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잉생산의 시대에서 쓰레기는 절대적인 무가치 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질서가 시스템 밖으로 배제시켜 형태가 불분명해진 엑스폼일 뿐입니다.
- 현대 미술가들은 무에서 유를 조형하기보다 소외되었던 기존 기성품들에 새로운 관계 네트워크를 부여함으로써 세계의 가변성을 시각화합니다.
- 오늘날 가치는 무분별한 쇄신과 신규 생산이 아닌, 흩어진 점과 점을 잇는 맥락화와 네트워크 구축 역량에서 발생합니다.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 옆에 위치한 아름다운 갈대밭, 하늘공원이 원래는 거대한 쓰레기 매립지인 난지도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평소 우리는 무엇이 유용하고 무엇이 쓰레기인지 명확히 구별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경계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미술 비평가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는 그의 저서 『엑스폼(Exform)』을 통해, 쓰레기는 본질적으로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회적 시스템에서 배제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과잉 생산과 정보의 대범람 속에서, 현대의 진정한 창조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지만 쓰레기로 버려진 것들에 새로운 맥락과 연결을 부여하는 행위입니다.
첫 번째 이유: 쓰레기의 본질은 절대적인 '쓸모없음'이 아니라 사회적 '배제'에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물이 제 기능을 다하면 자연스럽게 쓰레기가 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쓰레기의 규정은 자연 법칙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적으로 학습한 합의와 패턴에 기반합니다. 니콜라 부리오는 이처럼 버려진 것과 인정받은 것, 즉 상품과 쓰레기 사이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협상이 펼쳐지는 대상을 '엑스폼'이라 부르고, 확실한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방치된 영역을 '폼(Form)에서 벗어난 영역'으로 정의합니다.
예를 들어서 가죽이 다 해진 채 길거리에 버려진 소파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그것이 소파임을 알면서도 일상적인 휴식처로 지각하지 못해 인지적 혼란을 겪습니다. 이러한 지각의 혼란은 사물의 형태가 절대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합의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에 대한 인간의 선택이 쓰레기의 경계를 결정합니다
이 개념은 철학자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이 제시한 '성자(별자리)' 개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밤하늘의 별자리는 우주에 처음부터 존재하는 절대적인 실체가 아니라, 지구라는 특정한 위치에서 시간과 공간의 격차를 무시하고 별들을 선으로 연결해 만들어낸 인간의 가공물입니다. 사물의 쓸모나 형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 맥락과 개인의 경험에 따라 동일한 사물도 전혀 다르게 인지될 수 있으며,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누군가는 생계의 단서를 찾고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과 관점에 따라 무질서한 파편들도 비로소 하나의 의미 있는 형태로 완성됩니다.
두 번째 이유: 동시대 예술은 물질을 직접 형태화하기보다, 버려진 사물을 세계와 재연결합니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감지한 이들이 바로 현대 예술가들입니다. 과거의 예술가들이 붓과 조각칼을 사용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시각적 형태를 불어넣는 창조자 역할을 수행했다면, 동시대 예술가들은 이미 세상에 널려 있는 사물들을 엮어 새로운 관계망을 구축하는 관찰자이자 수집가에 가깝습니다.
대표적으로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일부러 벼룩시장을 배회하며 과거의 장신구나 버려진 벌레 먹은 도판을 수집해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미국의 마이크 캘리(Mike Kelley)는 벼룩시장에서 구한 낡은 봉제 인형들을 엮어 차가운 인간 관계의 이면을 들춰냈고, 제러미 댈러(Jeremy Deller)는 세계 축구 팬들의 빛바랜 깃발들을 수집해 거대한 연결의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작가 맥 세퍼 역시 백화점 진열대 같은 세련된 쇼케이스 안에 잡지나 오래된 향수병을 무작위로 집어넣어, 상품과 폐기물의 모호한 경계를 폭로했지요. 이들의 작업은 재료를 구형하는 수고로움 대신, 버려진 사물이 놓인 맥락을 완전히 뒤흔드는 방식을 택합니다.
세 번째 이유: 과잉 생산과 정보 홍수의 시대, 가치는 창작이 아닌 연결에서 나옵니다
예술뿐만 아니라 현대 일상과 비즈니스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두드러집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잉 생산과 정보의 대범람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 순간 엄청난 양의 직조물, 가공품 및 인터넷 속 데이터 쓰레기가 생산되지만 그중 대부분은 한 번도 제대로 소비되지 못한 채 디지털 심해 속으로 가라앉습니다. 이러한 공급 과잉의 생태계 속에서는 하나의 점을 더 찍어내는 ‘신규 생산자’보다는, 흩어진 점들을 선으로 잇는 ‘연결자’의 중요성이 압도적으로 비대해집니다.
