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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빠른 신축과 아파트 중심의 주거 환경 속에서, 55년 된 낡은 연희동 주택을 부수지 않고 정교하게 살려낸 젊은 건축가 정이삭 소장의 복원 프로젝트가 큰 반향을 부르고 있습니다.
  • 이끼가 잔뜩 낀 파격적 구조의 석고 기와처럼 기성 자재가 흉내 낼 수 없는 세월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살리고, 단열 성능과 공간을 재설계하여 고풍스러운 낭만과 주거 실용성을 완벽하게 양립시켰습니다.
  • 집은 건축가의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함께 흐른 시간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성이 축적되어 완성된다는 귀중한 철학을 제시하며 한국 현대 건축의 지속 가능한 이정표를 보여줍니다.

시종일관 높고 번듯한 공동주택만 가파르게 솟아오르는 요즘, 세월의 켜가 묻은 옛 연희동 골목 언덕자락의 낡은 보금자리를 고치고 가꾸며 시간의 깊이를 복원해 준 건축가가 있습니다. 한 해에 무려 7개의 건축상을 휩쓴 정이삭 건축가의 신혼집 이야기인데요. 다 허물고 다시 지어내기 바쁜 이 조급한 시대에, 55년의 더께가 앉은 기와 구옥을 고쳐 머무는 삶이 왜 우리에게 이토록 깊은 풍경과 영감을 선사하는지 그 가치를 들여다봅니다.

다 허물고 새로 짓는 시대, 55년 전 집을 문화재처럼 복원하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오래된 단독주택들이 옹기종기 어우러진 골목 높은 언덕길에 시선을 사로잡는 보금자리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1971년에 지어져 무려 55년의 세월을 묵묵하게 품고 버텨온 가파른 지붕의 붉은 벽돌집이 그 주인공입니다.


단독주택들이 밀집한 주택가 골목을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으로, 붉은 벽돌집과 다양한 형태의 지붕들이 어우러진 주거 밀집 지역의 모습입니다.

수십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연희동 골목 언덕자락은 아파트와 구옥이 공존하며 독특한 마을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정이삭 소장은 이 주택을 허물고 매끈한 새 빌딩을 세우는 대신, 과거의 풍경과 구조를 고스란히 복원하는 긴 호흡을 택했습니다. 북사면 언덕 아래 차분하게 드리운 그늘 덕분에 기와 위로 온통 퍼렇게 이끼가 내려앉은 풍경조차 자연이 그려낸 한 폭의 몽환적인 낭만이라 여긴 것이죠. 파괴가 일상이 된 도심에서 옛 고유의 재료와 흔적이 남아 있는 겉면은 든든하게 받쳐두고, 내부 구조를 치밀하게 조율하여 삶에 필요한 안락을 새롭게 채웠습니다.

왜 지금 우리는 이 '낡고 불편한' 집의 리모델링에 주목할까요?

편리함과 실용성만이 기준이 되는 세상에서 낡고 손이 많이 가는 집에 머문다는 것은 다소 번거롭고 어리석은 선택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현대 건축은 "모든 자취를 신속하게 부수고 아파트를 채울 것인가, 아니면 이곳에 깃든 우리의 삶을 재생할 것인가"라는 역사적인 시험대와 갈림길 위에 놓여 있습니다.


겨울 외투를 입은 두 남성이 연희동 구옥 앞마당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건축상 7관왕을 차지한 정이삭 건축가가 55년의 세월이 깃든 자신의 신혼집으로 패널들을 맞이하고 있다.


어린 시절 뛰놀던 아름다운 골목길마저 정비 사업이라는 명목하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상실의 시대에, 정이삭 소장은 이 낡은 적벽돌 집을 통해 '진짜 동네'의 고유한 얼굴을 제안합니다. 과거의 묵은 고단함조차 차분하게 흘려보내고, 마당을 타고 넘어오는 이웃들의 소소한 찌개 냄새를 감각할 수 있는 아날로그적 온기는 새로 지어진 인위적인 콘크리트 단지가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여유의 영역입니다.

시간이 빚어낸 밀도와 감동, 인위적으로 재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

신축 설계와 작업보다 서너 배 이상의 인내와 노동을 수반하는 복원 방식을 굳이 고집한 비결이 무엇일까요? 답은 간명합니다. 아무리 오랜 역사를 면밀하게 교정하고 연출하려 한들,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서서히 나무와 벽돌에 아로새긴 그윽한 감동은 결코 영화 세트장처럼 뚝딱 지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고고학자가 유적지 밑바닥의 흙더미를 조심스레 걷어내는 것처럼, 장판과 케케묵은 옛 장식들을 마주하다 마주한 1978년의 신문 서적들과 옛 서술들은 갇혀 있던 과거의 문을 환히 열어주는 듯한 놀라움과 울림을 선사합니다. 정 소장이 수집해 모은 1988년 서울올림픽 포스터, 골동 레코드 카세트 등 다채롭고 소박한 유물들은 허물어진 옛 세계에 보내는 그만의 정중하며 애틋한 사색입니다.

