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잦은 이사로 설움을 겪던 건축가 박진택 씨는 양평의 배산임수 명당에 오직 삼나무와 편백나무로만 이루어진 자신만의 목조주택을 직접 지었습니다.
- 에어컨과 가구는 물론 내벽의 문마저 모두 없앤 파격적인 설계를 통해, 무려 18개의 창문으로 지나가는 자연스러운 바람길을 완성했습니다.
- 불필요한 물질적 소유를 비워내는 대신 사계절의 볕과 바람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순응의 삶 속에서 진정한 주거의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산자락 아래로 굽이치는 남한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가을의 초입, 경기도 양평의 한 조용한 마을에는 사방이 온통 나무로 감싸인 범상치 않은 이층집이 서 있습니다. 이 집의 주인인 건축가 박진택 씨는 가구도 에어컨도 없는 텅 빈 목조주택을 스스로 지어 올렸는데요. 그가 제안하는 집의 가치는 비우고 허물어 자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물질적인 채움을 너머 볕과 바람을 삶의 동반자로 삼은 이곳은, 가쁜 숨을 몰아쉬는 도시인들에게 '진짜 살기 좋은 터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잦은 전세살이 끝에 마주한 내 손 안의 보금자리
건축 설계를 업으로 삼은 그가 직접 망치를 들고 집을 짓기 시작한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이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동네에서 살며 안정을 찾으려 할 때마다 찾아오는 "이제 집을 비워달라"던 집주인의 정중하지만 차가운 통보들은 깊은 설움으로 남았습니다. 내 삶을 편히 의지할 내 집이 결코 없다는 절망감 속에서, 그는 마침내 스스로 살 집을 마련하겠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전세금을 빼 들고 양평에 터를 잡은 진택 씨는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며 사계절의 기운을 몸으로 직접 관찰했습니다. 미련해 보일 수 있는 이 고된 구슬땀의 시간은 오히려 바람의 방향과 해의 높낮이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든든한 일기장이 되었습니다. 2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무 한 장, 못 하나에 그의 오랜 정성과 노동의 고집이 고스란히 내려앉았습니다.
18개의 창문과 문 없는 구조가 만든 바람길
이 집이 특별한 이유는 기존 아파트나 도심 주택이 가진 빽빽한 관행을 온전히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삼나무와 편백나무 향이 코끝에 먼저 안기는 내부로 들어서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텅 빈 거실이 펼쳐집니다. 물건을 보이지 않게 감추는 수납장은커녕 안방과 부엌, 심지어 이층의 욕실조차도 경계를 짓는 문이 정말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형태입니다.
벽으로 공간을 나누지 않고 개방감을 극대화한 구조 덕분에 집 안 곳곳으로 바람이 자연스레 드나듭니다.
동선이 하나로 시원하게 이어지는 이 독특한 구조는 자연스러운 순환을 유도합니다. 문을 없앤 자리는 곧 바람이 거침없이 흐르는 고속도로가 되며, 집 안 곳곳에 정성껏 배치된 창문들이 이를 보조합니다. 바람의 흐름에 맞춰 설계된 창문 개수는 무려 18개에 달해, 내부 구석구석을 언제나 보송보송하고 쾌적하게 유지해 줍니다.
에어컨 없이 35도를 가뿐히 이겨내는 힘
대다수의 현대인은 에어컨 없는 여름을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는 실내 온도가 35도까지 올라가는 한여름의 땡볕 속에서도 선풍기와 바람길만으로 충분히 살만하다고 담담히 고백합니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입지와 정남향 배치의 힘입니다.
직접 집을 짓는 과정에서 얻은 공기의 흐름에 대한 경험이 설계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남향은 여름에 고도가 높은 해의 열기를 지붕 위로 비껴가게 하고, 겨울에는 낮게 부서지는 햇살을 방 깊숙이 가득 채워줍니다. 계절의 온도를 거스르려 인위적인 문명의 기기에 기대는 조급함을 흘려보내고, 시시각각 변하는 사계절을 순순히 통과시키는 것. 불편함을 달갑게 감수해 나갈 때, 자연은 그늘과 바람이라는 정직한 선물을 선뜻 안겨주기 마련입니다.
꼬니와의 일상이 채우는 비움의 빈자리
사람 한 명과 그 흔한 서랍장조차 없던 빈집에 생기가 고이기 시작한 건 유기견 센터에서 만난 반려견 '꼬니'와 마주하면서부터입니다. 입양된 지 불과 석 달 만에 이 집의 가장 안락한 보금자리를 꿰찬 꼬니는 사방이 활짝 열린 전망 좋은 욕조 실내에서 유유자적하게 스파를 즐기며 견생 최고의 안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땅의 지형과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그 자리에 순하게 앉혀진 나무집은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품어냅니다.
나무 데크로 탁 뜨인 욕실 앞 테라스에서 소슬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연기를 뿜어 올리는 욕조에 몸을 누이는 순수함. 값비싼 가재도구가 있던 흔적의 그 자리를 자연주의적 여유와 가족에 대한 뭉클한 온기가 살뜰하게 매워 나갑니다. 타인이 정해놓은 욕망의 기준에서 벗어날 때, 인간의 삶은 그야말로 비약적인 단순함과 평화를 되찾는 법이군요.
당신만의 진정한 명당은 어디에 있나요?
이웃들이 이곳을 찾아와 "이것도 집이냐"며 농을 던질 때도 청년 건축가는 빙그레 웃어 보일 뿐이었습니다. 산과 강이 포근하게 주위를 안고, 아침에는 겨울 볕이 높은 천장 깊숙이 파고드는 집. 그가 내린 명당의 정의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노른자 땅도, 신비로운 기운이 흐르는 기지가 아니라 텅 빈 공간 속에서 바람이 즐겁게 드나들고 빛이 자유로이 넘실거리는 곳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가구 하나 없이 휑한 불편한 오두막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주거 실험은 소유의 피로에 지친 우리 사회에 신선한 울림을 줍니다. 과연 우리들의 마음속을 복잡하게 어지럽히는 가구들은 다 무엇을 위함일까요? 고단한 하루 끝에 마음 온전히 누일 수 있는 당신만의 단단한 울타리이자 보금자리는 어디에 숨어 있을지 가만히 그려보게 됩니다.
FAQ
문에 전혀 없으면 겨울철 난방에 큰 부작용이 있지 않나요?
정남향으로 깊고 길게 배치된 구조 덕분에 겨울철에는 낮아진 태양의 고도가 하루 종일 내부 깊숙한 벽면과 2층까지 직사광선을 쬐어줍니다. 목조 자체가 가진 훌륭한 단열 성능과 볕의 통과성이 극대화되어 생각보다 내부는 훈훈하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
직접 설계하고 지은 삼나무 외벽은 어떻게 관리하나요?
해당 주택의 외장은 내구성이 우수한 삼나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건축가는 외벽 나무들을 한 장씩 손 걸레질하거나 주기적으로 관리하여 외부 오염을 털어내고, 자연 상태의 나무가 계절을 겪으며 은색이나 짙은 고동색으로 아름답게 에이징되도록 관리의 수고를 감수하고 있습니다.
가구 없는 텅 빈 미니멀라이프를 처음 도전할 때 팁이 있다면?
사용하는 공간에 경계와 벽을 쳐서 공간별 쓰임새를 규격화하지 않는 것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빈 마루나 긴 목재 상판 하나만을 두고 잠자리, 식사공간, 서재의 역할을 유기적으로 바꾸면 수납가구의 필요성 자체를 대폭 덜어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