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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자 하이에크는 중앙집중적 계획경제가 선한 의도와 무관하게 사회를 전체주의적 파멸로 인도하는 '노예의 길'이라고 경고했습니다.
  • 과거의 상업 발달이 계급 사슬을 끊고 공정한 게임으로서의 개인주의를 탄생시켰듯, 경제활동의 자유야말로 사상과 양심 등 모든 정신적 자유를 지탱하는 뿌리입니다.
  • 다만 극단적인 무경쟁 자본주의가 부른 현대의 극심한 피로감과 경제의 정치성이라는 현실은, 하이에크식 시장 낙관론 역시 보완되어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과연 개인의 자유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와 안정 속에서 자유를 누린다고 믿곤 합니다. 하지만 자유시장 경제를 옹호했던 20세기의 거장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하이에크는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를 직접적으로 결정짓는 근본은 고상한 언어학적 권리가 아니라, 다름 아닌 돈을 벌고 소비하는 경제 활동의 자유라고 선언합니다. 정부가 선의를 품고 시장을 통제하고 분배하는 '계획경제'를 펼치는 순간, 의도치 않게 온 사회가 소수의 지시 아래 일사불란하게 속박되는 전체주의의 어두운 길로 접어들게 된다는 것이 그의 핵심 논지입니다.

경제적 자유가 박탈당할 때 일어나는 일

하이에크는 사상의 자유나 신념의 자유보다 경제적 자유가 훨씬 더 핵심적인 가치라고 보았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인간적인 권리'와 '속물적인 돈 문제'를 이분법적으로 분리하여 생각하지만, 이는 중대한 착각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얼마를 벌지를 사회나 국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 준다면, 그것은 단순한 생계 통제에 그치지 않고 인생 전체의 계획과 행복을 설계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을 모두 박탈당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정주영 회장의 사진과 명언이 담긴 화면과 마이크를 든 발표자의 모습이 함께 보이는 화면입니다.

냉소주의를 넘어 각자의 자리에서 인간의 힘을 끈질기게 믿고 나아가는 태도가 자본주의 시장의 동력이 됩니다.


그가 1944년에 발표한 불후의 명작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에서 지적하듯, 파시즘과 공산주의는 그 이념적 출발점이 좌와 우로 완전히 정반대처럼 보일지라도 한 가지 뚜렷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국가가 중앙집중적 계획을 세워 사회 구성원을 통제하려 드는 집단주의(Collectivism) 사조를 품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하이에크는 이 과정에서 개인의 다채로운 계획이 상실되고, 결국 국가가 지정하는 획일적인 규칙 아래 통제받는 노예와 다름없는 삶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역사 속 상업의 발달이 깨운 '개인주의'의 가치

그렇다면 하이에크가 수호하려 했던 진정한 개인주의는 어떻게 발아했을까요? 그는 역사적인 과정에서 상업과 무역의 발달이 개인주의 정신을 꽃피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국가적 차원의 거대 계획이 아닌, 상인들이 자율적 교환과 경쟁에 기초하여 부를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경직된 신분 사회가 균열을 일으켰다는 통찰입니다.

예컨대 배를 타고 무역을 하던 네덜란드와 같이 수로가 잘 발달한 해안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운송 효율이 높아 많은 대안과 선택지가 생겨날 수 있었습니다. 상인들이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여러 도시를 선택하여 갈 수 있게 되자, 도시들 역시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대우를 개선하고 규칙을 정비했습니다. 이로써 출신 가문기반의 계급 사슬에서 영원히 착취당하던 천민이라 할지라도 '돈'이라는 명확한 수단을 쥐게 되면 스스로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게임의 규칙이 만들어졌습니다.


테이블 위에 쌓인 다양한 동전들 옆으로 발표자의 모습이 담긴 화면

계급 사회를 해체하고 개인에게 기회와 선택의 자유를 부여한 자본주의의 동력을 짚어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탄생한 마인드가 '나는 나고, 내가 스스로 노력하여 리스크를 지고 성취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현대적 의미의 개인주의였습니다. 즉, 개인주의는 남을 헤치고 자기 배만 채우는 이기주의가 결코 아니며, 오히려 인간을 인간으로서 존중하며 그 어떠한 공동체도 개인 고유의 발상과 취향을 함부로 짓밟을 수 없게 만드는 사상입니다.

진보라는 유혹과 대기업 독점에 관한 흔한 오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과 지식인들은 늘 시장에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강력한 유혹에 흔들립니다. 과학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거대 기업의 몫이 커지고 자본가들이 독점적으로 부를 독식하게 될 터이니, 국가가 나서서 부를 평등하게 골고루 나누어 주는 것만이 진정한 사회주의적 진보라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하이에크는 이러한 생각에 대해 완전히 날카로운 반박을 가합니다. 애초에 우리가 법학이나 사회과학을 발전시켜 혁신적인 계획을 도출하고 설계해 내는 마인드를 품을 수 있었던 지적인 배경 자체도 오직 개인의 자율성을 풀어주었던 개인주의적 풍토 덕분이었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은 온전한 개인주의의 토양 위에서 얻게 된 진보한 지식을 무기 삼아 다시 부모와 같은 그 근본 토양을 파괴하려는 모순을 범하고 있는 셈입니다.

