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목동 안양천 신정잠수교 아래에는 천적을 피하기 위해 사람을 방패 삼아 모여든 거대한 물고기 떼가 진풍경을 이룹니다.
- 이에 맞서 가마우지, 쇠백로, 물총새 등 야생 조류들 역시 고도의 잠수 능력과 은폐 기술을 발휘하며 도심 생태계에 적응해 치열한 사냥을 펼치고 있습니다.
- 자연이 점차 인간과의 거리를 좁히며 우리 일상 속으로 다가온 만큼, 억지로 다가가기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묵묵히 관찰하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시간을 내서 멀리 떠나야만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대자연. 하지만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곳, 우리가 매일 오가는 복잡한 도시 한복판에도 그야말로 치열한 야생이 숨 쉬고 있습니다. 서울 목동 안양천의 신정잠수교 아래, 거대한 물고기 떼와 이를 노리는 새들의 숨 막히는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죠. 쉴 새 없이 차가 달리고 사람들이 오가는 이 도심의 다리 밑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도심 한복판에 펼쳐진 거대한 '베이트 볼'
인근 주민들이 매일 오가는 신정잠수교 아래를 들여다보면 다른 곳에선 결코 보기 힘든 장관이 펼쳐집니다. 가숭어 새끼를 비롯해 붕어, 잉어 등 다양한 민물 어종이 뒤섞여 거대한 무리를 이루고 있죠. 이를 생태학적 용어로는 베이트 볼(Bait ball)이라고 부릅니다.
작은 물고기들이 떼로 뭉쳐 포식자에게 마치 하나의 거대한 물고기처럼 보이게 만드는 든든한 생존 전략입니다. 그런데 안양천의 넓고 넓은 하천 중에서 유독 이 다리 밑에만 물고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공 구조물인 다리 덕분에 도심 속 야생 생태계를 더욱 가까이서 관찰하고 기록할 수 있습니다.
인간을 '방패'로 삼은 물고기들의 영리한 선택
그 비밀은 바로 다름 아닌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신정잠수교 바로 옆에는 대형 인라인스케이트장이 있고 산책로와 연결되어 있어 평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갑니다. 물고기를 구경하러 발걸음을 멈추는 이들도 적지 않죠.
흥미롭게도 이렇게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물고기들에게는 최고의 방어막이 됩니다. 겁 많고 조심성 많은 새들은 사람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이 북적이는 다리 근처로 쉽게 접근하지 못합니다. 즉, 물고기들은 포식자인 새들을 피하기 위해 인간을 일종의 안전한 '방패'로 삼은 셈입니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면서도 스스로 살길을 찾아낸 영리한 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배고픔이 두려움을 이길 때, 진화하는 사냥꾼들
하지만 가끔은 배고픔이 무서움을 이길 때가 있습니다. 물고기들의 철통같은 방어를 뚫고 사냥에 나서는 도심 속 새들은 그야말로 고도의 전략가들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부리만 쪼아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신체 특성을 극한으로 활용해 사냥 기술을 펼칩니다.
잠수 실력이 뛰어난 가마우지는 도심 하천의 물고기 떼를 효율적으로 사냥하며 생태계의 포식자 역할을 합니다.
욕심쟁이이자 대식가로 불리는 가마우지는 180도까지 벌어지는 세 개의 물갈퀴를 이용해 강력한 추진력을 얻습니다. 물속에서 원형으로 물고기 떼를 포위해 흩어지지 않게 몬 뒤, 어른 팔뚝만 한 잉어나 미끄러운 메기까지 낚아채는 집요한 추격전을 벌입니다.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닮은 판족을 엉덩이 쪽에 달고 있는 논병아리는 무리를 흩뜨려 낙오된 물고기를 노리고, 쇠백로는 눈에 띄는 노란 발로 물속을 휘저어 수풀에 숨은 물고기가 놀라 튀어나오게 만듭니다. 빛의 난반사를 막기 위해 고개를 기울인 채 물방울 하나 튀기지 않고 작살처럼 부리를 꽂아 넣는 중대백로의 사냥은 한 편의 예술에 가깝습니다.
물속 사냥의 달인으로 불리는 물총새는 뛰어난 신체 구조를 활용해 먹잇감을 노립니다.
심지어 시골에서도 보기 귀하다는 여름 철새 물총새마저 목동 한복판에 자리 잡았습니다. 물총새의 부리는 물의 저항을 최소화하도록 진화했는데, 일본 신칸센의 설계 모델이 되었을 정도로 완벽한 공기 역학을 자랑합니다. 이들은 갈대숲에 몸을 숨긴 채, 물고기보다 더 긴 인내심으로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립니다.
우리 곁으로 다가온 자연, 어떻게 맞이할까요?
이처럼 하천 환경이 회복되면서 새들은 점차 사람들과 동화되고 있습니다. 과거 시골에서 새들이 인간과 100m의 안전거리를 두었다면, 신정잠수교 주변에서는 그 거리가 30~50m로 부쩍 가까워졌습니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늘 자연이 저 멀리 산골짜기에만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자연은 우리가 매일 걷는 산책로 옆에 묵묵히 숨 쉬고 있었던 겁니다.
도심 속 자연을 관찰하며 동물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다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곳의 새들이 사람에게 곁을 내어주는 건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형성된 든든한 신뢰 덕분입니다. 신기하다는 이유로 자꾸 가까이 다가가 새를 날려 보내면, 어렵게 좁혀진 인간과 자연 사이의 거리는 다시 멀어지고 말 것입니다.
바쁘고 복잡한 빌딩 숲속의 삶.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다리 아래에서 펼쳐지는 치열하고도 경이로운 생태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요? 자연은 그곳에서 숨죽인 채, 우리가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알아봐 줄 바로 그때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FAQ
왜 유독 신정잠수교 다리 밑에만 물고기 떼가 모여 있나요?
다리 위와 주변 산책로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때문입니다. 경계심이 많은 새들이 사람을 피해 다가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물고기들이 사람을 일종의 '방패' 삼아 안전한 다리 밑으로 모여드는 영리한 생존 전략입니다.
도심 하천의 새들은 어떻게 물고기를 사냥하나요?
새마다 고유한 전략이 있습니다. 가마우지는 180도 벌어지는 물갈퀴로 강력한 잠수 추격전을 벌이고, 쇠백로는 눈에 띄는 노란 발로 물고기를 놀래켜 튀어나오게 합니다. 물총새는 공기 저항을 최소화한 부리를 이용해 물방울조차 튀기지 않고 소리 없이 뛰어듭니다.
도시에서 야생 조류를 관찰할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요?
새들이 사람에게 곁을 내어준 것은 하천 생태계가 안정되며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형성된 결과입니다. 호기심에 억지로 가까이 다가가 새를 쫓아내면 다시 깊은 거리감이 생길 수 있으므로, 30~50m 정도의 적당한 거리를 두고 조용히 지켜보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