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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년간의 해양경찰 경력을 포기하고 40대 후반의 나이에 명예퇴직금과 전 재산을 던져 울릉도 황량한 도덕밭을 사들였습니다.
  • 설계도 한 장 없이 맨손으로 돌을 나르고 길을 내며 부도와 소송 같은 깊은 시련을 뚝심 하나로 이겨내 공원을 완공했습니다.
  • 개장 초기 단 1명이던 관람객이 하루 평균 500명에 달하게 되었으며, 자연에 문화를 심어 세계적인 친환경 섬의 초석을 다지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하고 전 재산과 정성을 쏟아부어 마침내 인생의 기적을 일궈낸 남자가 있습니다. 울릉도의 황량한 돌밭에서 시작해 무모해 보였던 도전을 극복하고, 오늘날 하루 500명이 찾는 낙원을 지어낸 전직 해양경찰 박경원 씨의 이야기입니다. 21년 넘게 몸담았던 안정적인 공직을 내려놓고 아무 연고도 없는 섬의 황무지 위에 세운 이 거대한 공원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적의 공간이 되었을까요? 푸른 바다를 정원 삼아 제2의 인생을 가꾸어가는 그의 구슬땀 속에 숨은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황량한 돌밭에서 시작되어 하루 500명의 발길을 잡은 '울릉도 낙원'의 기적

전체 규모가 무려 서울 잠실 야구장만 한 이 거대한 공원은 울릉도의 푸른 바다를 내 집 앞마당처럼 편안하게 안고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은은하게 울리는 맑은 종소리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화산암으로 둘러싸인 터널을 지나면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아름다운 나무와 꽃들이 그야말로 진풍경을 이룹니다. 하지만 이곳이 처음부터 이토록 아름다웠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제복을 입은 남성과 여성, 그리고 두 아들이 공사 중인 울릉도의 황량한 돌밭을 배경으로 서 있다.

안정적인 공직을 뒤로하고 아무 연고도 없는 섬의 돌밭 위에서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던 가족의 모습이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잡풀만 무성하고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는 척박한 땅에 불과했습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찾아온 관람객은 눈물나게도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그러나 4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곳은 하루 평균 300명에서 500명에 달하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울릉도 최대의 문화 공간이자 필수 여행 코스로 거듭났습니다. 오랜 헌신과 노력이 마침내 값진 결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40대 후반의 명예퇴직, 왜 그는 인생의 모든 것을 울릉도에 걸었을까요?

그는 왜 하필 아무 기반도 없는 울릉도 땅에 인생 후반전의 모든 승부수를 던졌을까요? 박경원 씨는 학창 시절 처음 만난 동해 바다에 반해 해군에 입대하고, 평생을 해양경찰로 살아온 바다 사랑이 지극한 남자였습니다. 그러다 2000년 그의 나이 마흔 살에 울릉도 파출소로 발령받아 들어오면서 이 섬의 천혜의 자연경관에 이끌려 결코 헤어 나오지 못하는 운명을 예감하게 되었습니다.

명예퇴직 당시 그의 나이는 마흔일곱이었습니다. 주위 동료들은 물론이고 가족들의 완강한 반대도 극심했습니다. 6개월만 더 버티면 경위 승진과 안정된 노후가 보장되어 있었지만, 그는 60세가 되어 은퇴하면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기력과 열정이 남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할 수 없다"라는 믿음 하나로, 그는 21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감하고 울릉도에 제2의 고향을 지었습니다.

설계도 한 장 없이 새벽부터 밤까지 쏟아부은 뚝심과 노동의 정성

박경원 씨는 조경이나 건축에 대해 대단한 지식도, 정밀한 설계도 한 장 없었습니다. 그가 기댈 수 있었던 곳은 오직 고향 산골에서 자라며 몸으로 익힌 자연에 대한 감각과, 하면 된다는 끈질긴 마음먹기뿐이었습니다. 산바람 사이로 홀로 길을 내고, 직접 계곡물에서 물을 끌어오고, 무거운 돌과 귀한 야생화를 하나하나 옮겨 심는 고단한 노동을 온전히 스스로 해냈습니다.


밀짚모자와 작업복을 착용한 중년 남성이 울퉁불퉁한 돌밭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으며, 옆에는 공사에 사용된 기계와 연장이 놓여 있다.