더 나아가 하이에크는 우수한 인간의 본연적인 역동성을 믿었습니다. 아무리 막강해 보이는 대기업과 벌어진 격차가 견고해 보여도 자유 시장의 역동성 속에서는 내부 경쟁자가 늘 출연하여 독점을 깨뜨립니다. 오히려 해로운 반영구적 독점은 국가 권력이나 관료들이 억지로 독점을 막고 평등을 수호하겠다며 복잡한 규제와 수많은 제도적 허들을 세울 때, 오히려 기득권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과연 오늘날 경쟁의 엔진은 아직도 유효한가

하이에크의 끈질긴 자유시장 옹호와 학문적 비전은 오늘날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의 기틀을 확립했습니다. 하지만 하이에크의 이러한 강력한 낙관주의를 있는 그대로 다 신뢰하기에는 현대 사회가 겪고 있는 피로와 그 한계 역시 결코 만만치 않게 다가옵니다. 어쩌면 저는 한편으로는 하이에크의 지향이 완전한 해답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지구 위로 빛나는 불빛이 그려진 화면과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구, 그리고 마이크 앞에 앉은 남성이 보인다.

경쟁의 가치가 퇴색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일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요.


첫째로 제기되는 의문은 현대인들의 철학적 탈진 현상입니다. 하이에크는 인간이 끊임없이 야망을 불태우고 무한한 리스크를 지며 새로이 도전하는 존재라고 보았지만, 현대인들은 극렬한 무한 생존경쟁에 치여 도리어 "과연 왜 이렇게 매일처럼 피 터지게 더 높이 도전자로서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지독한 본질적 허무주의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최근 역사상 전무후무할 만큼 가파르게 곤두박질치는 출산율 저하 현상은 단순히 돈이 부족해서 생겨난 문제가 아니라, 적당히 개인의 온전한 행복만 가만히 누리다 사라지겠다는 생명 에너지 주체성의 상실을 대변해 줍니다.

둘째는 순수한 비정치적 경제라는 현실적 불가능성입니다. 하이에크는 정치 권력마저 최대한 통제하고 시장 원리만으로 공정한 교환의 규칙 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듯 보이지만, 전 세계 상업의 선두 주자였던 네덜란드의 찬란했던 역사 뒤편에도 결국 거대한 국방력인 식민지 정복 등 철저하게 정치적인 군사력 개입이 숨어 있었습니다. 경제는 언제나 그 뼛속 깊이 정치적이며, 시장의 룰 자체를 합의하는 방식 역시 단지 경제적 효율성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영역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한계를 가집니다.

오늘 영상에서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매혹적인 철학과 그가 이뤄낸 위대한 사상적 통찰, 그리고 현대 사회가 마주한 현실적인 지점들에 대하여 다양한 층위에서 폭넓게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각자의 소중한 개성을 보장받으면서도 진정한 개인주의자로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어떤 형태의 자유와 균형이 마련되어야만 한다고 느끼시나요? 여러분의 다양한 생각과 소감을 아래 댓글을 통하여 저에게도 편안하게 남겨 주시면 정말로 감사드리겠습니다.


FAQ

하이에크는 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분리했나요?

하이에크가 정립한 사상에서 개인주의는 남을 무자비하게 해치며 물질적 이득만 좇는 천박한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개별 인간이 삶에서 지닌 관점과 고유한 취향을 공동체 영역 속에서 가장 최우선으로 먼저 침해하지 않고 존중하며 대우해 주자는 건강한 인도적 사상입니다.

시장 방임주의를 옹호했다면서 '자유주의적 계획'이 정부에 필요하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이에크가 비판한 것은 자원을 배분하고 모든 경제적 진로와 수단을 국가가 강제하는 '사회주의적 계획'이었습니다. 정부는 결코 구체적인 자원 분배 법칙을 만들어 경쟁을 방해해서는 안 되며, 대신 각 개인이 공정한 룰 안에서 자유롭게 자기 능력을 발휘하고 치열하게 경쟁할 수 있는 틀(Rule) 자체를 정비하는 룰메이커로서 최소한의 보조적 법적 장치만 설계해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람이 왜 사유재산권의 명확한 보장을 옹호해야 하나요?

사유재산 제도가 완전히 무너져 모든 결과적 배분을 국가가 독점하여 통제하는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지배자가 임명해준 기준과 연고에 따라 절대적 힘이 결정됩니다. 반면 사유재산제가 자유롭게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설령 내가 한 푼 없는 빈자일지라도, 여러 독립된 자산가나 대안적 법인 중 내가 일할 회사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기회가 열려 있기 때문에 소수의 가혹한 압제로부터 물리적으로 생존권을 지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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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박탈된 사회의 진짜 특징: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통찰 - 이글루스