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의 빚 보증으로 10억 원의 빚을 지고 벼랑 끝에 몰렸던 가맹점주가 극적인 고객 감동 서비스로 전국 1위 매장을 일궈냈습니다.
- 이후 어려워진 프랜차이즈 본사를 직접 인수해 연 매출 400억 원 규모로 키워냈으며, 가장 먼저 전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 과거 자신에게 건물을 넘겨준 원래 건물주에 대한 감사함으로 대전 최고 상권의 임대료를 37년째 동결하며 따뜻한 상생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가다 어느 날 갑자기 연 매출 400억 원의 프랜차이즈 기업을 이끌게 된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요? 심지어 자신이 세 들어 살던 대전 최고의 금싸라기 땅 건물을 매입하고, 무려 37년째 임대료를 단 한 번도 올리지 않은 건물주라면 말입니다. 빚더미에 앉았던 가맹점주에서 족발 프랜차이즈 본사 회장님이 된 신신자 대표의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보다 더 비현실적입니다. 온갖 풍파 속에서도 결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정을 잃지 않았던 그녀의 특별한 인생 여정을 따라가 봅니다.
가맹점주에서 본사 회장님으로, 10배의 성장을 이끌다
IMF 외환위기 이후 많은 기업이 흔들리던 2001년, 신신자 대표는 자신이 가맹점주로 있던 족발 프랜차이즈 본사를 직접 인수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당시 본사의 매출은 약 38억 원 남짓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경영을 맡은 이후, 회사는 그야말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 현재 약 10배에 달하는 연 매출 400억 원 규모의 튼튼한 기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과거 경양식 레스토랑에서 느꼈던 특별한 감성과 추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성장의 비결은 뭘까요? 그것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것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 있었습니다. 창업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사를 위기에서 건져내고 전국구 브랜드로 키워낸 배경에는, 벼랑 끝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체득한 그녀만의 생존 철학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37년째 임대료 동결, 그 이면에 숨겨진 눈물겨운 사연
신 대표는 현재 대전에서 가장 번화한 은행동, 그것도 전국적으로 유명한 빵집 바로 옆에 위치한 건물의 소유주입니다. 놀라운 점은 이 건물의 임대료를 37년째 단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요?
과거 29세의 나이에 생계를 위해 이 건물에 세를 얻어 경양식집을 차렸던 그녀는, 낡은 건물을 자비로 깔끔하게 리모델링했습니다. 이에 감동한 원래 건물주 할머니는 임대료를 받지 않는 통 큰 배려를 베풀었고, 훗날 자신이 암에 걸리자 재산 분쟁을 우려해 신 대표에게 시세보다 저렴한 17억 5천만 원에 건물을 넘겨주었습니다. 신 대표는 당시 자신을 믿고 배려해 준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에 대한 보답으로, 그리고 자신이 빚더미에 앉았을 때 묵묵히 기다려준 세입자들에 대한 감사함으로 지금까지도 임대료를 동결하고 있습니다.
10억의 빚과 벼랑 끝에서 찾아낸 '고객 감동'의 비밀
성승장구하던 그녀의 삶에 항상 햇살만 비췄던 것은 아닙니다. 남편의 빚 보증 문제로 하루아침에 10억 원이라는 막대한 빚을 지고 모든 재산이 압류당하는 끔찍한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알량한 체면 때문에 대전을 떠나 부산으로 내려간 그녀는 생계를 위해 족발 가맹점을 열었지만, IMF 한파 속에서 장사는 절망적이었습니다.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세심한 포장과 정성 어린 문구는 작은 차이로 큰 성과를 만드는 핵심 비결입니다.
하지만 동백섬에서 만난 한 할머니의 뼈있는 위로를 듣고 다시 일어선 그녀는, 다른 식당에서는 상상도 못 할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비즈니스석 승객처럼 차갑고 따뜻한 물수건을 제공하고, 노동 현장에서 온 손님들의 흙 묻은 신발을 직접 구두약으로 닦아주었습니다. 상추 한 박스에 10만 원이 넘던 시절에도 넉넉히 상추를 내어주고, 족발이 부족해 보이면 몇 점씩 더 얹어주었습니다. 진심 어린 수고와 정성이 담긴 이 서비스는 고객들의 마음을 완벽히 사로잡았고, 결국 그 매장을 전국 1위의 가맹점으로 만들어냈습니다.
가장 먼저 한 일, 전 직원 정규직 전환
수많은 고생 끝에 빚을 청산하고 본사까지 인수하게 된 그녀가 회장으로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전 직원의 정규직 전환이었습니다. 당시 회사의 불안정한 상황 때문에 대부분의 직원이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주저 없이 모두를 정규직으로 바꿨습니다.
직원들의 당연한 권리를 존중하며 전원 정규직 전환이라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단기적인 비용 절감이나 조급함을 버리고 사람을 먼저 챙긴 이 결정은 놀라운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정규직 전환에 감동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떡과 음료를 돌리며 자축했고, 회사에 대한 감사함으로 이전보다 두 배 더 열심히 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직원을 향한 진심이 곧 회사의 성장 동력이 된다는 것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셈입니다.
은퇴한 직원까지 품는 반값 아파트의 꿈
자연의 순리처럼, 땀 흘려 얻은 결실을 기꺼이 주변과 나누는 그녀의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신 대표의 마지막 소망은 회사를 위해 헌신한 직원들에게 '반값 아파트'를 지어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이미 부지를 꾸준히 매입하고 있답니다.
특히 그녀의 마음 한편에는 회사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고 정년퇴직한 40여 명의 초기 직원들에 대한 짙은 미안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명절마다 선물을 보내는 것을 넘어, 회사를 키워낸 그들의 노후까지 책임지고 싶다는 그녀의 따뜻한 철학. 쉽고 빠르게만 가려는 요즘 세상에서, 사람을 향한 묵묵한 헌신과 여유가 얼마나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내는지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
FAQ
신신자 대표는 어떻게 가맹점주에서 프랜차이즈 본사 회장이 되었나요?
IMF 외환위기 이후 족발 프랜차이즈 본사가 경영난을 겪자, 부산에서 전국 1위 가맹점을 운영하며 자금을 회복한 신신자 대표가 2001년 본사를 직접 인수하여 회장이 되었습니다.
대전 은행동 건물의 임대료를 37년째 올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과거 자신이 세입자였을 때 원래 건물주가 베풀어준 무상 임대와 저렴한 매각에 대한 깊은 감사함, 그리고 자신이 10억 원의 빚으로 압류를 당했을 때 자신을 믿고 기다려준 세입자들에 대한 보답의 의미로 임대료를 동결하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족발 가맹점을 할 때 손님들에게 어떤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했나요?
비행기 비즈니스석처럼 온열/냉 물수건을 제공하고, 노동 현장에서 온 손님들의 더러워진 신발을 직접 구두약으로 닦아주었습니다. 또한 채소값이 폭등했을 때도 상추를 넉넉히 주고 족발을 덤으로 더 얹어주는 등 고객 감동을 실천했습니다.
본사를 인수한 직후 가장 먼저 실행한 경영 조치는 무엇인가요?
당시 불안정한 고용 상태였던 전 직원을 즉시 정규직으로 전환했습니다. 이 결단에 감동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더 열심히 일하게 되면서 회사가 크게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