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발 1,100m 강릉 왕산면 안반데기와 바람부리 마을은 서늘한 기후 덕분에 선풍기, 모기, 논이 없는 '3무(無) 마을'로 불립니다.
- 50년 전 화전민들이 땀방울로 비탈진 돌밭을 일궈 세운 국내 최대의 고랭지 배추 단지는 가혹한 기후 조건이 선사한 단단한 생명력의 원천입니다.
- 가파른 경사지를 달래며 여전히 소쟁기질로 소통하고 공존하는 이들의 순박한 풍경은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느림과 상생의 가치를 전합니다.

해발 1,100미터 강릉 왕산면 안반데기에는 선풍기도, 날마다 기승을 부리는 모기도, 벼를 심을 논도 없습니다. 이른바 '3무(無) 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여름에도 아궁이에 불을 피울 만큼 서늘한 기후 속에서 국내 최대의 고랭지 채소밭을 일궈냈습니다. 척박한 자갈밭을 땀방울과 정성 하나로 대한민국 대표 고랭지 채소 단지로 만든 화전민들의 위대한 노동과, 기계를 마다하고 여전히 소쟁기질로 비탈밭을 개간하는 농부들의 서사는 편리함만을 좇아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묵직한 삶의 방향성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1. 지금 그곳에선: 한여름 밤에도 아궁이 불을 지피는 '3무(無)'의 기적
여름이면 도시는 더위와 모기로 에어컨과 선풍기 바람을 찾아 숨어들기 바쁘지요. 하지만 강릉 역 너머 높은 태백산맥 능선에 자리한 왕산면 고단리와 안반데기 마을은 그야말로 딴 세상이랍니다. 한여름에도 기온이 낮아 해가 지면 금세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덕분에 선풍기도 모기도 필요 없는 축복을 누리고 있지요. 심지어 밤이 되면 바닥의 눅눅함을 없애고 몸을 누이기 위해 아궁이에 땔감으로 뜨끈하게 불을 떼야 할 정도라니 정말 놀랍지 않나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경사가 워낙 심하고 험준해 벼농사를 지을 논은 구경조차 할 수 없지만, 이 불리함을 지혜로 극복해 냈습니다. 논이 없는 거친 자투리땅을 무대로 배추와 씨감자를 심기 시작한 것이죠. 물 한 모금 대기 어려웠던 비탈진 하늘 아래 첫 동네는 이제 매년 여름이면 초록빛 푸른 바다를 이루며 전국에서 상인들이 줄지어 찾는 고랭지 채소의 심장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해발 1,100미터의 서늘한 고랭지에서 정성껏 길러낸 배추가 탐스럽게 여물었습니다.
2.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 자연의 순리가 주는 가장 단단한 힘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기계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시대에, 이 오지 마을의 수확이 왜 이토록 특별하게 다가올까요? 해발 1,100m라는 혹독한 일교차 속에서 자라는 이곳 고랭지 배추는 일조량은 풍부하되 생육 기간이 길어 몸집이 아주 단단하고 밀도가 높습니다. 물기가 적고 꽉 차 있어 이곳 배추로 김장을 담그면 무려 3년이 지나도 아삭아삭하니 결코 무르지 않는대요.
쉽고 빠르게 재배하여 얻어진 연약한 채소들과는 차원이 다른 건강함입니다. 일교차가 큰 가혹한 조건에 맞서 흙속의 영양분을 묵묵히 빨아들인 식물이 내면에 얼마나 단단한 결실을 축적하는지 보여주지요. 자연의 섭리를 조급하게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춥고 혹독한 기후를 최고의 강점으로 승화시킨 이들의 지혜는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선물합니다.
해발 1,100미터가 넘는 고지대에서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자라나는 고랭지 채소밭은 이 마을의 보물입니다.
3. 척박한 땅을 기적으로 바꾼 동력: 거친 돌밭에 새겨진 화전민의 구슬땀
오늘날 푸르게 펼쳐진 아름다운 초록의 안반데기는 결코 거저 얻어진 풍경이 아닙니다. 약 50여 년 전,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화전민들이 이 척박한 산꼭대기로 들어와 돌과 잡나무 뿌리가 가득한 비탈밭을 손목에 핏줄이 서도록 일일이 일구어냈습니다. 경사가 너무 가팔라 밭을 갈던 소와 사람이 함께 굴러 떨어지는 눈물겨운 사고가 다반사였을 정도였지요.
그렇다면 이 모진 세월을 버티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자식을 건사하고 가정을 지키려는 부모의 처절한 정성과 우직함이었습니다. 50년 전 이곳에 들어와 삼형제를 키워냈다는 바람부리 마을의 터줏대감 박흥동 할아버지는 날마다 밭으로 걸음을 재촉합니다. 매년 배추밭을 매고 또 매면서 풀 한 포기를 다듬어 온 할아버지의 고단한 손길 속에는 단지 생계를 넘어선 흙을 사랑하고 보듬는 거룩한 마음가짐이 가득 배어 있습니다.