설계도 한 장 없이 척박한 땅을 일구기 위해 남몰래 흘린 수많은 땀방울이 지금의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정말이지 그 고생 과정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야심 차게 시작했던 공원의 건설사가 부도가 나서 공사가 전면 중단되기도 했고, 뜻하지 않은 민원과 자금 수급 문제로 무수한 소송과 좌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평생 든든하게 모았던 퇴직금마저 다 쏟아부어 사정이 완전히 바닥났을 때는 지자체와 금융기관을 땀 흘리며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온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돌아와 밤이면 계단을 기어 올라가야 할 지경이었지만, 그는 "나의 일을 감동을 담아 해볼 수 있어서 가장 행복했다"고 회상합니다.

완강했던 가족의 마음과 닫혀 있던 여행사들의 문을 열기까지

가족마저 그에게 돌아서 힘겨웠던 외로운 시기도 있었습니다. 한창 학비 구하기에 여념 없던 시절 두 아들의 생활을 걱정하며 울다 지쳐 우울증까지 앓았던 아내였습니다. 그러나 어두컴컴한 새벽까지 먼지를 뒤집어쓰고 미치광이 소리를 들어가며 일에 몰두하는 남편의 부단함은 결국 아내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이제 아내는 매표소를 지키는 든든한 파숫꾼이자, 스스로 야생화 공부를 밤낮없이 자처하여 설명해 내는 공원의 빼어난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어두운 밤 야외 평상에 앉아 음식을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네 사람의 모습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막막함과 가족 간의 대화가 담긴 저녁 시간입니다


사람만 오면 어떻게든 공원을 알리려 리플릿을 들고 선착장을 끊임없이 뛰어다니던 박경원 씨의 성실함에 굳게 잠겼던 여행사들의 문턱도 하나둘씩 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단단하게 짜인 기존 교통 경로 탓에 거들떠보지도 않던 관광버스들이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먼저 예약해 찾아옵니다. 더불어 그는 틈날 때마다 울릉도의 파출소 동료들을 찾아가 정을 더하고, 지역 주민들을 위해 서예 재능 기부를 펼치며 섬을 윤택하게 이끄는 든든한 일꾼으로 동고동락하고 있습니다.


울릉도의 해안 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하는 관점으로 촬영된 영상 화면으로, 왼쪽에는 높고 험준한 절벽이, 오른쪽에는 낮은 방호벽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울릉도의 험준한 지형을 따라 굽이진 도로를 달리며 아름다운 풍광을 지나갑니다.


친환경 울릉도에 문화를 심는 그의 다음 여정은 무엇일까요?

오늘도 박경원 씨는 정성을 쏟았으나 조금이라도 자연에 어울리지 않고 마음에 안 드는 나무가 보이면 주저 없이 다시 캐내어 옮기고 다듬기를 반복합니다. 대충 넘어가지 못하고 굳이 어려운 길을 사서 가느냐며 사람들은 욕심이라고 말하지만, 인위적인 방식을 버리고 오롯이 순응하는 쉼터를 짓고자 하는 철학이 굳건하기 때문입니다. 규격과 경쟁 속에서 피로해진 현대인들에게, 자연 속에서 편안함을 찾아가는 여유를 선물하고 싶다는 깊은 배려를 담았습니다.

순수한 열정과 기적 같은 노동이 자라난 이 너른 정원에, 박경원 씨는 앞으로도 고유한 정취를 담뿍 담아 울릉도를 국제적인 친환경 문화 예술의 섬으로 가꾸어 나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고단함을 기쁨으로 기꺼이 감수한 그의 인생 후반전처럼, 여러분의 마음속엔 지금 가슴 뛰게 뜨거워지는 나만의 꿈이 숨어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FAQ

공원을 짓는 동안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나요?

계획되었던 공사 건설사가 중도에 부도로 한 차례 쓰러져 작업이 멈추었으며, 민원 분쟁으로 법적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이에 더해 준비금 부족으로 정식 퇴직금마저 전액 바닥나 자금을 융통하러 공공기관과 은행을 두 발이 닳도록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박경원 씨가 경찰을 그만둔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 나이가 들고 60세가 되면 마음 한구석 깊숙이 그려왔던 나만의 뜻 깊고 가치 있는 일에 진정으로 투신하기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위 승진의 마지막 문턱을 앞두고 만 47세에 과감히 사표를 던졌습니다.

가족들의 협조는 어떻게 이끌어 냈나요?

처음 아내는 극심한 경제적 조바심과 낯선 울릉도의 삶으로 우울증마저 겪으며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한결같이 눈을 부비며 새벽부터 밤까지 몸에 굳은살을 박아가며 일하는 남편의 깊은 열정에 마음을 풀고, 스스로 매표 및 야생화 안내 공부를 거듭하여 최고의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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