로 놀라운 명언을 남겼습니다.

"와인 맛이나 담배 맛, 시 혹은 산문 같은 예술 영역에는 절대적인 기준이나 척도가 없다. 오로지 각자의 고유한 취향이 존재할 뿐이다."

이 한 문장이야말로 우리가 와인을 마실 때 명심해야 할 최고의 철학입니다. 세상에는 명예로운 전문가들이 촘촘히 짜놓은 점수판과 계급도가 존재하지만, 그것이 개별 인간의 소중한 입맛을 일방적으로 짓누르는 폭력적인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한테 졸라 아무런 재미와 감동이 없는데 남들이 100점을 주었다고 억지로 고개를 끄덕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반대로 단돈 만 원짜리 편의점 화이트 와인이라 할지라도 내 입맛에 완벽한 상쾌함과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면 그것이 바로 나에게 가장 위대하고 완벽한 영혼의 빈티지가 되는 것입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거들먹거리는 전문가의 촌평에 주눅 들지 마십시오. 와인이라는 도구를 통해 나의 진짜 취향을 마주하고 스스로의 개성을 적극적으로 승인하는 태도야말로, 이 매혹적인 액체를 가장 존엄하고 우아하게 향유하는 마스터의 자세입니다.


FAQ

시중에서 산 가성비 화이트 와인을 아끼다 보니 3년이 지났습니다. 마셔도 되나요?

5만 원 이하의 캐주얼한 화이트 와인은 3년이 지나면 이미 맛의 정점을 지나 산화가 많이 진행되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마셔보고 찌르는 듯한 불쾌한 산미나 갈색 빛깔이 난다면 억지로 드시지 말고 요리용 식초로 활용하십시오.

신대륙 와인은 프랑스 구세계 와인에 비해 정말 빈티지의 차이가 없나요?

칠레, 캘리포니아, 호주 등은 연중 일조량이 고르고 맑은 날씨가 정형화되어 있어 수확 연도에 따른 원료의 질에 큰 편차가 없습니다. 오히려 수확 연도보다 어떤 브랜드와 생산 공정으로 완성되었는지가 훨씬 지배적입니다.

와인에서 가죽이나 담배 냄새 같은 특이한 향이 강하게 나는데, 상한 건가요?

상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장기 숙성을 견딘 잘 익은 와인의 '부케(Bouquet)'입니다. 과일 향인 아로마 외에 가죽, 시가, 흙냄새 같은 빈티지한 풍취들이야말로 고급 와인이 세월을 통해 엮어낸 최고 수준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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