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을 다스리기 위해 매일 아궁이에 불을 피우며 온기를 지키는 산골 마을의 일상입니다.
4. 기계가 채우지 못하는 빈자리: 우직한 소쟁기질과 지혜로운 공존의 방식
이곳만의 아주 독특하고 정겨운 진풍경이 있습니다. 온 나라가 첨단 농기계로 밭을 가느라 요란하지만, 가파른 이 비탈에서는 여전히 소가 쟁기를 메고 귀한 일손을 돕습니다. 기계의 강한 칼날은 비탈진 흙을 콕 찌르면 땅 속에서 돌을 건드려 부패하기 쉽지만, 소가 끄는 부드러운 쟁기는 흙 깊숙한 결을 하나하나 세심하고 부드럽게 고르며 소중한 흙을 숨 쉬게 만들어 줍니다.
평생 소쟁기질을 거둔 박만석 할아버지는 밭일을 무사히 마치면 고생한 소에게 옥수수대를 곱게 말려 정성스레 여물을 준비합니다. 이 3무 마을에는 논이 없어 사 오려면 큰 비용이 드는 볏짚 대신, 여름철 농사의 부산물인 맛있는 옥수수대로 정겨운 가을철 특식을 만들어 주는 것이죠. 눈짓 몸짓 하나로 소통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맞추는 노인과 일소의 모습에서는 단순한 노동을 넘어선 따뜻한 동반자적 온기가 피어오릅니다.
소의 먹이로 쓸 옥수수 대를 직접 챙기며 산골 마을의 소박한 일상을 이어갑니다.
5. 앞으로 우리가 눈여겨볼 삶의 이정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느림의 미학
자, 이제 이 고요한 산골 마을의 하루가 저물어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사람들은 도시보다 훨씬 일찍 찾아오는 어둠 앞에서 서둘러 밥상을 차리지요. 대단한 진수성찬은 없습니다. 마당에서 갓 수확해 온 아삭하고 달큼한 아기 배추 한 폭에 노릇하게 볶아 낸 돼지고기 한 접시, 그리고 작년에 정성껏 담가 깊은 맛이 그대로 살아 있는 묵은지면 족합니다. 일하는 틈틈이 들판에서 따온 볼품없고 시큼한 영생의 선물 '돌배'를 보물처럼 여기며 웃음꽃을 피우지요.
지독히 불리해 보이던 높은 지대의 서늘함과 외로움을 온전히 껴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우리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문명의 이기와 복잡한 편리함 없이도 매일 밤 모기 한 마리 없는 상쾌한 밤을 맞이하며 든든한 꿀맛 같은 저녁을 나누는 모습은 정말 행복해 보이지 않나요? 당신에게도 혹시 차가운 바람을 품고 묵묵히 나만의 속도를 지켜낼 안반데기 같은 삶의 터전이 가슴속에 준비되어 있을까요?
한여름 밤에도 선풍기나 모기장 없이 쾌적한 산골 마을에서 부부가 함께 오붓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FAQ
강릉 안반데기 배추가 무르지 않고 그렇게 오래 유지가 잘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해발 1,100m 고지대는 극심한 일교차를 지녀 생육 기간이 매우 깁니다. 자연이 만든 혹독한 기온 차를 견디며 자란 이곳 고랭지 배추는 세포막이 매우 고르고 수분이 적어 몸집이 아주 단단합니다. 따라서 배추를 사용해 김장김치를 담그면 3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도 김치가 물러지지 않고 본연의 맛있는 아삭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현대 농기계 대신 산골 높은 기울기의 비탈밭에서 여전히 소를 이용해 쟁기질하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가파른 경사지에 돌덩이가 가득한 산골 밭은 부피가 크고 무거운 현대식 기계장비가 들어오기 어렵습니다. 또한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농기계의 단단한 칼날은 흙과 돌을 잘못 칠 경우 땅속 농작물까지 뿌리 채 망가뜨릴 우려가 있지만, 소가 이끄는 정교한 쟁기질은 땅의 결을 조심스럽게 돌보며 자투리 부분까지 섬세하게 개간할 수 있어 여전히 훌륭한 대안이 됩니다.
3무(無) 마을에서 유독 소의 은혜로운 주식 사료로 귀한 볏짚 대신 옥수수대를 말려 여물로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곳은 비탈진 언덕배기 위를 개간해 만든 산골 오지 마을로, 밭 이외에는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논이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자연히 여물의 전통 재료인 짚을 구하기가 무척 어렵고, 타지에서 들여오려면 막대한 부대비용이 소모됩니다. 따라서 농민들은 배추 농사의 이모작 전 단계나 밭두렁에 심은 옥수수 수확 후 버려지는 줄기를 바짝 건조해 달짝지근한 여물로 자급자족하며 지혜롭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