과거의 구조를 존중하면서 현대의 온기를 불어넣는 세심한 디테일

시간을 보존하는 것과 일상이 불만족 속에 머무는 것은 동의어가 결코 아닙니다. 55년 전의 독특한 구조적 특징인 외벽과 개성 넘치는 지붕 실루엣은 적극 복원했지만 내부만큼은 현대의 든든한 단열 기술로 완전히 고쳐냈습니다. 과거에는 지붕 속 빈 공간이 열을 막아주는 차단층 역할을 해야 했기에 천장이 낮고 답답했지만, 이제는 얇고 강력해진 고성능 단열 보강 덕에 나무 골조를 시원스럽게 노출한 개방형 천장 내부를 마음껏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실내에서 검은색 옷을 입은 남녀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밝은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으며, 뒤로 큰 통창과 벽면 미술 작품이 보입니다.

과거의 공간이 지닌 정서와 현대적인 감각이 어우러져 갤러리처럼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집 안 곳곳에 자연스러운 숨결을 위해 칠칠치 않고 뽀송뽀송하게 켜낸 제재소 천장재, 한옥 기둥과 보의 짜임에서 착안해 직접 디자인한 수제 테이블은 디자이너로서 집을 다루는 집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실내에 놓인 목재 구조가 돋보이는 식탁과 옅은 베이지색 의자 세트, 뒤편으로 전면 통창과 정원이 보입니다.

기둥과 보의 구조를 살려 건축가의 철학을 담아낸 맞춤 가구는 집 안의 작은 건축물과 같습니다.


더욱이나 상량문에 집주인의 바람 외에도 현장에서 함께 땀 흘리고 벽돌을 얹은 소박한 말단 작업자들의 서명까지 영화 엔딩 크레딧처럼 소중히 기입해 둔 구슬땀의 흔적은, 먼 훗날 이 집에 머물 이들에게 세월보다 깊은 온기를 가장 먼저 전달할 것입니다.

"집은 사는 이가 채워가는 것", 앞으로 채워질 부부의 풍경을 향하여

따사롭고 은빛 찬란하게 부서지는 빛 내림을 받으며 부부가 함께 마당의 화분을 돌보고 고요하게 앉아 있는 시간 속에서, 집은 영혼을 회복시키는 안식의 그릇으로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실내에서 세 사람이 바닥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며, 옆에는 다양한 골동품과 수집품이 진열된 선반이 놓여 있다.

부부가 오랜 시간 수집한 작은 추억들이 집 안 곳곳에 쌓여 새로운 삶의 풍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집은 건축가가 멋지게 그려 상장하듯 건네는 것이 아니라, 살고 있는 가족들이 긴 계절 동안 사랑하고 쓸어가며 마침내 완성하는 것"이라는 정이삭 소장의 나지막한 철학은 바쁜 생을 사느라 영혼을 뉘어둘 온전한 기둥 하나 찾지 못한 우리의 가슴에도 작지만 묵직한 물음을 조용히 남겨 놓습니다. 여러분의 집은, 오랜 하루 동안 어떤 고유한 사람의 냄새와 수고를 소중하게 축적하고 계시나요?


FAQ

정이삭 건축가가 굳이 낡고 다 허물어지는 구옥 리모델링을 선택한 핵심 이유는 무엇입니까?

수십 년의 느린 시간 속에서 서서히 빚어진 집의 역사는 단순한 현대 기술이나 돈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골목의 옛 자취와 건축 재질을 유지함으로써 대체될 수 없는 시간의 소중한 밀도를 되살리고자 했습니다.

내부 구조가 협소하고 고단한 옛 단독주택의 추위와 불편함은 어떻게 보강했나요?

지붕과 외벽의 외형적 장점은 원형 그대로 살려내되, 현대적인 단열 및 구법 설계를 통해 내부 지붕 공간을 높고 시원하게 탈바꿈시켜 탁 트인 개방감과 높은 에너지 효율을 모두 품어낼 수 있도록 내장재를 철저하게 전면 고쳐 조율했습니다.

정이삭 소장의 집 내부에 적힌 상량 크레딧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나요?

특정 소수의 대목수 이름만 적던 한국의 옛 보수 전통과 달리, 현장에서 헌신하며 먼지 묻고 발로 뛴 말단 잡부와 정비 조력자까지 모든 현장 노동자들의 성명을 영화 제작진 리스트처럼 고스란히 담아 보이지 않는 손들의 영광스러운 노고를 평생 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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