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영 죽도에서 8m 대나무 낚싯대와 200m 낚싯줄을 활용해 1m급 대삼치를 낚는 47년 차 베테랑 어부의 전통 조법이 큰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 봉돌 무게를 달리해 수심층을 공략하고 배를 멈추지 않은 채 거품 유인책을 쓰는 메커니즘은 수십 년 숙련된 직관과 바다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됩니다.
- 어린 시절 가족을 부양하기 시작해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바다에서 숭고한 결실을 거두는 모습은 정직한 노동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통영 죽도 바다 위, 첨단 자동화 어선 대신 8m 길이의 대나무 낚싯대를 양옆으로 활짝 펼치고 1m가 넘는 대삼치를 낚아 올리는 베테랑 어부가 있습니다. 47년 동안 오직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바다를 지켜온 정병준 선장의 이야기인데요. 빠르게 변하는 현대 어업 기술 속에서 왜 그가 고된 손맛의 대나무 낚시를 고집하는지, 그 속에 숨겨진 특별한 메커니즘과 삶의 철학을 들여다봅니다.
8m 대나무와 200m 낚싯줄로 바다를 누비는 죽도의 마지막 어부
새벽 4시 반,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통영 죽도 항구를 출발한 고깃배는 2시간 반을 달려 욕지도 근해에 다다릅니다. 해가 떠오르면 배 위에 장착되어 있던 기다란 대나무 두 대가 마치 로봇이 변신하듯 바다 양옆으로 수평하게 펼쳐집니다.
이 대나무의 정체는 바로 길이 8m에 달하는 대왕 낚싯대입니다. 선조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전통 삼치잡이 방식으로, 정병준 선장 역시 아버지가 하던 방식을 물려받아 수십 년째 바다 위에서 펼쳐보고 있습니다. 죽도는 회유성 어종인 삼치가 지나는 길목이라 예로부터 삼치로 유명했지만, 고된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동료들이 모두 떠난 지금은 그만이 홀로 이 전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어종마다 서식하는 깊이가 다르기에 낚싯줄의 무게를 조절해 수심을 맞추는 것이 핵심이다.
사라져가는 전통 어법과 50년 숙련이 만드는 값진 결실
대나무 낚싯대 양쪽에 연결된 낚싯줄은 무려 6개나 됩니다. 줄 하나의 길이가 200m에 달하기 때문에, 이를 바다에 풀고 당기는 과정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체력과 기술이 요구됩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중량감 넘치는 줄을 다루는 일은 초보자에게 서 있는 것조차 힘겨운 작업입니다.
그러나 베테랑의 손길이 닿으면 기적 같은 진풍경이 펼쳐집니다. 삼치가 바늘을 물었을 때 낚싯줄에 달린 검은 고무줄이 늘어나는 길이는 단 1cm에 불과합니다. 거친 파도 속에서 이 미세한 1cm의 변화를 알아채는 것은 오직 50년 세월이 쌓아 올린 숙련된 직관 덕분입니다. 하루 조과로 90kg이 넘는 대삼치를 낚아 올리는 결실은 이러한 정성과 노련함이 만들어낸 값진 훈장입니다.
가짜 미끼가 물속에서 회전하며 만드는 거품을 물고기로 착각하게 만드는 전통 낚시의 원리입니다.
끊임없이 달리는 배와 거품으로 삼치를 속이는 과학적 메커니즘
대나무 삼치잡이에는 삼치의 생태를 정교하게 이용한 독특한 과학적 메커니즘이 들어있습니다. 삼치는 '바다의 속도광'이라 불릴 만큼 유영 속도가 빠르며, 움직이지 않는 먹이는 결코 돌아보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배는 삼치를 잡는 동안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립니다. 배가 이동하면서 낚싯줄 끝에 달린 플라스틱 가짜 미끼가 빙글빙글 돌며 바닷속에 거품을 발생시킵니다. 삼치는 이 거품을 도망치는 진짜 물고기로 착각해 덥석 물게 됩니다.
둘째, 각 낚싯줄마다 납 봉돌의 무게를 다르게 설정하여 수심층을 동시에 공략합니다. 가장 깊은 곳은 12kg, 중간층은 8kg, 상층은 5kg 등으로 무게를 다르게 매달아 낚싯바늘이 바닷속에서 각각 다른 높이에 위치하도록 만듭니다. 상층부터 하층까지 광범위하게 형성된 삼치떼를 효율적으로 낚아채는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반백 년 세월을 바다 위에서 보내며 가족을 지켜온 선장의 묵묵한 삶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한 가정의 가장에서 바다의 파수꾼으로, 삶을 견뎌낸 노동의 가치
정병준 선장이 처음 배를 탄 것은 17세라는 어린 나이였습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면서 밑으로 다섯 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던 그는 가난과 뱃멀미의 고통을 무릅쓰고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고 견뎌온 고단한 세월이었습니다.
최근 아내를 심정지로 돌연 떠나보내는 가슴 아픈 이별을 겪었을 때도,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해준 것은 변함없는 바다였습니다. 고된 육체 노동 속에서 잡념을 잊고 마음을 추스르며, 바다는 그에게 단순한 일터를 넘어 위로와 쉼터가 되어주었습니다. 직접 낚은 신선한 대삼치회를 마을 어르신들에게 넉넉히 대접하며 나누는 웃음 속에서 정직한 노동이 주는 행복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며 배워가는 과정 끝에 마침내 삼치 낚시에 성공하며 짜릿한 성취감을 맛본다.
바다의 순리에 순응하며 이어질 정성 어린 삶의 궤적
대나무 낚싯대는 아무 나무나 써서 만들 수 없습니다. 섬 산자락을 헤매며 3년 이상 자란 굵고 단단한 대나무를 직접 골라 베어내야 합니다. 가파른 산길을 헤치고 내려온 대나무를 바닷바람에 1년 이상 말려야만 파도와 거친 대삼치의 힘을 견디는 튼튼한 장비로 거듭납니다.
쉽고 빠른 편의성만을 추구하는 시대이지만,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 낚싯대를 만들고 바다의 순리에 순응하는 그의 삶은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바닷바람에 묵묵히 익어가는 대나무처럼, 정직하게 땀 흘리며 자기 자리를 지켜내는 베테랑 어부의 발자취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노동과 삶의 철학이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FAQ
왜 일반 낚싯대 대신 8m 길이의 대나무를 사용하나요?
대나무는 탄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배 양옆으로 길게 펼쳤을 때 여러 개의 200m 낚싯줄이 서로 엉키지 않도록 수평 범위를 넓혀주는 전통적인 대왕 낚싯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대나무 삼치잡이에서 배를 절대로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삼치는 바다의 속도광으로 불릴 만큼 빠르게 헤엄치며 멈춰있는 먹이는 공격하지 않습니다. 배가 계속 달려야 인조 미끼가 회전하며 거품을 만들어 내고, 삼치가 이를 진짜 먹잇감으로 착각해 물게 됩니다.
수심이 다른 삼치들을 동시에 공략하는 원리는 무엇인가요?
낚싯줄 마다 5kg부터 12kg까지 각기 다른 무게의 납 봉돌을 매달아 바닷속에서의 깊이를 다르게 조절합니다. 이를 통해 상층부터 하층까지 다양한 수심에 유영하는 삼치를 한 번에 공략할 수 있습니다.
대나무 낚싯대는 어떤 대나무로 만드나요?
3년 이상 자라 줄기가 굵고 튼튼한 대나무를 산에서 채취한 뒤, 가지를 정리하고 바닷바람에 1년 이상 말려 휘지 않고 견고한 낚싯대로 완성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