오늘날 콘텐츠 소비는 창작물을 직접 생산하기보다 기존 작품들 사이의 맥락을 연결하고 해석하는 플랫폼의 영향력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음악 시장에서 신곡을 발표하는 작곡가만큼이나 이미 발매된 곡들을 독창적으로 믹싱하는 DJ와 감각적인 플레이리스트 제작자가 주목받는 현상이 그렇습니다. 영화와 책을 직접 제작하지 않아도 숨겨진 명작들을 발굴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리뷰 유튜버, 전 세계의 옷을 선별해 소개하는 패션 바이어, 작가와 대중을 잇는 미술관의 큐레이터 역시 모두 이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정보의 쓰레기통 속에 방치될 뻔한 에너지를 네트워크라는 거미줄(Web)로 끌어올려 존재로서의 자격을 다시 부여해 주는 것입니다. 19세기 말 서구에서 셜록 홈즈와 같은 '탐정 소설'이 유행했던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남들이 버린 사소한 흔적과 뒷골목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연결 고리를 찾아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의 활약은, 다가올 정보 연결 시대의 지식 노동관을 미리 보여준 징후적 현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신중한 비판: 무엇이든 맥락화될 수 있다면, 원천적인 창조 가치는 무력해지는가?
하지만 저는 한편으로는 이러한 연결 만능주의에 숨겨진 꺼림칙한 한계를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대상이 단순히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따라 가치를 입증받는다면, 원천적인 깊이를 지닌 무언가를 끈기 있게 직접 만들어내는 고독한 제작자들의 고투는 과연 어디로 향해야 할까요? 만약 세상이 오직 큐레이션과 재연결로만 사유된다면, 우리는 결국 스스로 아무것도 탄생시키지 못한 채 기성품의 세계 안에서만 영구적으로 맴도는 자기복제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단순히 시스템 안에서의 재배치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예술과 비즈니스는, 본질적인 시스템 비판을 망각한 채 기성 질서에 가장 유연하게 결합하는 또 다른 얄팍한 상품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결론: 우리는 이미 충분히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콜라 부리오의 통찰이 우리 개인 삶에 던지는 위안은 매우 큽니다. 우리는 언제나 '아직 가지지 못한 새로운 것'을 손에 넣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강박, 혹은 '세상에 없는 전대미문의 무언가'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지나친 부담 속에서 늘 좌절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앉아 있는 낡은 나무의자가 10년 뒤에 쓰레기장으로 갈지, 아니면 또 다른 인연을 만나 소중한 골동품이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핵심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구호 아래 먼 미래를 막연히 맹신하는 태도가 아니라, 이미 내 곁에 버려져 있는 수많은 가능성의 파편들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태도일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마주한 골치 아픈 문제의 열쇠는, 이미 우리가 쓸모없다며 고개를 돌려버린 그 마음의 '쓰레기통' 안에 아주 얌전히 놓여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주변의 버려진 것들 속에서 어떤 숨은 가치와 연결점을 찾고 계시나요? 댓글로 편하게 나누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FAQ
니콜라 부리오가 정의하는 '엑스폼(Exform)'은 정확히 무엇을 뜻하나요?
엑스폼은 단순히 내다 버려진 쓰레기 자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주류 사회시스템 하에서 '버려진 것(배제)'과 '인정된 것(상품)'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 걸쳐 있으며, 인식의 가변성에 따라 그 가치와 지위가 언제든지 가변적으로 뒤바뀔 수 있는 상태나 대상을 뜻합니다.
별자리(성자) 개념이 쓰레기를 지각하는 것과 어떤 상관이 있나요?
철학자 발터 베냐민에 따르면, 별자리는 하늘에 절대적으로 주어져 있는 게 아니라 지구에서 관찰하는 인간이 무작위의 별들을 감각적으로 결합하여 유의미한 형태로 만들어낸 구성물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사물이 '형태가 있는지(유용한 것)' 혹은 '폼에 어긋나는지(쓸모없는 쓰레기)' 역시 주어지는 절대 기준이 아니라 인간 사회가 패턴화하며 부여한 유동적 구성물임을 증명합니다.
현대 미술가들이 그림을 그리지 않고 기존 사물을 조립해 발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현재는 이미 물건과 정보가 너무나 넘쳐나는 과잉 생산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작가들은 물질을 새로 양산하여 세상에 더하기보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며 쓸모를 잃고 밀려난 사물들의 배열과 맥락을 바꾸어 줌으로써 우리가 가진 가치 체계와 숨은 의미들을 성찰하도록 요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